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일, 10년 만의 장편소설
소설가 장정일이 1999년 장편소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월)와 『보트하우스』(3월), 경장편소설 『중국에서 온 편지』(11월)를 연속적으로 발표한 이후 10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구월의 이틀』을 펴냈다. 2004년, 원전에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적용하여 집필한 전 10권의 대작 『장정일 삼국지』를 세상에 내놓기는 했지만, 이 저작은 원전을 재구성한 것이어서 장정일 문학의 적자로 보기 어렵다. 이번에 새로이 펴내는 『구월의 이틀』은 작가가 만 10년 만에 선보이는 본격문학 작품인 만큼 오랫동안 ‘장정일 소설’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온 편지』 이후 희곡과 에세이 등의 장르를 넘나들던 그의 글쓰기가 다시 소설로 회귀한 것이다.
■■□ 전통적 가치와 권위의 전복 위에 그려진 새로운 성장소설
『구월의 이틀』은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 기준에 대한 대안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혼란과 좌절을 그린 작가의 초기작들을 엮은 『아담이 눈뜰 때』와 그 맥락이 닿아 있다. 기존의 가치와 도덕, 권위가 흔들리고,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분열 ? 대립하는 현실 속에서 찬란해야 할 젊음을 강탈당한 채 기성의 삶에 급속히 편입해 들어가거나(은) 현실을 초월한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금)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청춘의 이상을 펼치기도 전에 ‘영리한 삶’을 요구받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과 혼란을 대변한다.
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 1년이다. 이 기간 동안 보수와 진보의 대결 양상이 심화되었고,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었으며,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광주 태생으로, 시민운동가의 아들로 자란 금과 부산에서 태어나 우익 성향의 환경에서 자란 은은 이 격랑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이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깨달아간다. 주인공들의 이 우울한 자각은 권선징악의 시대가 이미 저물었고, 기존의 가치와 도덕, 사회적 권위 역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청소년기의 고뇌를 거쳐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삶의 보다 깊은 의미를 들여다본다는 기존의 성장소설 역시 이 새로운 질서 위에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의 정체성에 관해 던지는 질문
작가 장정일은 「작가후기」에서 “이 소설을 쓰면서 의식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우익청년 탄생기’를 써보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우익청년의 일대기를 다룬 문학작품이 많이 나온 나라들에서는 건전한 상식과 철학을 토대로 한 우파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1980~1990년대 한국 문학이 좌파 일색의 소설을 쏟아낸 까닭과 아직 우리 문학에 제대로 된 우익 소설이 탄생하지 못한 이유가, 과거 우리나라의 우파가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도덕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작가는 현실적으로 처세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냉철한 감각으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우익청년 은을 통해 우리의 우익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현재 여러 종류의 뉴 라이트 운동이 있지만, 내 생각에 원죄나 피해의식(원한)이 운동의 동력이 되고 있는 40대 이상의 뉴 라이트에겐 아무 기대할 게 없다. 그런 뜻에서 내가 가장 공들였던 인물인 은에게는 앞으로 많은 기대를 해도 좋다. 어떤 면에서는 야비하기도 하고 이중인격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은에게는 다른 인물에게는 없는 자기개발의 특성과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반성 능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 은은 구 우익(거북선생)과 뉴 라이트(작은아버지)의 영향 아래 있지만, 그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해 자긍심에 찬, 젊고 순수한 우익으로 단련되어갈 것이다.
_ 「작가후기」에서
문학을 꿈꾸다가 정치가의 길로 들어서는 은과, 정치가의 꿈을 접고 문학가가 되기로 한 금의 역전된 삶은 사회적 권력의 무게가 좌에서 우로 기울어가는 현시대를 상징한다. 이상을 추구하는 낭만청년 금이 정치가가 되기에 이 사회의 정신적 토양은 너무나도 빈약하다. 반면 내재적 콤플렉스를 힘을 향한 숭앙과 현실적 가치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은은 정치가로의 변신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극대화하려 한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극에 치달은 현장에서 서로를 발견한 금과 은은 잠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내려두고 친구로 만난다. 결말에서 나타나는 이 두 친구의 진한 우정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반드시 관계의 대립으로 종결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금과 은은 결국 더 나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 사회의 동행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