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사람들에게

스테판 에셀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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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뒤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노가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류의 새로운 전진을 가능케 하는가? 이 책은 단순히 <분노하라>의 해제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의 책을 읽고 ‘분노’의 행렬에 동참한 수많은 독자들에 대한 응답이며, 이 시대 앙가주망의 상징인 노(老) 투사의 치열한 사색의 결실이다. 1부 「이 땅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고함!(연설문)」에서는 특유의 신랄함이, 2부 「지금은 깨어날 때(청중 대담)」에서는 인류의 현안들에 대한 일관된 신념이, 3부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편집자 대담)」에서는 역사, 철학,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해박하면서도 독창적인 사유가 탁월한 흡인력으로 읽는 이들을 몰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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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한국어판 서문 ; 아직은 악(惡)과 고통의 시대 공감과 참여로 세상을 바꾸십시오! 여는 글 ; 공감 가득한 반항아 (롤란트 메르크) 1. 이 땅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고함! (스테판 에셀의 취리히 연설 / 2011. 10. 27) 2. 지금은 깨어날 때 (앙드레 마티 & 취리히 청중들과의 대담) 3.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 (롤란트 메르크와의 대담) 추천사 ; 글을 읽기 전에 그의 삶을 읽어라! -거세된 분노를 일으켜 세우는 늙은 투사의 육성 (홍세화)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전 세계 독자들을 향한 응답! “분노, 그 다음엔?” 2010년 작은 소책자 한권으로 전 세계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던 스테판 에셀은 이듬해 말 프랑스와 독일에서 출간된 『분노-나의 결산』이라는 책에서 전작의 한계를 스스로 지적한 바 있다. “분노는 단지 시작일 뿐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르게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의지가 필요하다”는 게 그 책의 결론이다. 올해 6월 독일에서 출간된 『분노한 사람들에게(An die Emporten Dieser Erde!』(2012)는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분노한 뒤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노가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류의 새로운 전진을 가능케 하는가? 뜨인돌에서 펴낸 한국어판 부제엔 이에 대한 스테판 에셀의 선명한 답변이 함축되어 있다. 공감하라! 행동하라! 그리하여… 세상을 바꿔라!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히 『분노하라』의 해제(解題)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의 책을 읽고 ‘분노’의 행렬에 동참한 수많은 독자들에 대한 응답이며, 이 시대 앙가주망의 상징인 노(老) 투사의 치열한 사색의 결실이다. 1부 「이 땅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고함!(연설문)」에서는 특유의 신랄함이, 2부 「지금은 깨어날 때(청중 대담)」에서는 인류의 현안들에 대한 일관된 신념이, 3부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편집자 대담)」에서는 역사, 철학,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해박하면서도 독창적인 사유가 탁월한 흡인력으로 읽는 이들을 몰입시킨다. 1%에 맞서는 99%의 저항 저자는 “인류는 일찍이 지금처럼 위험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1%의 독식’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지속불가능을 향해 치닫는 환경파괴, 서구사회의 그릇된 대응에서 비롯된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그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더없이 단호해서, 이번 책에서도 많은 분량이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전 세계는 아무런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 자본만이 판을 치는 듯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아주 강하고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기에 이제 더 나빠질 일밖에 없어 보입니다.(36쪽)” “우리는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사상에 아주 목을 매 왔습니다. 이런 사상에서 벗어나 경제개혁을 시작할 절호의 시간이지요.”(125쪽) “신자유주의 경제가 종식되고, 존 M. 케인즈가 밀턴 프리드먼의 대항마로 다시금 부상할 날이 멀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71쪽) 그가 말하는 ‘노력’은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브뤼셀 회담을 비롯한 각국 정부들의 노력 이상으로 그가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99%의 저항’이다. 그는 월가에서 시작되어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간 ‘점령시위(Occupy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다. 