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퀴어와 페미니즘을 적대적 정치학으로 구성하고(더 정확히 말하자면 퀴어를 페미니즘을 망치고 여성을 억압하는 정치학으로 구성하고) 페미니즘을 반퀴어-보수 기독교의 언설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이 시대에 어떤 새로운 개입과 정치학이 필요할까? 보수기독교 기반의 퀴어 혐오 집단은 퀴어와 페미니즘 양쪽 다 혐오하면서 ‘이것들이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남혐과 역차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에서는 페미니즘과 퀴어를 동시에 적대하며 ‘이것들이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여혐을 문제 삼는 집단 중 일부는 퀴어를 비난하면서 ‘퀴어가 페미니즘이 설 자리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이 혼란스러운 뒤얽힘 속에서 어떤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고 또 가능한가? 이 책은 2016년 겨울 솔여심 포럼이란 이름으로 시작하여 2017년 비사이드 포럼으로 이름을 바꾸고 2018년까지 3년째 열리고 있는 비사이드 포럼의 강연 일부를 모은 선집이다. 비사이드 포럼은 이전과는 다른 퀴어 정치, 소수자 정치, 비판 이론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퀴어와 페미니즘은 어떤 정치적·역사적 관계를 맺어왔는가? 퀴어는 모두 단일한가? 정체성은 언제나 분명하고 자명한 정치학인가? 기존에 인정받은 범주에 들어맞는 정체성이 아니면 내가 여기 살아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주장해서는 안 되는가? 만성질환 및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우리’ 곁에 살아있을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 불가능한 존재로 배척하고 혐오하는 사회에서 퀴어와 장애의 교차는 어떤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어떤 다른 인식론적 태도를 요청하는가? 모든 사람은 사랑하고 섹스해야 ‘정상’이라는 유성애 중심적 인간관에서 인간의 어떤 다양성과 차이가 삭제되는가? 합법적인 퀴어와 비합법적인 퀴어를 구분할 수 있는가? 품위와 음란함의 위계를 세울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 ‘똥꼬충’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퀴어와 페미니즘의 교차 위 어디에 존재하는가? 퀴어와 페미니즘의 운동, 담론, 공동체에서 성노동은 어떻게 취급되고 은폐되는가? 페미니즘을 획일적인 자매애로 상상하는 동시에 오직 ‘생물학적 여성’만 챙긴다는 자격조건을 걸어놓고도, 중·노년 여성도 이성애적 혼인 관계를 맺은 여성도 유자녀 여성도 비혼모도 여성 성노동자도 치마를 입거나 머리 긴 여성도 ‘좆빨러’라며 배척하는 이 배타적 움직임에서 퀴어 장애인과 퀴어 성노동자와 트랜스 여성은 어디까지 밀려나야 하는가? 페미니즘의 기치를 건 이런 적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비사이드 포럼이 지금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이 집요하게 모색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과 고민을 통해 구성된 본 작업은 혐오와 적대가 넘쳐나는 시대에 다양한 입장과 범주와 사안의 복잡한 교차 속에서 퀴어 정치학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모색하고 대안적인 인식론을 만들고자 한다. 이 선집은 다양한 주제를 나란히 옆에 놓으면서 교차성에 대한 사유를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첫 번째로 만나볼 전혜은의 글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는 퀴어와 장애가 별개의 범주 내지 영역이라는 인식에 도전하면서 퀴어 관점에서 장애를, 장애 관점에서 퀴어를 다시 사유하여 퀴어와 장애를 둘러싼 담론 지형을 교차적으로 다시 짠다. 먼저 퀴어와 장애를 반목시키는 주요인으로 ‘병리화’를 지목하여 병리화의 특성과 작동 방식을 해부한다. 병리화의 낙인에 맞서 퀴어와 장애의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상성’을 해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전혜은은 퀴어와 장애가 어떻게 복잡하게 얽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정상성의 해체가 어느 한쪽 분야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 다음엔 퀴어와 장애가 맞물리는 수많은 사안 중 특히 섹슈얼리티와 에이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춰 정상성을 해체하는 논의를 정리한다. 