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나_라는 세계의 발견

나카무라 노보루 · 인문학
2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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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 철학 -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발견 2 나 - 세계의 탄생 3 논리 - 벌거벗은 인간의 얼개 4 물리법칙 - 가설을 기초로 한 귀납법 5 윤리 - 상대적인 행위, 형언할 수 없는 것 6 절대적인 것 - 압도적인 경험 7 절대적인 것과 말 - 신기하고 놀라운 것 8 죽음 -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9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 신 그리고 윤리 10 언어 게임 - 주고 받으며 습득하는 모든 것 11 가족 같은 유사 - 닮은 점이 있는 막연한 집합체 12 말의 의미 - 제대로 사용하는 것 13 나만의 말 - 나만 알 수 있는 어떤 의미 15 진정한 지속 - 시간이 필요한 동사 16 수다쟁이 사자 - 사자만 아는 사자의 말 14 문법에 의한 오류 - 말이 파놓은 함정 17 영혼에 대한 태도 - 확인할 수 없는 불필요한 개념 18 의지 - 저항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 19 돌이 되다 - 표현할 수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20 딱정벌레의 상자 -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21 아픔과 그 진동 - 고통이 표현되는 방향 22 확실한 것 - 착각이라는 깨달음 23 의심하는 것과 믿는 것 - 온전한 신뢰 24 인류는 달에 간 적이 없다 - 불가능한 의심이 변하는 순간 25 두 개의 ‘논리’ - 세계를 바라보는 위치 26 종교와 비트겐슈타인 - 신을 통해 인간이 되다 27 얼굴 - ‘나’라는 동굴의 입구 28 거짓말을 한다는 것 - 진실을 말하기에 가능한 것 29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 언어의 본질을 논하다 30 하이데거 - 언어의 한계를 향해 돌진하는 충돌 31 프로이트의 제자 - 꿈과 언어의 유사성 맺음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왜’라는 질문에서 ‘그래서’라는 간이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난해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보통의 사람이 이해하기 가장 쉬운 철학자일지 모르는 비트겐슈타인. 그는 쓸데없는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진정한 철학적 질문에 맨손으로 맞선 철학자였다. 전문적인 철학 교육은 전혀 받지 않은 서양철학의 아마추어인 비트겐슈타인은 수학과 논리학을 공부했다. 철학의 지식이나 소양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 문제는 언어가 왜곡되어 만들어진 가짜 문제라고 말했다. 단 한 권의 책으로 최고의 철학자가 된 사람 20세기 최고의 철학저서로 꼽히는 는 100쪽이 안되는 책이지만 이 한 권으로 철학계의 슈퍼스타가 된 비트겐슈타인은 전장과 포로 수용소에서 저서를 완성했다. 그에게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학의 모든 문제는 철학자들이 언어를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기 철학자들이 자기들만의 언어 유희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집중했다. 언어의 미사여구를 빼고, 언어의 의미를 명료하게 하고, 언어를 논리적으로 체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언어를 통해 세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며.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모든 철학적 문제들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 주장했다. 저자 인터뷰 ■고등학생 때의 나에게 나카무라 씨는 이 책을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쓴 것이다’라는 식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웃었던 기억이 없다는 나카무라 씨에게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구원을 하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중고등학교 때 혼자 살았거든요. 13제곱미터 정도 되는 학숙방에서 정말로 혼자서 우울하게 지냈어요. 학교에 모범생이 꽤 많아서인지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하숙방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었죠. 도쿄로 올라오고 나서 비트겐슈타인을 읽기 시작하면서, 중고등학교에 대해서도 그랬고, 세계 전체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꼈는데요, 아, 이런 시각을 가지면 내가 위화감을 품고 있던 세계를 분석할 수 있달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이끌린 대목이지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를 산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인데요. 수많은 철학자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독보적인 이유는 어떤 점에 있다고 보시나요? 비트겐슈타인은 원래 수학과 논리학을 연구했지, 학교에서 철학을 연구한 적이 없었어요. 철학의 전문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기초 지식이 하나도 없는데도 ‘이건 결국 철학적 문제다’ 하는 문제를 맨손으로 끄집어내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속에서. ‘맨손으로 끄집어낸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기초 지식이 없으니 철학적 문제가 어떤 건지 당연히 전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혹은 지금까지의 보통의 철학자도 그렇지만,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일상생활을 하는 곳에, 실은 엄청나게 깊은 철학적 문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비트겐슈타인만이 알아챈 거죠. ■언어와 마음은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것을 주장했나요?