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 문화의 적폐 청산!
지금 한식에게 필요한 것은 맛집, 전통, 손맛, 엄마가 아닌 ‘비평’이다
스마트폰과 알파고의 시대, 여전히 한식은 손맛과 신비로운 전통으로 포장되어 손댈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아 있다. 이 노작(勞作)은 한식도 별수 없이(!) 과학의 틀이 필요하다는 걸 입증한다. 나아가 품격 없는 한식에 대한 뼈아픈 직설을 담고 있다. 이른바 집밥에서 최고급의 한식당까지, 그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박찬일(『백년식당』 저자, 셰프)
음식 평론가 이용재는 '현대적 한식'이라는 새로운 전통의 발명을 야심차게 제안한다. 그는 '모더니스트'로서, 맛의 체계적 경험을 청사진으로 삼아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감각 경험 전반의 현대화를 추구한다. ─박해천(『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저자, 디자인 연구자)
1인 가구, 저녁 없는 삶, 온갖 맛집이 밀려드는 시대,
현대적인 한식의 비전을 제시한다
1인 가구 수는 500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40퍼센트가 넘는 가족이 맞벌이로 가계를 꾸려나간다. ‘저녁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수 년 전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현재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것은 ‘저녁 없는 삶’, 그리고 기대감소 시대와 같은 용어다. 손맛을 습득할 시간은커녕 하루 한 끼 직접 조리도 어려운 현실이다. 동시에 맛집, 인기 프랜차이즈의 수명은 점차 짧아지고, 다양한 세계 음식을 밀려드는 와중에 외식업의 10년 생존율은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많은 음식 책이나 미디어는 여전히 김치, 장류 중심의 ‘전통 한식’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집밥’과 ‘바깥밥’을 통틀어 한식의 위기라 할 만하다.
『한식의 품격』은, 한국 음식 세계에 닥친 문제가 한식이 동시대의 현실에 발맞춰 변화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진단한다. 하루 한 끼 직접 요리도 어려운 현대인에게 여러 개의 반찬이 요구되는 한식의 형식이 적합할까. 1인 가구를 위한 레시피는 충분히 개발되고 있는가. 요식업 과잉과 ‘가성비’ 만능의 외식 문화 속에서 ‘수제 강박’이 낳는 폐해는 무엇일까. 또한 가사노동 분담이 OECD 회원국 최하위인 상황에서 직접 담근 김치의 미덕은 족쇄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러한 구체적인 의문과 사안을 짚어내면서 이 책은 현대화된 식생활과 동떨어진 채 구태와 습관을 답습하는 한식의 맛과 문법을 비판하며, 나아가 ‘현대적인 한식’을 위한 변화와 쇄신의 방향을 제시한다.
비혼 등을 통한 1인 가구 또는 ‘큐브 세대’가 증가 추세다. 달리 말해 사회는 갈수록 개인화되고 있는데, 과연 한식은 집 안팎의 영역에서 이런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 걸까? 마지막으로, 이 두 갈래의 문제가 맞물리는 지점에 ’삶의 질’에 대한 회의가 자리한다. 소위 ‘저녁 없는 삶’의 현실 말이다. 자가 조리가 불가능한 여건이라면 편하거나 맛있게 사 먹기라도 해야 한다. 과연 한식은 그런 미덕을 갖추었는가. 13쪽
가정 조리와 외식용 음식의 영역이 거의 구분되지 못한 현실도 영향을 미친다. 집이든 음식점이든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같은 대표 음식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음식점에서만 만들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나 개념이 희박하다. 게다가 이런 요식업의 주체가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는 부류다. 한국 남자, 특히 베이미부머를 비롯한 위 세대라면 절대 다수가 취사를 포함한 가사 노동의 요령을 익히지 못했다. 여성의 일이라 치부하며 직장을 구실로 동의 없는 역할 분담, 곧 일방적인 책임 전가를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50대까지 살아온 사람들이 갑작스레 음식을, 그것도 팔기 위한 것을 삶의 한가운데 놓고 적응할 수 있을까. 심지어 다른 음식점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지도 않는다. 가정식을 복제하기도 급급한 상황이니 실패는 따놓은 당상이다. 466쪽
