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악몽의 시대’와 고투한 ‘내부의 타자’, 그 만년의 사유를 따라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경과 국민주의 너머를 상상해 온 서경식 선생이 2023년 12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때로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에세이스트로서, 때로는 전투적 논객으로서 문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를 넘나들었던 그가 남긴 만년의 사유를 담았다. 칼럼이라는 형식을 빌린 시평이지만, 전쟁, 핵 재앙, 혐오, 차별이 끊이지 않는 무자비한 ‘악몽의 시대’에 던지는 물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서경식이 2011년 9월~2013년 2월, 2015년 7월~2023년 7월 ‘서경식의 일본통신’, ‘특별기고’, ‘서경식 칼럼’이라는 연재명으로 『한겨레』에 기고한 72편의 칼럼에 정규 연재 이외의 기고와 타 매체에 게재된 9편을 더해 총 81편의 글을 엮었다. 『한겨레』 게재 시 지면의 한계로 인해 부분적 삭제가 있었던 41편은 복원해 수록했다. 서경식은 마지막 칼럼(2023년 7월 6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역시 승산이 있든 없든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혹한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고개를 들고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자. (…) 세계 곳곳에 천박함과 비속함을 거부하는,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벗이다.” 2008년의 칼럼에서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어둠을 향해 던지는 돌팔매, 표류한 사람이 유리병에 넣어 바다에 흘려보내는 ‘투병 통신’에 비유했다. “누구한테 가 닿을지 모르고, 누군가에게 가닿는다 하더라도 몇 년 뒤일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거는 것, 그것이 ‘투병 통신’이다.” 이 책은 진실을 계속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의 벗들, 유리병에 넣어 보낸 그의 글이 가닿았던 독자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칼럼집이다. 제1부 <노년의 초상〉은 노년에 접어든 지은이 서경식의 심상 풍경을 담고 있다. “언제까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을 상상하고는 조바심을 치던” 젊은이는 어느덧 “인생의 가을”을 맞는다. 정신적·신체적 변화를 비롯한 신변의 변화에서 오는 난처함, 젊은 세대와의 괴리감, 실패와 과오의 기억 속에 있는 그를 지탱하는 것은 지난날 나눈 교류의 기억이다. 가토 슈이치, 히다카 로쿠로, 이바라기 노리코 등 교분이 있던 일본의 ‘전후 지식인’이나 가족, 친지의 초상이 펼쳐진다. 특히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글 「파도에 휩쓸려 간 흔적」(55~64쪽)은 프리모 레비의 작품 「아르곤」(『주기율표』 수록)에서 착상을 얻은 것으로, 재일 디아스포라 개인의 내밀한 회고담을 들려준다. 생전에 그가 앞으로 쓰고 싶다고 종종 이야기하던 자기 주변의 재일조선인을 삶을 바탕으로 한 실화소설의 단초를 엿볼 수 있게 하여 더욱 아쉽고 귀하다. 제2부〈악몽의 시대에 보는 예술〉은 지은이에게 일평생 “숨 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이 되어주었던 예술에 관한 글들을 담고 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명화에서 최신 개봉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제재는 폭넓고 사유는 웅숭깊다. 케테 콜비츠, 윌리엄 켄트리지, 니키 드 생팔 같은 오랜 ‘화두’는 좀 더 절실하게, 이중섭이나 니시키에(錦繪) 등 전에 다룬 바 없는 소재는 참신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그렇듯 논의의 밑바탕을 관통하는 것은 전쟁과 식민 지배, 정치 폭력의 역사다. 음악을 다룬 네 편은 『나의 서양음악 순례』(창비, 2011)의 짧지만 어엿한 속편이라 할 수 있다. 제3부〈‘후쿠시마 이후’를 살다〉는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촉발된 사유의 궤적을 담고 있다. 좌담을 엮은 공저서 『후쿠시마 이후의 삶』(반비, 2013)이나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반비, 2016)과 달리 홀로, 낮은 목소리로 ‘후쿠시마 이후’를 이야기한다. 지은이에게 ‘후쿠시마’는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시험당하는 장(場)이며, 돌연한 사고가 아니라 히로시마와 체르노빌의 예견된 미래다. 프리모 레비의 시나 마루키 부부의 그림 <원폭도>에 우리 시대의 파국을 잇대는 대목은 서경식답다. 서술은 묵시록적 과장 없이 담담하여 외려 서늘하다. 제4부 〈출구 없는 세계—냉소와 망각의 틈바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코로나19 팬데믹, 미얀마·벨라루스·홍콩의 정치 탄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몽의 시대”와 펼친 고투의 기록이다. 기행문, 감상문, 서평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에세이들은 미술, 영화, 문학 등을 소재로 하여 정치, 외교, 환경, 의료, 교육 등 각 방면에 걸친 오늘날의 세계적 위기 상황을 진단한다. 중동의 교전 상태(학살)나 트럼프의 재선에서 보듯 불확실성이 커져만 가는 현재, 그 진단과 통찰은 여전히 적실하다. ‘세계고(世界苦)’를 공유하는 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편집자가 전하는 말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한 해가 되어갑니다. 1주기에 맞춰 선생이 만년에 남긴 에세이를 묶어 펴냅니다. 선생의 글을 두고 흔히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은 금은세공의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끌질하듯 한 자 한 자. 그렇기에 “마음을 에는 듯한 글”이 되었습니다. 선생은 2005년부터 타계한 해인 2023년까지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일정한 분량으로,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물며 아름다움까지 담아내는 것은, 대개 언감생심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선생은 스무 해 가까이 해나갔습니다. “개인적 견해를 드러내는 특정 필자의 짧은 에세이”를 칼럼의 정의로 받아들인다면, 선생은 뛰어난 에세이스트임에 못지않게 뛰어난 칼럼니스트였습니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싸움”에 한평생 어깨를 걸었던 선생이, 태생적으로 ‘오늘만이 중요한’ 매체인 신문에 실은 일련의 에세이 ‘서경식 칼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편집자 최유철 -인쇄소로부터 가제본된『어둠에 새기는 빛』을 받았던 날 저녁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다시 거꾸로 가는 역사에 참담해 하며 이 책을 만들어가던 시간을 돌이켜봤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서경식 선생의 책은『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였습니다. 성급한 열정으로 끓어올랐다가 사회의 더딘 변화에 이내 풀죽던 사학과 신입생의 마음에 박혀 왔던 문장은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왔다 갔다 하며 느릿느릿 흘러가는 물결 같은 역사,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희생들을 이야기하다가 저자는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라고 단호하게 정의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급류에 휩쓸리고 모래 속에 파묻힌 고야 그림 속 개, 라고 생각했다고 글을 맺습니다. 이제 30여 년이 지나 그의 독자에서 번역자를 거쳐 편집자가 된 지금, 바로 그 그림을 골라 표지에 올리고, 그 문장들을 뽑아 면지에 실었습니다. 고야의 그림에 자신을 빗대며 역사를 말한 선생에 관해서 김연수 소설가도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 나면 그가 왜 당시 이 개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니까. 그렇지만 왜 이처럼 매우 복잡하고도 많은 희생을 치르는 방식으로만 진보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왜 이런 방식의 진보뿐일까? 다른 방식으로 진보할 수는 없을까? 이 의심이 바로 진보를 믿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래다. 온몸으로 이 모래를 뒤집어쓰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