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지구화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 ―비정상성의 시대, 정의론의 틀을 새롭게 설정하는 정치철학!! 우리는 지금 ‘비정상적 정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의 주체(당사자)는 ‘누구’인지, 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한 의견 일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핵심적 부정의는 무엇인가? 경제적 불평등인가, 소수자에 대한 무시인가, 민주주의 제도의 퇴화인가? 부정의를 해소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영토국가의 국민인가, 세계시민적 개인인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통치자들의 조직인가, 자본에 반대하는 초국적 대중운동인가? 기존의 정의론들은 이런 질문에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기는커녕, 서로 다른 전제들 속에서 무의미한 논쟁만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 질문들에 답하는 데 필요한 ‘원칙’을 재설정하는 일이다. 그린비출판사에서는 미국의 사회·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지구화 시대의 정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Scales of Justice: Reimagining Political Space in a Globalizing World)을 ‘프리즘총서’의 5번째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서 프레이저는 ‘영토국가’와 ‘경제적 재분배’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던 기존 정의론들이 현실의 변화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나아가 그녀는 지구화하는 우리의 세계에 부합하는 정의의 내용˙당사자˙방법을 규정하고, 정의에 관해 상충하는 견해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성찰적˙민주적 정의론을 정초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뉴욕에 위치한 ‘뉴스쿨 사회과학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교수이다. 미국에서 진보적인 학문이 허락되는 얼마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인 이곳에서 그녀는 여성주의 이론과 현대 정치철학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tler) 등 오늘날을 대표하는 사상가들과의 활발한 논쟁을 통해 비판이론과 정의론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프레이저의 저작으로, 그동안 그녀가 쌓아 온 이론적 성찰을 집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과거의 자신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위르겐 하버마스(J?rgen Habermas),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같은 여러 선배 사상가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정의론을 구축하고 있으며, 여성주의 운동과 세계사회포럼 등의 실천적 저항운동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이전 이론이 지니고 있었던 약점을 성찰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현재 한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아니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비정상적 시대를 겪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 대의제의 위기 등 사회 거의 모든 차원에서 부정의가 전면화되어 있으며, 이 차원들 간의 복합적 상호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이론적 틀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하기라도 하는 듯, 얼마 전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전체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체계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기존 정의론들을 비판하고 차별화된 관점으로 정의 문제에 접근하는 『지구화 시대의 정의』는, 우리 시대/사회 특유의 부정의들을 이해하고 해소하려는 노력에 강력한 이론적˙실천적 토대를 제공해 줄 것이다. ‘지구화 시대’에 걸맞은 다차원적 정의론 수립 전략! ‘비정상성의 시대’, 정의의 문법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베스트팔렌적?케인스주의적 틀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근대 영토국가가 정의의 문제를 생각하기에 적합한 단위이고 그러한 국가의 시민들이 적절한 주체들이라는 생각은 이제 공리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정치적 요구와 관련된 기존 구조는 불안정해졌으며, 그 결과 우리가 사회정의에 관해서 논쟁하는 방식도 변화하게 되었다(2장, 32쪽). 이 책 전반부(1~4장)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오늘날 정의론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그녀는 우리가 ‘비정상적 정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의의 내용˙당사자˙실현방법 등 모든 면에서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정의론은 여전히 ‘케인스주의적?베스트팔렌적 틀’(Keynesian-Westphalian Frame)을 고수하고 있다. 이 틀은 오랫동안 사회정의론의 암묵적 전제 역할을 했으며, 정의의 범위와 문제를 영토국가와 경제적 재분배에 한정시켰다. 하지만 ‘지구화 시대’에는 국경과 영역을 초월한 부정의들로 인해 베스트팔케인주의적?베스트팔렌적 틀이 파열되고 있다. 초국적 기업의 전 지구적 약탈, 강대국의 패권적 일방주의, 급증하는 이주와 이주자에 대한 차별, 지구온난화, 에이즈의 확산, 국제 테러리즘 등 현실에서 혹은 잠재적으로 우리 삶을 파괴하는 해악들 중 ‘영토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경제적’ 부정의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적˙민족적˙인종적 차별도 우리 시대의 핵심적 부정의이며, 나아가 정의 문제가 이처럼 다양한 공간과 영역을 포괄하게 됨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정의론들은 변화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영토국가와 경제적 재분배를 넘어서는 이론도 산출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이저는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현재 정의론이 처한 위기를 진단한다. 그녀에 따르면 지구화 시대의 ‘비정상적 정의’ 상황이 완전히 임의적인 것은 아니며, 정의론은 중심적인 세 가지 마디(node)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그 마디들이란 바로 정의의 내용˙당사자˙방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의의 ‘내용’에 관한 공유된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어느 사람이 분배부정의를 확인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은 문화적 차별을 감지하며, 또 다른 사람은 정치적 지배를 발견한다. 또한 우리는 정의의 ‘당사자’에 관해서도 공유된 관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어느 사람이 국민국가적 당사자를 통해 정의 문제의 틀을 설정하는 데 반해, 다른 사람은 초국적 혹은 지구적 당사자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사람이 국가의 법이나 국가 간 조약이 갖는 권위에 호소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국제연합이나 (앞으로 고안되어야 할) 세계시민적 민주주의에 주목한다. 이처럼 정의의 주요한 세 차원이 확실성을 결여한 결과, 사람들은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지구화 시대의 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구화 시대에는 정의의 틀 자체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정상적 시대’는 기존의 정의 원칙들을 파괴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은폐되었던 부정의들을 폭로하고 그것들까지 해소하는 새로운 정의론을 구축하도록 자극받기 때문이다. 케인스주의적?베스트팔렌적 틀 안에서 정의론은 주로 경제적 재분배만을 정의의 ‘내용’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시민만을 정의의 ‘당사자’로 간주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정의에 관한 논쟁들이 아무리 치열했어도, 이 전제들은 문제시되지 않은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반해 프레이저는 현실의 변화와 선배 사상가들의 통찰 그리고 진보적 사회운동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기존 정의론들의 암묵적 전제를 비판하고 오늘날 현실에 부합하는 독창적인 정의론을 구축한다. 그녀는 위에서 언급한 ‘비정상성의 세 마디’ 모두를 고려하는 새로운 정의론을 정식화한다. 정의의 ‘내용’ 측면에서 그녀는 정의 요구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이 내용들을 동등한 참여라는 규범적 원칙 아래 포괄할 것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