취리히 청중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파라데플라츠(스위스 금융중심가) 점령시위를 맨 먼저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 벤 알리(튀니지)와 무바라크(이집트)를 몰아냈던 '아랍의 봄‘ 또한 99%의 저항에 포함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바라크 정권 때 IMF가 권유했던 구조조정정책과 공공서비스 매각 등은 명백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이 혹시 국제사회의 또 다른 겨울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우려에 대해 그는 “우리에게도 헌법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던 튀니지 이슬람 정당 ‘엔나흐다’를 언급하며, 아랍의 봄이 강경한 이슬람주의로 흐르지 않고 이슬람 민주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조심스레 내비친다. ‘평화적 봉기’를 옹호하며 그 궁극은 민주주의임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자의 면모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 공감과 연대가 세상을 바꾼다 스테판 에셀은 인류 앞에 놓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국적과 계급,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공감이란 “만족하지 않는 감정”이고, 존엄(프랑스어 Indignez-Vous[분노하라] 속에는 dignit?[존엄]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을 파괴하는 힘에 대한 “반항”이며, 고통 받는 타인들을 “돕고자 하는 감정”이다. 그는 공감에 기초한 글로벌 연대만이 세상을 바꿀 유일한 힘이라고 믿는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행동가들이 월가 점령시위대에 보낸 ‘연대 서한’이 그 모델이다. “지구 전역에 흩어져 사는 한 세대 전체는 기존의 질서 앞에서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미래가 없다고 느끼면서 성장해 왔습니다…”(88쪽. ‘카이로에서의 연대서한’) 공간적 거리보다도 훨씬 멀었던 종교적 - 문화적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은 이 감동적 연대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류는 오히려 문명 간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그의 표현대로라면- 또 하나의 ‘문턱’을 넘고 있는 중이다. “인류는 공감이 그리 많이 필요치 않았던 옛 세계와 공감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문턱에 살고 있어요.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 이것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사회참여를 진전시켜 줄 것입니다.”(100쪽) 관념이 아닌 실천의 영역, 그리고 개인이 아닌 관계의 영역! 이런 문제들에 천착하지 않고서는 인류의 진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가 “이제 철학보다 인류학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백 년의 앙가주망! 이상주의적 낙천주의자 책 속에서 드러나는 스테판 에셀의 모습은 다양하다. “우리는 분노하고 참여하는 소수를 필요로 하며, 역사의 시기마다 그런 소수가 있었다”라고 할 때는 선도적 투쟁을 강조하는 엘리트 혁명주의자처럼 보인다. “분노하고 참여할 의지와 에너지가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 국회와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내야죠”라는 말은 전형적인 의회주의자의 생각이다. 유엔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유엔 개혁을 강조할 때는 도리 없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게 스테판 에셀의 진면목이다. 목숨을 건 레지스탕스 활동가로, 좌파 지식인으로, 유엔인권선언 작성자로, 그리고 외교관으로 평생을 ‘세상 바꾸기’의 최일선에서 살아 온 그에게 ‘00주의’라는 딱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느덧 100살을 바라보는 그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명패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낙천주의자’라는 것이다.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강조하는 점에서만 나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우리 앞에 많은 위험들이 존재합니다. 나는 이런 위험들이 쉽게 극복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낙천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극복하기 어렵기에 젊은이와 노인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은 낙천적이지요. 나의 낙천주의는 내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잠재력이 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가능성들이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고.”(154쪽) 발터 벤야민은『파사주』에서 “거지가 있는 한, 신화는 존재한다”라고 썼다. 이 말을 “거지가 있는 한, 유토피아는 존재한다”라고 바꿔 써 보면 어떨까? 그것은 벤야민 뿐 아니라 그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스테판 에셀의 모토이기도 하다는 게 편집자 롤란트 메르크의 전언이다. 백 년의 앙가주망! 유토피언 옵티미스트(Utopian Optimist)! 『분노하라』에서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는 인상적인 문구로 글을 맺었던 스테판 에셀은 이번에도 독자들이 오랫동안 곱씹어야 할 준엄한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합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판의 몇 가지 특징들 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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