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본의 생활 속 디자인 중 뛰어난 디자인 제품 100개를 선별하여 디자이너와 함께 그 제품을 소개한 『일본의 제품 디자인』(원제: Made in Japan)이 미메시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 나오미 폴록은 미국 태생의 건축가이며, 현재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의 건축은 물론 디자인에 관련하여 일본 내외의 매체에 활발하게 기고하고 있다. 건축가가 지은 제품 디자인에 관한 글이라니, 바로 그 연관성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100개의 제품 디자이너 중 거의 대부분이 건축가라는 사실을 보면, 건축 디자인과 제품의 디자인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흥미로운 방법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제품은 이렇다. 자판기, 체온계, 스카치테이프 디스펜서, 계량스푼, 도시락통, 멀티탭, 탁상용 가스레인지, 파쇄기, 실내용 사다리, 가위, 가습기, 토스터, 압정, 세면대, 부엌칼, 지우개, 요리용 볼, 휴지통, 프라이팬, 족집게, 옷걸리 등등 실용성이 곧 디자인이 되어 버린,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조명, 의자, 시계, 컵, 식탁, 손목시계, 자전거 등 세계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욕심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디자인을 하고 있는 생활용품들 역시 젊은 일본 디자이너들의 색다른 디자인을 입고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일본의 디자이너들: '모노즈쿠리'라는 개념에 충실하다 100개의 디자인 제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저자는 서론에서 정확하고 간결하게 일본 디자인의 개념과 배경 그리고 역사를 보여 준다. 또한 일본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 즉, 센노 리큐(훌륭한 솜씨 속에서 담긴 단순성과 함축적인 가치를 발견했던 일본 다도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일본의 전통적이고 서민적인 공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민예 운동 주도 학자), 야나기 소리(우아한 작품으로 민예 운동과 일본 미학을 발전시켰던 제품 디자이너), 단게 겐조(예술적 관점을 잃지 않으며 건물을 지은 건축가), 후카사와 나오토(일본 디자인의 독창성을 세계에 알린 제품 디자이너) 등이 일본 디자인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주요한 맥락 속에서 소개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 '모노즈쿠리'를 이야기한다. '물건'이라는 뜻의 '모노'와 '만들다'라는 뜻의 '쓰쿠리'를 합쳐 만든 '모노즈쿠리'라는 합성어는 뜻 그대로 물건을 만드는 데에 깃드는 정신을 말한다. 간결하고 명확한 이 개념은 물건을 만드는 행위와 그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정신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정신과 행동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제품 디자이너들은 과거 선조들의 '모노즈쿠리'처럼, 새롭게 변화된 환경과 시장의 취향에 대응하여 그들 나름의 '모노즈쿠리'를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모노즈쿠리'의 원천은 낭비되는 기술과 디자인을 최대한 가려내고 배제할 줄 아는 자신감, 스스로의 몸에 익힌 기술과 감각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성실성,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가치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읽어 내는 감각과 지각력 그리고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수정과 시도를 반복하는 디자이너로서의 자긍심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과정들 즉, 관념적인 아이디어에서 종이 위의 스케치를 거쳐 최초의 모델이 탄생하고, 최종 견본을 거쳐 정식 제품으로 소비자에게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들을 이야기로 들어보면 어느 하나 정형화된 길이 없다. 관념 속 아이디어의 실체를 잡을 때까지 그들은 이전에 시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들을 조사하고 강구했다. 이들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제품 디자인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질감이 없이 삶에 스며들 수 있는 물건, 소비자의 손으로 자연스럽게 만져지는 물건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섬세한 노력과 끈기, 즉 만드는 이의 영혼이 깃든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본의 시장 때문이 아닐까. 지우개 하나, 압정 하나, 사발 하나를 만드는 데도 완전한 정신을 몰두하는 이 디자이너들은, 이미 비범한 디자인과 뛰어난 품질을 가리키는 상징어가 되어 버린 '메이드 인 제팬'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일본의 디자이너들: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기술을 관통하다 전통을 일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이들은 가장 일본적인 기술과 실력을 꾸준히 연마하고 수행하는 지역의 장인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완벽한 제품'으로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이들 장인뿐이라며 협업을 간절히 원했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되어 온 기술과 솜씨 그리고 영혼을 일상의 디자인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은 어쩌면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의 과제인지 모른다. 저자는 이 책 속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전통공예의 가치를 재해석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시장과 대면해야 하는 장인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관계를 맺어 가는지, 그리고 지역 공예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정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들려준다. 도마야 현의 금속 장인과의 협업을 이룬 데라다 나오키의 아이스크림 스푼 '15.0%', 나가노 현의 목재 장인과의 협업을 한 사카이 도시히코의 '하나의 신을 위한 제단', 스가하라 글래스웍스의 유리 장인과 협업을 한 스즈키 게이타의 '후지아먀 글라스', 일본의 전통 과자 장인과 협업을 했던 오가타 신이치로의 '히가시야 모나카', 히로시마 마루니 목재 산업의 목재 장인과의 협업을 이루었던 후카사와 나오토의 '히로시마 암체어', 니가타의 대장장이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가와카미 모토미의 '모카칼', 시코쿠의 매듭 장인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다나카 유키의 '유 아 이' 등이 전통과 기술을 결합시킨 결과물이자, 일상의 쾌적함과 즐거움을 준 물건들이다. 일본의 디자이너들: 디자인의 실천은 일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공식을 따르다 실용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는 커다란 범주 속에 속해 있는 이 '제품 디자인'들을 일상으로 들여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을 적절한 공간으로서, 생활의 일부로서,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서 놓아 두어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로 사용을 하는 것일 테다. 그래야 대량생산된 동일한 물건이라도 진정한 '나만의 물건'이 되는 게 아닐까. 여기에 소개된 제품들은 직접 일본 현지에서나 웹사이트를 통해 구매를 할 수 있으며, 국내에도 공식적으로 수입되어 소개된 것들도 있다. 이들의 디자인 제품은 이제는 돈을 주면 살 수 있다.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이라고 해서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 디자이너의 제품이라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물건에 생명에 주고, 그것이 빛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사용자의 몫이다. 여기 소개된 디자이너들은 사용자의 시선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그 물건들이 사용될 때는 물론 사용되지 않는 시간들에도 그들의 제품이 소비자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어떠한 쾌적함을 가져다 줄 것인지 그리고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빛을 발하게 될 것인지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