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20세기의 오디세우스
개역판에 부치는 말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소설
482p

![[왓챠웹툰] 3분 단편 🍛](https://an2-img.amz.wtchn.net/image/v2/nHR9yduTINDkOTVeCxzbEw.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lRjMU5EVTNPRGN4T1RBNU5qVTBJbjAuY3BGNHdRRXFqTk1wLWc3eHQ5LWctaGp6a0JhTmxxVHdpZGlvam5MbTREbw==)
![[왓챠웹툰] 3분 단편 🍛](https://an2-img.amz.wtchn.net/image/v2/6WWVT7yqeER5AkrxA-OqKg.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gzTVRBeU56STROakE0TURNNU5qQWlmUS5zek1RWExnYjZyVk5OYmZBM09WN0hjVVhibGtXN0t1ZmZlSEUyRXluMjdv)
노벨 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며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작가는 그를 힌두교도들의 ‘구루(사부)’와 수도승들의 ‘아버지’에 빗대었다. 조르바는 물레를 돌리는 데 거추장스럽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리는가 하면, 여성의 치모를 모아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며 수도승을 꼬여 타락한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등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그러나 조르바는 혼돈에 찬 인간이 아니다.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지식인을 대표하는 주인공 오그레에게 조르바는 ‘절대 자유’의 초인과도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운 이들이 지향해온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삶의 메토이소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메토이소노’란 ‘거룩하게 되기’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과도 같다. 이를 염두하면 소설 속 조르바가 풍겨내는 마음과 행동과 모습들은 단순한 기행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르바의 행보가 자유를 향해 멈추지 않는 ‘거룩한 영혼의 투쟁’으로 승화될 것이다.
왓챠 구독권 4O% 할인
기간한정 연간 구독권 할인 중!
WATCHA · AD
왓챠 구독권 4O% 할인
기간한정 연간 구독권 할인 중!
WATCHA · AD
구매 가능한 곳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저자/역자
코멘트
600+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김예지
2.0
마초문학
권혜정
3.5
예전에는 나는 왜 조르바처럼 자유롭지 못한 걸까, 라는 한탄이 들기도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의 말처럼 까마귀는 까마귀처럼 걷고, 비둘기는 비둘기의 보법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오히려 지금은 모든 사람의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며 생의 의미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카잔차키스가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동진의빨간책방24회 @알릴레오북’s10회
린린
21세기 사람들이 20세기 책을 불편하다고 느끼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김서영
2.5
1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무려 10명이나 추천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추천해 준 책이다. 워낙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책이고, 추천평들도 어마어마하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겠다. 2 어렸을 때부터 나한테 속독을 하는 방법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고 취향의 차이인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디테일 하나하나에 깊은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기 때문에 늘 속독을 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주인공 이름조차 생각 안 날 때도 많았다. 지금도 그 사실엔 크게 개의치 않는데, 이런 포스팅을 하거나 누구와 이야기 할 때 있어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아직도 나에게 크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 책에선 디테일이 조금 크게 다가왔다. 3 조르바, 셜록 홈즈, 해리 포터. 평생 기억할 이름들이다.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이 있다면 책 제목에 주인공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조르바는 계속 기억했을 것이다. 조르바는 강렬하다. 이 책이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너무 강렬하다. 그게 조금 부담이 된다. 책을 읽을 때 시대성을 떼어 놓고 도덕을 운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심한 마초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고르고 싶진 않다. 조르바가 소설 속 인물로 매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만났다면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말하는 스타일도 과하게 강한데, 나의 행동에 철이 안 들었다며 참견하고, 정작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사업을 홀랑 말아먹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싫다. 4 아무리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썼다고 해도 이렇게 말이나 행동 하나 하나가 다 머리 속에 박힐 정도로 싫은 것은, 그만큼 작가가 이 캐릭터를 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례 없는 캐릭터다. 5 조르바가 싫다고 써놨지만, 단지 이 캐릭터가 나의 이상향이 아닐뿐이지 이 책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조르바의 자유로움에, 정열에 충격을 받고 감동하고, 조르바를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십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가슴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남들이 다 감동 받은 책이라고 나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한 줄 요약 : 조르바, 그 강렬함.
처련처련
5.0
책의 주인공은 조르바지만 젊은시절의 카잔차키스의 사색에 공감대가 형성되서 꽤나 몰입해서 읽었던 책, 조르바를 그저 망나니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아까운 책
김현승
4.0
한국 문학계의 영원한 이단아 고 마광수 교수는 인간은 리비도(Libido), 즉 성욕을 통해서 움직이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리비도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인 프로이트가 있는데도 굳이 고 마광수 교수를 언급한 것은 그의 발칙하고 솔직한 문장이 책 속의 조르바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좀 더 분석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성욕을 '인간의 근원적 욕구'로 치환해 읽을 필요가 있다. 조르바가 고기, 술, 잠을 좋아한다는 묘사가 많기 때문에 이는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이 책에서 신(하느님, 부처 등의 특정 신이 아닌 일잔 명사)은 진리, 행복과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진리(행복)를 위해 각자의 신을 섬기는데 조르바는 감각 세상을 통한 욕구 해소를 행복을 향한 길로 여기고 살아간다. 조르바를 보고 있자면 진리는 감각을 통해, 또 눈에 보이는 세상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떠오른다. / 이대로 조르바에 대한 관찰로 책이 끝났다면 책의 주제는 '조르바처럼 세상을 살자'가 되었을 것이고 이 책은 절대 명작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조르바의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보스(책의 화자를 부르는 말), 당신은 고해 신부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당신한테는 내 모든 잘못을 고백할 수 있어요. 당신은 신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책의 화자는 자유롭게 생활하는 조르바를 부러워했다. 인간의 근원적 욕구에 충실한 그를 보며 '우주와 가장 다정히 엮여있는 인간'이라 말했고, 행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마지막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르바는 책의 화자를 감히 신과 비슷한 면을 지닌 '깨달은 자'로 취급하고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의 진리(행복을 추구하는 방법)가 있는 셈이다.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저 사람은 나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그때부터 그 생각으로 인해 불행해진다. 이것은 책의 화자가 그토록 섬겨온 부처가 말한 '번뇌'와 유사하다. / 군대에서 읽은 책 (004/100)
이호윤
3.5
논쟁적 뉘앙스 너머 카잔차키스가 보았던 조르바
134340
5.0
사람을 보고 감동을 느낄 때. 그 순간이 성장을 이뤄냅니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