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사랑한 화가 박수근의 삶과 그림을 돌아보다 박수근이 사랑했던 아내 김복순이 들려주는 화가 박수근의 일생 포대기를 둘러 아기를 감싸 업은 한 여인이 가지만 앙상한 나무 옆을 서성대고 그 옆으로는 짐을 머리에 인 여인이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이 그림은 박수근 화가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으로,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표지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소설 “나목”의 실제 모델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 박수근이 서거한 지 올해로 50주년(2014년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박수근의 삶과 그림을 재조명하고자 아내 김복순의 회고록 “박수근 아내의 일기”를 펴낸다. 화가 박수근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수근의 삶과 박수근이라는 개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수근 아내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던 이 글은 박수근이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아내이자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박수근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김복순의 회고록으로서,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왔다. 1980년 선화랑에서 출간하는 잡지 “선미술”에 연재되었다가 선화랑에서 소책자로 제작하여 희귀본으로 떠돌던 이 글은, 그 뒤로 여러 책들에 발췌본이 실리기는 했지만 정식 단행본으로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수근 아내의 일기”에 담긴 박수근의 그림과 아내의 회고를 통해서 박수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들여다보고, 그의 삶을 통해 그의 그림을 읽어갈 수 있다. 또한 박수근의 인간적인 면모와 화가로서 박수근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과 미술평론가 유홍준의 해설을 덧붙였다. 한국근현대사의 질곡 속을 온몸으로 살아낸 위대한 화가의 삶을 따라가 보자. 박수근을 찾아 떠나는 길에 “박수근 아내의 일기”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아내가 기억하는 박수근 - 로맨티스트 남편, 휴머니스트 화가 이중섭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서양화가인 박수근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며 고생했지만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서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평생에 걸쳐 그림에 대한 열정과 평범한 이웃들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박수근의 그림을 볼 때 스쳐 지나가며 마주친 인간 박수근의 모습들,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 상상했던 박수근의 모습을 이 책에서는 아내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수근과 김복순의 결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였다. 둘은 서로 아랫집 윗집에 살았는데, 윗집 처녀와 결혼하라는 부모의 성화를 못 이긴 박수근이 김복순을 보고선 사랑에 빠져 연애편지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엄격한 김복순의 아버지는 박수근이 보낸 연애편지에 노발대발하여 김복순을 서둘러 춘천 의사 집에 약혼시키고, 그 소식을 들은 박수근은 그만 상사병으로 앓아눕게 된다. 식음을 전폐한 박수근을 보다 못해 박수근의 아버지가 나서서 김복순의 아버지와 담판을 지어 마침내 둘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결혼 전에 보낸 연애편지와 약혼한 뒤 박수근이 보낸 편지가 책에 실려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귀여운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습니다. (중략) 나는 나 혼자 당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나의 이 숨김없는 고백을 들으시고 당신도 당신의 심정을 솔직히 적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수근이 처음 보낸 연애편지 가운데 일부 결혼한 뒤에도 박수근은 아내와 가족을 유난히 아끼고 사랑했다. 신혼 초기 박수근의 직장 때문에 둘은 떨어져 살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주고받아 시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에게까지 지청구를 들었다. 박수근은 당시의 풍습이나 관습에 어긋나는 일들, 예를 들자면 아내를 위해 빨래며 부엌일 따위를 하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가난했지만, 얼마 되지 않은 차비라도 꼭 모아두었다가 아내의 생일이면 잊지 않고 고기와 과일을 사들고 간다든지, 소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위해서 양산을 훔치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지, 낭만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내의 일기 속의 박수근은 가족과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이면서도 인간의 선함을 믿는 휴머니스트였다. 그의 삶 곳곳에서 이런 성정이 묻어나오는데, 그림 값을 떼어 먹은 사람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오죽하면 그러하겠냐고 이해하고, 노점에서 과일을 사더라도 이웃한 행상들에서 몇 개씩 두루두루 사면서 “한 아주머니에게서만 사면 딴 아주머니들이 섭섭해 하지 않아”라고 하며, 큰 상점보다는 꼭 노상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샀다. 그의 그림에서 유독 거리 풍경과 행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까닭은 그의 삶과도 연관이 있다. 박수근의 대표작 67점 수록 이 책에는 <빨래터><나무와 두 여인><귀가><나무>를 비롯해 박수근의 대표작 67점이 담겨 있다. 박수근은 화강암을 연상케 하는 유화 기법과 길가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을 담은 그림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는데, 후기로 갈수록 대상을 간결하고 단순화해서 표현했다. 이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성을 그려야 한다는 박수근의 예술관이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된 결과다. 책 부록에 실려 있는 유홍준의 글에 인용된 박수근의 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유홍준 실제로 박수근의 그림은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의 대상에 대한 박수근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박수근은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출하기보다는 그 대상을 오랫동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재현한다. 아내 김복순이 들려주는 박수근의 삶을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보면서, 우리는 박수근이라는 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가 살았던 시대가 박수근의 그림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박수근은 그러한 영향을 어떤 식으로 그림에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같은 장면을 그린 그림 몇 개를 일부러 나란히 배치해두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박수근의 그림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가는지, 그러한 변화는 박수근의 삶과 또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에서만 엿볼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박수근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 박완서의 회상과 유홍준의 비평 독자들이 화가 박수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과 미술평론가 유홍준의 비평을 함께 실었다. 박완서와 박수근의 인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바, 미군부대 PX에서 박수근이 초상화를 그릴 때 박완서는 초상화 그릴 미군을 모아오고 그림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 인연은 소설 “나목”의 바탕이 되기도 했는데, 이 책에 실린 산문은 당시의 일에 대해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박수근의 아내가 관찰한 것과는 또 다른 박수근,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박수근이 아닌 자연인 박수근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간판쟁이라고 무시당하는 와중에도 군말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성정과 (박완서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을 둘러싼 불행감에 열중한 나머지 예의 없이 굴던 박완서의 행동도 말없이 감내하던 선량함을 가진 박수근의 모습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