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잊어버리지 마라.
……나는 나를 잊어도.’
알츠하이머 간병 7년, 유머와 비탄의 회고록
***뉴요커 2023 올해의 책***
***스미스소니언 2023 올해의 과학책***
『심장: 은유, 기계, 미스터리의 역사』 저자 샌디프 자우하르 신작
기억이 없는 삶도 삶일까?
소멸되는 기억과 붕괴하는 자아,
그리고 기억을 초월해 재구성되는 관계와 존재存在
인도계 미국인 과학자 프렘 자우하르는 어느 날부턴가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고, 새로 산 금고 비밀번호도 가물가물했다. 한동안은 그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찾아온 기억력 감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건망증이라기엔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임에선 툭하면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고, 가족사진 속 얼굴들이 문득 낯설게 보이기도 했으며, 외출했다 집을 찾지 못해 길을 잃는 날도 있었다. 아내는 아들들을 집으로 불렀고, 그를 신경과 의사에게 데려가게 했다. 거기서부터 이 책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내가 알던 사람: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는 프렘의 둘째 아들이자 심장내과의인 샌디프 자우하르가 2014년 가을부터 7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기억을, 세상을, 끝내는 자기 자신을 잃어간 아버지를 회고한 책이다. 이 회고는 당연히 관계와 돌봄의 역학에 관한 고통스러우리만큼 진솔한 고백이다. 동시에 뇌의 퇴화와 정신의 침식에 관한 의학적 탐구이면서, 기억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관한 성찰이기도 하다.
기억이 변화시키는
존재의 방식과 관계의 결
이 책의 원제는 My Father’s Brain, ‘아버지의 뇌’다. 샌디프 자우하르는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을 확진받는 순간부터 그분의 뇌, 그리고 치매에 걸린 다른 환자들의 뇌를 이해하기 위한 독자적인 탐구에 돌입한다. 그는 이 책이 그 탐구의 여정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의학적인 표현이지만 이 여정은 결국 그 탐구 대상이 ‘뇌’라는 점에서 정신으로 축적된 삶 자체, 그 안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기억과 인간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또 이런 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져가는 순간에도, 어떻게 한 사람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겐 그럴 수 없을지언정 타인의 세계에서) 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한 하나의 사례가 된다.
이 책은 (…) 아버지와 나의 관계, 특히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마에 무너져가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이 책은 가족 구성원들이 간병인 역할을 맡아야 할 때 생기는 여러 문제점과 동기들 간의 유대, 그 유대를 시험하는 난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대화와 논쟁은 사적인 동시에 다분히 보편적이다. 집안 어른의 정신적 침식을 마주한 가족이 가질 법한 대화와 논쟁의 전형이랄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개인적인 사연만이 아니라 뇌와 기억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면서 뇌가 퇴화되는 과정과 이유를 논하는 한편, 기억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흐릿해지고 달라지는 와중에도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또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개념이 치매로 인해 복잡해지는 까닭과 더불어, 이 모든 것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그리고 사회에 갖는 의미까지 두루 살펴본다.(26-27)
저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그분이 나날의 일상에서 마주쳐야 했던 상실과 혼란을 옆에서 목격한다. ‘나를 잊어버리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눈빛에 응답하듯, 그는 가족의 역사와 자신의 기억을 동원해 그분을 기억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해본 적 없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인간 존재의 조건을 새삼 의식하면서 부친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참으로 극적인 변화였다”(19)고 저자는 말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기만의 실험실에서 밀 유전학을 연구하던 세계적인 과학자였던 아버지가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고, 그로부터 몇 년 만에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 후 끝내는 숨 쉬는 법마저 잊어버리기까지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투병과 간병이라는 고통스런 대응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극적인 변화’는 아버지의 뇌뿐 아니라, 가족의 관계에도 찾아왔고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어쩌면 투쟁적으로 관계를 영위하고 삶을 다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지식이 두터워질수록 나는 아버지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틈을, 내가 평생을 노력했지만 좀처럼 좁히지 못했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길은, 생각건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노정이었다. 일곱 해에 가까운 세월을 나는 다그치고 재촉하며, 협박하고 회유하며, 애원하고 간청하며, 격려하고 조소하며 보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걷기를 강권했고, 책을 사다 안겼고, 억지로 퍼즐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동시에 증오하기도 했다.
‘나를 잊어버리지 마라.’ 아버지의 두 눈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고로 나는 아들 된 도리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도록 온전히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버지 당신보다도 더 상세히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기묘한 책임감이었다. 모임에 나가면 나는 아버지가 책도 쓰고 학술상도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고는 했다. 아버지가 당신을 괴롭히는 병보다 더 큰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식으로나마 모두에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27-28)
한편 아버지가 당신에게서 당신 자신을 잃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들의 이해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이전에 불가능했던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모순적인 사실은 기억이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체 기억이 무엇이길래?’ 이 질문은 책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 자신이 누구이길래?’와 비슷한 말로 기능한다. 전향성 기억상실증을 앓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니가 끝내 아내를 죽인 진범을 말해주는 메모지를 없애버렸듯, 기억은 때로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기억의 정체와 의미, 네트워크에 관해 성찰하면서 저자는 기억의 본질을 활용해 관계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우리 기억은 여러 장소에 존재한다. 책 속에, 하드드라이브에, 스마트폰에, 그리고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다른 독립적 실체 안에도 기억은 살고 있다. 심지어 기억은 한 개 이상의 뇌, 이를테면 한 가족 내 여러 구성원의 뇌 사이에서 공유되기도 한다. 일차적 뇌가 기억하기에 실패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뇌들이 그 일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다.(97)
아버지가 실려 나가고 사람들이 통곡하기 시작했을 때, 낯선 추억 하나가 나를 찾아들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온 이듬해의 기억이었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나는 켄터키 옛집 뒤편의 흙먼지 자욱한 언덕 비탈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평소 내가 기억하던 그날의 아버지는, 내가 그 언덕을 혼자서 내려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곧바로 흥미를 잃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생기 없는 몸을 부여잡고 있던 그 화창한 3월 아침의 기억 속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아버지도 내 옆에서 달리고 있었다. 행여 내가 넘어질세라 나와 속도를 맞춰 달리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열심히 페달을 구르며 나뭇가지와 잡풀이 깔린, 바큇자국이 깊이 파인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그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사실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내 기억이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간직하기로 했다.(340)
그는 이렇게 기억의 개념과 추억이란 자원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자기 안에서 다시 정의하고, 그분을 보살피며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만년의 시간과 어떤 면에서 연결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