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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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표지글]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2003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위기’니 ‘죽음’이란 말은 ‘이동’과 ‘탄생’을 우울하고 과격하게 예언한다. 문학이 사라지는 곳에서, 문학은 새로운 육체로 또 다른 생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육체의 운명과 더불어 나의 생을 실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흔들리는 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위기’와 ‘죽음’의 징후만을 드러내는 데서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죽음’ 쪽으로 나는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나는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다. ‘주어지지 않은 역사’이므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가 알았던 것에 기댈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다만, 나의 무지의 힘으로 으으으 달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