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류 국가에서 2류 국가로,
일본은 추락하고 있는가?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갈등이 점점 격화됨에 따라 친일과 반일 양극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각자의 렌즈를 통해 이전보다 더욱 굴절된 일본,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있다.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이 실종된 현 상황에 꼭 필요한 책《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원제: PEAK JAPAN)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롤러코스터 같은 일본의 지난 100년간 흥망성쇠의 궤적을 보여주고 21세기 맞닥뜨린 문제를 분석한다. 80년대의 후반에 전 세계 부의 16퍼센트를 차지하며 경제대국으로 번영과 권력을 양손에 거머쥐었던 일본이 어떻게 쇠퇴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제3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이를 반등시키기 위한 현재 일본의 행보를 분석하고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본다. 또 동맹국인 미국이 한일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 브래드 글로서먼은 미국의 손꼽히는 동아시아 국제전략분석가이다. 글로서먼은 이론과 보고서만으로 일본에 접근하는 여타 국제관계전문가와 달리 30년 가까이 일본에 살면서 유력 정치인부터 평범한 대학생까지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왔다. ‘진짜 일본’의 모습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혜안을 던지고 있다. 국제전략분석가로서의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각과 이방인으로서 일본사회를 내부에서 오랫동안 관찰한 경험을 결합한 《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은 일본의 변화 방향과 원인, 내적 논리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현대 일본을 덮친 4가지 충격,
반등을 위한 일본의 마지막 선택과 한계
글로서먼은 ‘잃어버린 10년’ 후 21세기 일본이 맞닥뜨린 4가지 충격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정치·경제·외교안보·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전망을 시도한다.
-리먼 쇼크: 헤어나올 수 없는 경기 침체와 쇠퇴
첫 번째 충격은 리먼 쇼크였다. 버블 붕괴 후 오랜 후유증에 시달린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조심스럽게 경기 회복의 희망을 본다. 그러나 얼마 안 가 2008년 리먼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의 충격파가 일본을 덮친다.
글로서먼은 비대한 경제 규모, 조직화된 기득권의 저항,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일본만의 독특한 자본주의 모델 등을 원인으로 거론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 요인들이 과거에는 일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의 성공 요인이 현재의 실패 요인이 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었던 ‘일본주식회사’는 내부적 요인과 더불어 경쟁자의 성장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병들고 노쇠한 ‘일본호’는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새로운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고 있다.
-정치 쇼크: 총체적 난국에 빠진 정치와 방기된 책임
두 번째 충격은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사건이었다.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카리스마적’ 정치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 자민당은 구태의연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실망한 국민들은 2009년 마침내 자민당 지배체제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처음으로 집권세력이 된 민주당은 시작부터 경험과 수권 능력의 부족함만을 여실히 드러냈다. 동일본대지진의 대응 실패는 민주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결정타는 중국과의 센카쿠 분쟁이었다. 3년 만에 민주당은 자멸해버리고, 야당은 분열되어 자민당의 독주는 더욱 공고해졌다.
오직 상대방을 좌절시키겠다는 ‘반대를 위한 반대’, 관료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재포크라시’, 정치인들이 전문성 없이 각료를 돌아가며 맡는 ‘가라오케 민주주의’ 등 일본 정치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영웅적’ 정치인만을 기대하며 새로운 변화를 압박하지 못하는 유권자의 책임 회피 현상까지 폭넓게 다뤄지면서 일본 정치의 무능력함과 ‘정치 실패’의 난맥상이 외부인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포착된다.
-센카쿠 쇼크: 국제적 존재감이 사라진 일본
세 번째 충격은 센카쿠 열도 분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탈아’한 유일한 일류 국가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급성장은 아시아의 리더이자 맏형이라고 자부해왔던 일본인의 현실 인식에 균열을 만들었다. 정치적 위상에서 중국은 이미 일본을 추월한 지 오래이고, 한국 역시 경제적으로 일부 분야에서 일본을 앞서기 시작했다.
글로서먼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꼽는다.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중국에 무력하게 굴복한 일본은 더이상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 결과, 외교안보에 관한 일본의 접근법이 전환됐다고 글로서먼은 분석한다. 요시다독트린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기존 외교안보 정책은 안보는 미국에게 맡기고 경제개발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대두에 불안감을 느낀 아베 정권은 자주적 안보를 명분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동아시아에서의 위상을 다시 찾으려는 팽창적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동일본대지진 쇼크: 무너진 사회적 신뢰와 침식되는 정체성
마지막 네 번째 충격은 동일본대지진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을 덮친 최악의 삼중재난이 발생한다. 규모 9.3의 지진이 발생한 직후 쓰나미가 태평양 연안을 덮쳤다.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까지 휩쓸면서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난다. 일본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경제적 피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 국민의 심리적 상처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었다.
글로서먼은 원전 사고는 그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코미디로 보였을 촌극으로 가득했다고 평가한다. 총제적 인재로 드러난 원전 사고의 전말은 관료주의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버렸고, 일본이라는 ‘안전 신화’는 해체되었다. 삼중재난은 일본 국민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와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져다주었다. 국가에 대한 신뢰와 국민 정체성에 관한 일본인의 자부심을 산산이 깨뜨린 것이다.
“일본의 시대는 끝났다”
아베와 일본 정치인은 무엇을 꿈꾸는가?
일본을 덮친 4가지 핵심 사건의 결과, ‘아베의 귀환’이 이뤄졌다. 아베 정권의 핵심 키워드는 ‘팽창’과 ‘재탄생’이다. 현재 직면한 위기를 과거의 강력한 일본을 재건함으로써 돌파하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아베노믹스를 주창해 장기불황을 해소하려 한다. 정치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급성장한 한국을 견제한다. 이러한 아베의 행보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글로서먼은 아베의 목표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4가지 충격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옥죄고 있는 구조적·태도적 한계가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 확장을 통한 경기 부양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 개혁은 시작하지도 못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정치 실패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고령화되는 인구구조는 사회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야망을 불태우는 정치권과 달리 일본인 사이에는 패배주의와 체념의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글로서먼은 현재 일본이 팽창과 성장에서 수축과 쇠퇴로 넘어가는 전환점 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아베 정권의 마지막 몸부림으로는 수축과 쇠퇴로의 거대한 전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다시 탄생하기에 너무나 비대하고, 개혁하기에는 너무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금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일본을 뒤따랐던 한국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
글로서먼의 분석과 전망은 우리에게 반일과 친일의 문제를 넘어 국가 성장과 비전에 대한 통찰을 던져준다. 눈부신 성장을 구가했던 국가는 어떻게 쇠퇴하는가? 그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