기대 감소의 시대라고 한다. ‘감소’라는 단어가 그렇듯, 당연히 긍정적인 상황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은 저성장이다. 더 이상 예전, 즉 70~80년대만큼 전대미문의 고도성장을 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닥쳐온 것이다. 이런 시대에 발맞춰 기대 감소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한식이 존재한다면 제1순위가 바로 김치다. 기대 감소의 대상은 소유권이다. 모두가 나의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시행착오를 통해 기술을 갖춘, 고도로 숙달된 소수 전문 인력이 노력한 결과물을, 우리는 마치 바로 나의 산물인 양 착각해왔다. 329~330쪽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한 모바일 솔루션을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고, 이미 현재형이다. 생활의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인 음식 관련 앱은 이미 스마트폰의 도래와 더불어 등장한 지 오래다. 음식 주문 및 배달 앱은 기본이고 요리나 식단은 물론, 요식업 및 자영업 운영을 위한 앱 등이 존재한다. 반찬이 정말 매일 바뀐다고 하자. 메뉴, 특히 반찬 관리 앱을 만들어 영업 전 업데이트한다. 각 반찬과 가격 정보만 입력하면 끝이다. 이를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깔아 메뉴로 쓴다. ‘전산화’가 이미 케케묵은 단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각종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이 정도의 시스템 구현이 어렵다면 그만큼 한식이 음식 외적인 영역에서도 효율적이 동시대적인 시스템 구축에 실패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304~305쪽
레시피는 요리 주체의 시행착오를 대신 겪음으로써 성문화된 조리법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비해 높은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칼질처럼 조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다는 전제 아래, 조리자의 출발선을 앞당겨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레시피의 의무는 먼저, 또 자발적으로 실패하기다. 벌어질 수 있는 실패의 시나리오를 파악한 뒤, 각각의 예방 및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 316쪽
종합하면 즉석밥이나 도시락 가게 등의 공업적 방안에 기대지 않는 한, 밥은 장기 보관과 외주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길은 한 갈래다. 밥을 개인이, 그것도 자주 지어야 한다. 먹는 입장에서는 편할 수 있지만 취사 담당자에겐 고역일 수 있다. 취사를 포함한 가사노동이 대부분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할당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소위 ‘따뜻한 집밥’이란 성차별적인 노동 착취의 산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74쪽
오로지 맛의 최선을 위한 체계적인 음식 비평서
한식을 구속하는 전통과 정서를 덜어낸다
기존의 한식 비평, 식문화 담론에 ‘맛의 논리에 대한 체계적인 계산과 분석’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로 맛을 내기 위한 원리와 개념보다는 정서적 가치이며, 맛과 재료, 조리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 음식을 둘러싼 비과학적 음모론, 재료주의, 건강 우선주의, 민족주의 등의 음식 외적인 담론이었다. 그 결과 만두, 김밥, 순대 등의 일상 음식의 맛과 다양성은 빈약해졌고, 한식 세계화와 자랑스러운 발효식품 김치를 내세우면서도 김치를 어떻게 홍보하고 응용할지에 대한 전략은 부족하다. 이를테면 한식은 ‘화학’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모든 재료를 악한 것으로 여기는 한편, 캡사이신 농축액으로 강화한 매운맛을 한국의 맛이라 내세운다. 소금으로 맛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소금 사용법과 전략을 고민하기보다 천일염 논쟁에 에너지를 허비하는 식이다.
한식 비평과 담론이 부재한 가운데, 이 책은 음식의 핵심인 맛에 집중하여 비평과 과학의 언어로 한식의 맛과 형식을 논한다. 인스턴트 음식인 라면을 한국적인 맛의 대량생산을 이끈 한식으로 호명하고, 예외적인 입지에 서 있는 평양냉면으로 한식의 제반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책의 포문을 여는 것부터가 상징적이다. 또한 추상적 차원의 논의뿐 아니라, 한식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과 제안 사항들 역시 풍부하게 제시한다. 국물 내기의 개선안으로서 양식의 ‘여과법’ 도입을, 한식의 구이, 조림 등의 조리법을 보정하는 방편으로 오븐의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