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은유, 무라카미 하루키 추천
“성경에 비견되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불멸의 고전
소설과 희곡 부문 양쪽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 손턴 와일더의 첫 번째 퓰리처상 수상작 장편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어느 날 찾아온 예상치 못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특히, 설명할 수 없는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모든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손턴 와일더의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18세기 초,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인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갑작스럽게 무너지고, 그 다리를 건너던 다섯 명의 여행자가 목숨을 잃는다. 이 비극적인 사고를 목격한 프란치스코회 주니퍼 수사는 희생자들의 삶을 조사하며, 이들의 죽음이 신의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를 밝히려 한다. 소설은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와 사랑, 예술, 그리고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927년에 출간한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문장가들의 교과서’라는 찬사를 받으며 192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출간 첫해에만 30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만 주어지던 퓰리처상의 수상 기준을 바꿔 놓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 혁신적인 플롯, 그리고 철학적 성찰을 담아내며,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삶과 죽음, 운명과 예술
그리고 사랑에 관한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1927년,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 손턴 와일더의 장편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세상에 나왔다. 모더니즘 문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 그는 오히려 고전주의 문학의 소박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에 기대어 이 작품을 완성했다. 소설은 출간 1년 만에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저자 손턴 와일더, 그의 나이 고작 서른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더욱이 이 작품은 상업적인 성과를 넘어, ‘위대한 문학적 산물’, ‘문장가들의 교과서’, ‘현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1928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는 데까지 이른다. 당시 퓰리처상은 미국적인 삶과 배경을 잘 담아낸 작품에 수여되었지만, 페루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그 수상의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역작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한국에서도 1958년 출판사 신양사에서 『운명의 다리』로 처음 소개되었으나 이후 절판과 재출간을 거듭한 끝에 2025년 클레이하우스에서 네 번째로 새롭게 번역 출간된다. 유달리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 속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상처를 극복하기도 전에 다시 상처를 새기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 피 흘리는 채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라는 굴레의 본질이기에 우리는 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새롭게 소개되는 이번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버보이』 등을 옮겼던 정해영 번역가의 정확하고 섬세한 번역과,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밝혔던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제를 붙여 우리가 여전히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명료한 이유를 더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비극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죽음 가까이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다. 특히, 사고나 자연재해, 질병 등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모든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1714년 7월 20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갑작스럽게 붕괴되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목숨을 잃는다. 이 비극적인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이들의 죽음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신의 계획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는 이 사고를 ‘신의 의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완벽한 기회라고 믿으며, 장장 6년에 걸쳐 희생자들의 삶을 조사하고 십여 권의 방대한 기록을 남긴다. 기록물에는 다섯 명의 희생자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수천 건의 사소한 사실과 일화, 그리고 관련된 증언들이 담겨 있었다.
딸에게 사랑을 갈구하던 외로운 노파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충직한 하녀였던 소녀 페피타, 쌍둥이 형제를 잃고 슬픔에 잠긴 청년 에스테반, 유명한 여배우의 후원자이자 멘토였던 피오 아저씨, 그리고 병약한 어린 소년 돈 하이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고,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상실을 겪으며, 때로는 늦게나마 달라지기를 꿈꾸던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과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안톤 체호프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임무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작가인 손턴 와일더 역시 우리가 경험하는 비극의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왜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묻는다. 그리고 와일더는 마지막 장에서 수녀원장의 입을 빌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작은 힌트를 남겨둔다.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영국 전 총리 토니 블레어가 9·11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낭독하기도 했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고, 서로에게 남긴 사랑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를 연결하는 것도, 우리에게 남는 것도 오직 사랑뿐이다. 책을 덮고 나면, 가슴 벅찬 여운이 먹먹하게 퍼진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어쩌면 내일 갑자기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자리한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척에 있는 죽음 앞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던지는 이러한 질문들은, 책이 출간된 지 약 백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리고 머나먼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