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복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초상화 속 여성들의 패션으로 읽는 역사와 문화
실용을 넘어 개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한 여성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르네상스부터 벨 에포크까지
근대 서양 패션의 기원과 변화를 명화로 만난다
의복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실용품이지만, 그 외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남들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그 주인의 생각과 신념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복식은 그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는 물론 경제와 역사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의 패션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매체는 그림, 그중에서도 초상화이다.
《초상화의 옷장》에서 저자는 르네상스부터 벨 에포크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19점의 그림과 그 주인공 여성들을 소개한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도 패션을 통해 제각기 아름다움과 개성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의복뿐 아니라 신발과 머리장식을 포함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과 그림 속 숨은 요소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디테일, 다양한 참고자료와 함께 제시되는 풍부한 배경 스토리로 그녀들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서양 초상화와 그림 속 여성들의 의복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이다. 온몸을 옷으로 감싸 신 앞에 겸손함을 보이던 신 중심의 중세 시대가 지나고 인본주의와 함께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 바야흐로 여인들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여전히 사회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여인들은 의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미적 탐구를 시작했다. 기록을 위해 단순히 외형을 묘사한 대상화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시작한 초상화 속 여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패션의 유래와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치장에 눈을 뜨고 경쟁적으로 패션 소품과 스타일을 만들어 전파하던 여인들의 열정적인 삶과 이야기를,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 여정을 담았다.”
-〈작가의 말〉 중
여성,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다
신 중심의 중세 시대가 저물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오자 여성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15세기 초 피렌체 여성 프란체스카 디 마테오 스콜라리의 초상화(정확히는 남편이 함께 그려진 이중 초상화)(13쪽)는 시대를 감안하면 굉장히 혁신적인 작품이다. 그림의 중심에 여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입고 있는 의복, 패용하고 있는 장신구를 비롯하여 그림에 묘사된 모든 요소들이 주인공인 프란체스카의 출신과 가문의 부유함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왕족이 아닌 인물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초상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초상화 속 복식은 여성이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화(50쪽)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4대 여성 초상화’로 불리는 네 점의 초상화 중 가장 먼저 그려진 이 그림에서 지네브라 데 벤치는 수도복의 일부인 스카풀라로 추정되는 검은 천을 목에 걸치고 있다. 이는 오빠의 강요로 진행된 결혼에 반발하고, 당시 지적인 여성들의 피난처였고 그녀 역시 교육을 받았던 곳인 수녀원과의 유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그녀는 아예 수녀원에 들어가 검은 수도복을 입은 초상화를 남겼는데, 젊은 시절 그렸던 초상화에서보다 오히려 밝고 생기 있는 표정으로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다.
유행을 선도한 ‘패션 리더’들
패션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면서, 스스로 유행을 만들어내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여자’라고도 불리는, 만토바 후작부인 이사벨라 데스테는 스스로 패션에 큰 관심을 갖고 유행을 선도한 패션 리더였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궁정의 여성들이 그녀처럼 옷을 입기를 원해 그 스타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형을 요청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미지를 초상화로 남기는 데에도 욕심이 컸지만, 그 때문인지 오히려 그림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도 초상화를 의뢰했지만 그는 스케치만을 남기는 데 그쳤다. 이사벨라가 60대 때 티치아노에게 그리게 한 초상화(74쪽)는 수십 년 전 다른 화가가 그린 그녀의 젊은 시절 초상화와 그 시절 자신이 유행시켰던 스타일의 옷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었다.
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 기념 초상화(352쪽)에서 흰 웨딩드레스와 베일을 착용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것은 굉장히 낯선 풍경이었음에도, 결혼을 앞둔 빅토리아 여왕은 화려한 예복 대신 자신이 원하는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순백의 신부’라는 관념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흰 드레스를 입고 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데, 이 또한 지금까지 결혼식 하객들의 암묵적인 룰로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패션의 유행
새로운 패션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노력이 순탄치는 않았다. 교회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 또한 여자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남성들을 유혹한다며 베일로 감싸거나 아예 자르게 강요하는가 하면, 사치 금령을 내려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제하려 했다.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지지대를 이용해 크게 부풀린 형태의 치마인 과르딘판테가 유행하자 이를 두고 부정한 임신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한 옷이라고 비난하며 당시 국왕인 펠리페 4세가 공식적으로 금령을 내렸다. 심지어는 이 과르딘판테 100여 개를 광장 옆 감옥 발코니에 내걸어 ‘공개 처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갈 운명이었다. 패션의 유행을 막을 방법은 다른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는 것뿐이었다. 펠리페 4세가 금지한 과르딘판테조차 당장 아내인 마리아나 왕비가 아랑곳하지 않고 애용해 스페인 궁정에서 대유행했다. 그 딸인 마르가리타 테레사 역시도 어릴 때부터 과르딘판테를 착용했고, 그 모습은 〈시녀들〉(243쪽)을 비롯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과 초상화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복식에서 시대와 역사를 읽어내다
그림 속 복식은 그 시대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의복의 유행에는 당대의 문화, 경제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여성 초상화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152쪽) 속 여인은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세월이 지나면서 빛을 잃은 것이고, 실제로는 ‘네크라인이 금실 자수로 장식된, 짙은 녹색으로 추정되는 몸통에 노란색 탈착식 소매가 달린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나리자〉의 주인공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인 리사 게라르디니의 남편은 피렌체의 직물업자로 뽕나무 재배부터 실크 생산에까지 모두 관여하는 큰 상인이었다. 그가 초상화를 제작할 부인을 위해 최신 유행 스타일의 옷을 준비했을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생각하면 〈모나리자〉는 지금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초상화에 묘사된 의상이 나라 간의 문화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때도 있다. ‘검은 여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의 왕비가 되어, 남편인 앙리 2세가 죽은 후 어린 아들들 대신 사실상 프랑스를 다스린 뛰어난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초상화에서 프랑스식 머리장식인 코이프 프랑세즈에 스페인식 목장식인 고르게라를 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행한 부채를 들고 있는 이색적인 차림새다.(189쪽) 이는 여러 나라의 문화가 뒤섞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