섹슈얼리티와 에이섹슈얼리티에 대한 퀴어 이론의 성과는 병리적으로만 이해되었던 장애인의 성적인 삶을 재정립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퀴어 이론이 그간 발전시켜온 섹슈얼리티-에이섹슈얼리티 논의를 장애 관점에서 재구성했을 때 얼마나 풍성하고 복잡한 다른 이야기가, 어떤 다른 가능성과 대안이 나오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루인의 글 '젠더로 경합하고 불화하는 정치학: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 그리고 퀴어 연구의 이론사를 개괄하기'는 페미니즘, 퀴어 연구, 트랜스 연구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전혜은의 논의를 이어간다. 페미니즘, 퀴어 연구, 트랜스 연구는 종종 별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서로 반목할 뿐인 정치학으로 인식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하고 오직 여성만 챙긴다는 논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루인은 페미니즘, 퀴어 연구, 트랜스 연구의 역사적 결절점을 살피며 세 정치학이 젠더 개념을 중심으로 첨예한 갈등 관계를 형성하고 마치 서로 배타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 같으면서도 긴밀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왔음을 논증한다. 이 작업은 오늘날 여성 범주를 둘러싼 논쟁에 개입하는 작업이며 여성 범주의 복잡성을 다시 설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첫 두 편의 글이 교차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면 다음 세 편의 글은 교차성 논의의 핵심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은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전혜은의 글 '‘아픈 사람’ 정체성'은 “‘아픈 사람’을 정체성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통해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아닌 아픈 사람의 경계적 경험을 고찰하고, 아픈 사람의 특수한 체현을 계속해서 부인하는 이분법적 가치 체계를 문제 삼는다. 이 작업을 위해 먼저 아픈 사람과 ‘장애인’ 정체성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고, 아픈 사람이라는 이름이 왜 필요한지 검토한다. 그 다음엔 정체성에 관한 급진적 논의를 발전시켜온 퀴어 이론으로부터 이론적 자원을 끌어와 ‘아픈 사람’이라는 이름을 정체성으로 사유할 방법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아픈 사람’을 정체성으로 사유할 때 그러한 사유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그리고 인식론적 차원에서 어떤 함의와 가치, 잠재력을 갖는지를 논한다. 루인의 글 '죽음을 가로지르기: 트랜스젠더퀴어, 범주, 그리고 자기 서사'는 트랜스젠더퀴어의 죽음을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가 이 사회에서 탄생되는 방식을 탐문한다. 보통의 부고는 한 사람의 전 생애를 다시 돌아보며 그 사람의 삶을 되새기는 작업이지만 트랜스젠더퀴어의 죽음은 그 사람의 범주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한 사람의 삶의 많은 부분이 트랜스젠더퀴어라는 정체성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수렴되고 트랜스라는 정체성으로 수렴할 수 없는 삶은 삭제된다. 이런 식의 재현은 한 사람의 삶을 특정 정체성 범주로 박제시키고 그리하여 정체성 범주를 알면 마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는 식의 문제를 일으킨다. 루인은 죽음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퀴어(혹은 다른 많은 성적소수자)의 삶을 정체성으로 수렴시키는 방식의 서술이 결국 트랜스의 삶의 복잡성을 단순하게 만들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삭제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글은 트랜스를 비롯한 다양한 퀴어가 자신의 생애를 기술할 때, 특정 정체성 범주로 전생애를 환원시키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도균의 글 '게이라는 게 이쪽이라는 뜻이야?'는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쪽 사람들’이라는 개념을 탐색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성소수자를 명명하는 언어는 매일 같이 새롭게 생겨나고, ?로맨틱/~섹슈얼/~젠더’라는 도식적 형태로 성정체성을 분류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정체성을 사유하는 방식까지 도식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도균은 기존의 범주로 충분히 설명하고 담을 수 없는 ‘이쪽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이자 성노동자인 본인의 경험과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엮어 짠다. 정체성과 정체화를 수많은 도식과 구분 중 자신에게 딱 맞는 무언가를 찾는 것으로 이해하는 현재 상황에서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