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라고 지적한 것으로 아는데요. 이 포인트는 ‘언어에 의해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언어에 의한 이해의 차이를 바로잡아가는 것이 철학이다’,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바로 그거예요. 즉 언어는 그것만으로 자율적이며, 자동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죠. 우리는 그저 그것을 빌려와서 사용할 뿐이므로, 우리의 진정한 자기 자신의 감정, 혹은 진정한 마음의 깊은 곳을, 언어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진정한 감정을 언어에 의해 상대방에게 전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거죠. 그러므로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서 타인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여 감정이 서로 통한다는 말은, 극단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실은 언어 그 자체의 시스템에 올라탄 우리를 말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언어를 사용당함으로써, 우리의 감정과 감정이 서로 통한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어만 해도 그래요. 저나 하타케야마 씨(인터뷰어)나 어릴 때 억지로 언어 샤워를 당하는 바람에 몸으로 익힌 것뿐이잖아요. 자기가 일본어를 만든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만든 언어, 즉 모두의 것이나 누구의 것도 아닌 언어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억지로 익히고 쓰고 있을 뿐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 진정한 마음의 세세한 주름 같은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그러니 언어와 우리의 실제 마음이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트겐슈타인은 우선 지적했죠. 이것이 언어 비판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 ‘절친’이라는 말로부터의 역산 구체적인 예를 들어 ‘절친’이라든가 ‘애인’ 등의 언어가 우리를 휘두른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그 부분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초등학생 때 ‘절친’라는 말을 알게 된 후에 ‘인간에게는 친구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식으로, 뭐랄까 좀 이상하게 사로잡혀서 ‘누가 절친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즉 말로부터 역산해서 실제 생활을 고민하게 된 거죠. 사실 이건 이상한 이야기예요. ‘절친’이라는 것은 친구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진짜로 유일무이한 친구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는데요. ‘절친’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친구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럼으로써 다양한 친구가 있지만, 그중에서 단 한 명의 절친을 스스로 골라야 한다, 단 한 명의 절친과 진정한 친구로서의 교류를 해야 한다, 는 식으로 과몰입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절친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는 정확한 정의는 없잖아요. 그저 말만 있을 뿐인 거죠. 혹은 ‘애인’도, 이 단계로 진입하면 애인이다,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잖아요? 하지만 그런 건 없고, 다양한 인간관계가 있잖아요. 서로 미워하거나, 아예 안 만나는 애인도 있는데, 애인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애인이라는 것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믿어버리죠. 말에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의 애인 관계나 인간관계가 이상해지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하잖아요. ■ 말의 ‘문법’에 속다 비트겐슈타인 입장에서는 언어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에 지나치게 속박당하는 인간의 자세를 비판한다는 말씀일까요? 맞아요. 말이 지니는 자동적인 문법을 통해 우리는 속고 있다는 거지요. 또 하나의 예로서 ‘통증’이라는 말에 관해서 나오잖아요. 타자의 통증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무책임한 일반화’가 된다고 나카무라 씨가 지적하셨잖아요? 이 또한 타자와 서로 이해하는 것의 곤란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바로 그거예요. 통증이라는 말은 있지만, 우리 인간은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통증밖에는 못 느끼죠. 타인의 통증은 절대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자신의 통증밖에는 느낀 적이 없는데 통증이라는 말로 자신의 통증도 타인의 통증도 표현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요. 하지만 전혀 다르죠. 타인의 통증과 자신의 통증은. 실은 타인에게 통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가 없잖아요. 그저 아픈 척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나 이외의, 나카무라 이외의 모든 인간이 연기를 하면서 아픈 척을 하고 나를 속이는 것뿐일지도 모르죠. 우리는 타인의 통증을 아는 것 같지만 실은 통증이란 자기 자신만의 통증이므로 자기 자신의 통증을 타인의 통증과 같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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