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견디는 시,
그러나 미끄럼의 재미는 아는 시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문학동네시인선 148 김박은경 시인의 시집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2002년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한 이후 『온통 빨강이라니』와 『중독』, 이 두 권의 시집을 펴낸 바 있으니 시인의 세번째이면서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기도 하다. 와중에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 제목을 일단 열거부터 한 데는 그 명명에 시인의 기질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다분히 힌트가 되어줌을 앞서 읽어본 자로 또 살짝 알아버려서다. ‘빨강’과 ‘중독’ 앞에 쓸리는 살과 붉어진 마음과 그러니저러니 뭐니 해도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솔직함으로 적나라해질 수밖에 없는 시마다의 뜨거운 편린들. 고로 이번 시집의 제목을 이쯤에서 다시 한번 읽어보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못 속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숨길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못 가운데 못 하나를 골라 그 못 하나를 쥔다 했을 적에, 고르고 골라 손에 쥔 그 못 하나를 벽에 박는다 했을 적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몸 하나가 전부인 그 못 하나라 할 적에 그 못이거늘 무엇을 숨길 수 있고 무엇을 감출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 시집은 처음이자 끝의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이 시집은 처음이자 끝의 그런 ‘뜀’일 것이다. 어쩌면 이 시집은 처음이자 끝의 그런 ‘0’일 것이다. “다른 시를 쓰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속내를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미리 밝히었다. 고심과 포기와 체념이라는 우회 끝 더는 흔들리지 않고 앞만 본 채 타고난 제 몸이 선호하는 직진주로를 그 누구의 눈치봄도 없이 계속 타겠다 하는 어찌 보면 시인의 전언이자 선언. 총 3부로 나뉘어 담긴 시편들은 그래서인지 빠른 속도감으로 술술 읽히고 살살 읽혀버린다. 1부 제목처럼 “영원히 영원은 아니니까요” 한다. 아무렴. 2부 제목처럼 “언제까지나 왜요” 한다. 아무렴. 3부 제목처럼 “긍정은 찢어진 날개를 떨고 하고” 한다. 아무렴.
분명 김박은경 시인의 시를 읽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내가 노는 느낌, 그 전이가 빠르게 드는 이유는 어떠한 시에서도 시인이 쥐고 시인이 가지려 한 것이 전혀 없더라는 가뿐함의 가벼움이 빛나기도 해서였을 것이다. 시의 너른 마당에 분명 혼자 춤추는 시인이 있어 그거 쳐다보기 바빴는데 어느새 내가 춤을 추고 있더라는 공감 다음의 몰입. 그걸 즉시로 행하게 만드는 시인의 재주는 실로 자유를 아는 데서 비롯했을 것이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나’를 의심하고 ‘나’를 탐하고 ‘나’를 찌르고 ‘나’를 굴리는 일로부터 시를 가지고 ‘놀기’ 시작할 적에 사소함은 얼마나 커다래지고 분노는 얼마나 겸연쩍어지고 슬픔은 얼마나 부끄러워지고 복수는 얼마나 귀찮아지는가.
이를 알아버린 김박은경 시인은 시를 줍는 넝마주이로 분한다. 가끔 캘 때도 있으나 그는 기실 줍는 자다. 파내는 손보다는 관찰하는 눈이 기실 더 빛나는 자다. “팔뚝의 작고 사소하고 오래된 점까지 잘 보는 그런 점이 좋아 평생을 모르고 놓치는 점을 놓치지 않는 그런 점이 좋아”(「Keep calm and get tattoo」)라는 시의 구절만 보더라도 시인은 이번 시집 속 시 곳곳에 제가 고민하고 있는 시라는 것의 정의를 슬슬 흘려놓고 있다. 시라는 ‘말씀’에 알레르기가 있음을 “힘을 어떻게 빼더라 힘을 빼는 건 힘이 드는 일”(앞의 시)이라 휑하니 뒤를 돌아 혼자 읊조릴 줄 아는 시인. 그러다보니 자문이 빈번하여 우리에게 함께 생각해볼 여지를 자주 크게 벌려주는 시인. 그러나 자답은 ‘함께’가 아니라 ‘홀로’의 몫이라 숙제로 남겨주는 시인. ‘불면’과 ‘불멸’ 사이 “죽여버렸으면 죽어버렸으면 누가 누군가”(「다른 이야기」) 빈번한 말의 유희 가운데 일단은 재미 가운데 서늘한 섬뜩함을 웃으면서 안겨주는 시인. 멀리 가버렸나 안도하는 사이 “안녕, 나야” “안녕, 또 나야”(「안녕, 나야」) 등뒤에서 등을 치는 시인.
김박은경 시인의 이번 시집은 어찌 보면 시의 원형이 대체 무엇이기에…… 하는 자문자답의 과정이라 짧게 요약할 수도 있을 듯하다. 풀어 말한다면 ‘시론’이라는 시의 정신을 시에 미친 시인이 탐해가는 과정이라 친절히 설명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시 그 자체를 못에 박고 시 그 자체를 목적에 둔 결기는 순수와 순정을 기본기로 깔지 않으면 그 집요함의 끈끈함을 오랜 시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시인이 그걸 하고 있고 그걸 했다. “이제 우리 어디로 가나요, 물을 때 어디는 있고 우리는 없고”(「어디는 있고 우리는 없고」)를 알기까지 시인이 묵묵히 홀로 지탱해왔을 것이 짐작되는 기나긴 시와의 분투기. “되었지 되었고 더욱 될 거야”(「요철의 모월」)에서 토로한 시인의 고백은 그런데 왜 좀 귀여울까.
‘귀여움’이 이번 시집의 주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당당 목소리를 내는 데는 시인의 천진하고 난만함이 시 읽는 묘미를 한껏 부풀려주기도 해서다. “가장 사랑했던 이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니 얼마나 사랑했던 걸까, 나를”(「쓰다듬는다」 전문)만 봐도 이 시인, 절로 입가에 웃음을 번져나가게 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워가는 아이처럼 시 안에서 자주 넘어지는데 넘어져도 울지 않고 넘어졌다 일어남에 지치지도 않는다. ‘긍정’이 빚어낸 건강한 시상들. 특히나 김박은경 시인의 시 제목들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이렇게도 시가 되는구나, 그 신선함에 일단 호기심이 일게 되는데 그 맥락 가운데 다음 그다음의 시를 기대하고 기약하게 되는 건 이런 마무리의 결과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왜 시를 읽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시인의 이런 답 어떠시려나. 그러니까 “내일은 뭘 먹지”(「내일의 메뉴」)라는 구시렁구시렁 혼잣말. 김박은경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렇게 열리지 아니한가 싶다.
김박은경의 시집을 펼치는 일은 독자인 우리에겐 그간의 시야와 가청권의 범위를 넓히는 일, 달리 말해 눈 쌓인 풍경이 고요하다고, 평화롭다고 오해해왔던 시선을 무너뜨리고 거기로부터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감지하는 일에 가깝다. 이는 깨끗하게 미화된 삶의 이면에 감추어진 시련을 삶의 구성 요소로 품고 갈 줄 아는 이의 목소리이다.
-양경언 해설, 「견디는 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