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은 한 나라에서 가난을 지워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 나라의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주민의 생활수준을 더 떨어뜨릴 위험도 있다. 왜냐하면 다국적 호텔 체인과 부패한 지역 상류층이 관광 수익을 다 가져가는 동안, 정작 현지인은 아이들이 섹스관광에 착취되는 것과 같은 최악의 관광 현실과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산업과 마찬가지로 관광에도 무시 못할 어두운 면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관광, 엔터테인먼트, 창조 경제가 서울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며, “외국인 관광객 1천만 시대를 맞아 서울을 매력 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2013년 6월 17일 『포커스신문』). 여행과 관광이 한 나라의 정책에서 얼마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증명하는 말이다. 예전 우리의 여행이 휴식, 여유, 낭만, 모험 등과 같이 정서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지금의 여행은 한 나라의 경제에 크게 공헌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산업으로 이해된다. 관광산업은 현재 세계 경제에 7조 달러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2억 35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 세계 최대의 고용산업이다(2007년 기준).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전 세계 여행과 관광은 52.1퍼센트 성장했는데, 여기에 비견할 만한 다른 업종은 거의 없을 정도다.” 전 세계 고용인 열 명 중 한 명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2012년에 전 세계의 해외여행 횟수는 10억 회를 돌파했다. 모든 통계가 여행과 관광의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많은 나라의 정부가 이 실체 없는 거인의 힘을 깨”닫고 정책의 우선순위에 관광을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이제 여행과 관광은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서서 한 나라의 사회, 문화, 경제, 정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어 가고 있다.
여행은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베커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여행과 관광이 한 국가와 문화와 환경의 지형, 또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어디로 갈지, 그리고 일단 간 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관해서는 무수히 많은 책이” 있지만, “세계 최대의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관광 자체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는 책은 매우 드물다.” 여행과 관광이 “독특한 지역문화와 열악한 환경과 빈곤한 국가를 개선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망치는지 묻는” 책은 훨씬 더 적다. 베커는 그런 갈증에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5년 동안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수많은 인물을 인터뷰하면서 여행과 관광이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얼마나 많은 촉수를 뻗치고 있고,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저돌적이면서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여행과 관광은 어떤 의미인가라고 묻는 베커의 질문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여행과 여행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맞닿는다.
그녀는 소위 관광대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베네치아를 거쳐 문화관광의 중심지 중 하나인 캄보디아를 통해 관광이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이 나라들을 어떻게 잠식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소비관광의 최전선에 있는 유람선에 승선하고 두바이를 여행하면서 대규모로 상업화되어버린 관광 비즈니스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막강한 경제력과 인구를 앞세워 세계 관광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한 중국을 통해서는 정부가 장악한 관광 정책의 한계를 짚어보고, 9?11 이후 안보 본능과 관광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미국을 보면서 체계적인 관광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책의 필자는 여행과 관광의 힘을 믿는다. “관광은 부자 나라의 부를 가난한 나라로 옮겨 주는 자발적 방법”이자 “현대 세계의 가장 좋은 재분배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광이 지닌 이 긍정적인 속성은 어떤 나라에서는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관광업을 통해 흘러 들어온 돈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지배층을 배불리는 비리의 온상이 되거나, 개발을 이유로 지역민들의 터전과 사유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폭력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름답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베네치아를 부유한 호텔 체인과 상점들이 장악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그로 인해 지역민들이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현실, 역사를 관광에 팔아버리고, 과개발을 자행해 유적지와 문화재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상황은 여행과 관광이 가져오는 재앙의 극히 일부분이다. 관광객만을 위한 정책, 또는 관광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근시안적인 태도는 문화유산, 지역의 토착문화까지 상업화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적, 역사적 개연성과 개성을 지워내고 있다. 심지어는 관광이 가난을 풍요로 바꿔주지 않기에, 나라의 미래를 전적으로 관광에 의존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의 더 가난한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몸을 팔거나 동정심을 구걸하는 것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게 된다. 21세기 관광업에서 섹스관광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2011년 금융위기 때에도 홀로 성장을 거듭했다는 유람선관광은 어떨까? 정말, 합리적인 가격으로 관광객에게 온갖 즐거움을 선사하는 여행일까? 베커는 유람선은 목적지 없는 거대한 해상 쇼핑몰이라고 단정 짓는다. 여행이 주는 모험, 우연, 탐험이 유람선에는 없다. 단지 해상에 엄청난 오염을 가중시키면서 유람선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운행될 뿐이다. 법적인 제재를 피하기 좋게 구조화된(유람선사는 편의치적便宜置籍이라는 해양 관행에 기대서 선박을 자국이 아닌 제3국에 등록함으로써 자국의 많은 법적 체제를 빠져나간다) 유람선은 처리되지 않은 막대한 양의 오염물질을 바다에 마구 버리고, 엔진 공회전으로 엄청난 공해를 유발하면서 “최저임금, 근로기준, 법인세, 환경 규제 등으로부터 사실상 해방된다.” 방문한 지역의 경제에 공헌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도 엿볼 수 없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환경에 짐을 지우는 방식의 관광, 노동 착취에 가까운 임금 체계는 두바이를 위시한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자행된다.
그저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 나라였던 아랍에미리트를 관광의 허브로 변신시킨 원동력은 인권 유린에 가까운 노동 착취에 있다고 베커는 지적한다. 쇼핑의 천국, 세계 어디에도 없는, 모든 것이 세계 최초인 장소가 되고 싶은 “두바이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의 모든 토후국은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포함한 국제 노동 규약을 거부한다.” “800만 명이 넘게 사는 이 나라에서 노동인구 중 적어도 85퍼센트가 외국인”이고, 이들은 두바이를 굴러가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두바이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디자이너 호텔이 있고 대단한 음악 콘서트가 열리는, 한 현대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나라를” 보지만 “이 21세기적인 생활양식을 뒷받침하는 중세적 노동 현실에 관해선 알지 못한다.”
베커는 두바이의 현재를 지켜보면서 관광의 세계화가 취사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서 항공자유화 정책을 펴고”, “선택적 국경 개방으로 이주 노동자를 유인”했지만 “그러는 동안에 공정고용법이나 인권에 대한 존중과 같은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다른 약속은 거절”한 두바이의 현재가, 관광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정책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엘리자베스 베커는 관광이 지역의 진짜 모습, 획일화되지 않은 나라의 속살을 보여주고, 그것을 존중하고 유지하려는 관광 철학을 갖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미래지향적인 산업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관광은 폐기해야 하는 병폐일까? 물론 아니다. 베커는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인 관광의 가능성을 프랑스와 잠비아, 코스타리카에서 찾는다.
지속가능한 관광은 가능할까?
프랑스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다. 낭만적인 예술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국가적 이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