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알고 나면 180도 달라 보이는 명화 속 서늘한 이야기들
청초한 발레리나도, 사랑스러운 가족 초상화도 보면 볼수록 무서워진다.
드가의 그림 속 조명을 받으며 한껏 자태를 뽐내는 발레리나 뒤에 검은 그림자는 누구일까?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을 주문한 토스카나 대공 부부가 완성된 그림을 치워버린 사연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 천진난만한 네 아이의 초상화가 완성된 직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처참한 살육의 장면을 담은 보티첼리의 결혼 선물용 그림, 사형장에서 잘린 머리를 주어다가 연습한 제리코의 평생의 대작, 여동생을 사랑해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도시에 집착한 크노프의 그림 등, 무심히 보아 왔던 명화의 충격적인 진실과 만난다.
이 책은 명화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 화가의 개인사, 그림 속 인물과 얽힌 얘기들을 통해 그 뒤에 숨겨진 무서움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림에 접근한 저자의 경쾌하고 기발한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죽음과 광기, 기만과 집착, 늙음과 질병, 그리고 어긋난 사랑의 파국까지, 명화에 담긴 섬뜩하지만 매혹적인 갖가지 공포들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보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는 그림부터 겉보기는 평온해 보이지만 실은 생각지도 못했던 무서움을 숨기고 있는 그림까지 보면 볼수록 무서운 그림 20점의 이야기.
1 그림 느끼기
“어떤 종류의 ‘악’이 휘황한 매력을 발산하듯 공포라는 것에도 저항하기 어려운 흠인력이 있어서 인간은 안전한 장소에서 공포를 엿보고 즐기고 싶다는 어쩔 수 없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서문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그림을 읽는다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양식적 특성은 어떤지, 그림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인물의 포즈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등을 읽고 ‘아 그렇구나’라고 그림에 대한 지식을 쌓고 그 그림에 대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을 보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림 읽기에 그치지 않고 그림에 얽힌 드라마틱한 역사적 문화적 사실, 또는 화가의 개인사를 끌어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이 나왔다. 나카노 교코의 『무서움 그림-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명화 20점을 골라 그림 뒤에 숨겨진 무서움의 실체를 맛깔나게 풀어내며 ‘그림 읽기’가 아닌 ‘그림 느끼기’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이 책은 ‘호러’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에서는 미술서로서는 드물게 출간 1년 만에 8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 서늘한 명화의 매혹
“무엇보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건 ‘죽음’이다. 육체의 죽음 뿐 아니라 정신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도 그런 공포의 대상이다. 직접적인 공포는 거의 전부가 이 두 가지의 죽음으로 수렴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서문 중에서
매년 여름철마다 나오는 공포영화며 또 최근의 TV극 ‘전설의 고향’이 인기를 얻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공포와 무서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주제이다. 이 책은 죽음과 질병, 노화 같은 육체의 붕괴부터, 광기와 질투, 상실감, 고독, 집착, 불안 등의 개인의 존재를 흔드는 정신적 죽음, 또 기만과 어리석음, 편견, 차별같이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파국으로 끌어들이는 갖가지 무서움과 공포의 원인들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고야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나 베이컨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처럼 피와 살이 튀고 보는 순간 공포가 느껴지는 정말 무서운 그림들도 다루고 있지만,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고 아름답기만 한 그림에 숨겨진 의외의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에 숨겨진 진실들은 더 충격적이고 더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예를 들어 조명을 받으며 한껏 자태를 뽐내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담긴 드가의 「에투알」에서 공포나 두려움을 엿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실상은 당시의 발레리나는 창녀나 다름없었다는 것, 발레가 공연되는 오페라극장은 상류층 남성들이 여자를 고르는 창관(娼館)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이다. 또 자크 루이 다비드가 사형장에 끌려가는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순간을 현장에서 스케치한 「마리 앙투아네트 최후의 초상」은 사진이 없던 시대에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일종의 보도 사진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바꾸며 배신을 일삼던 다비드의 추악한 악의가 담겨 있다.
저자는 그림 안팎의 ‘무서움’,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그림 속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해당 작품을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때로는 그림과 관련된 화가의 모델의 개인사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들여다본다. 일랴 레핀의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에서는 그림의 주인공인 황제가 제 성마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실수로 아들을 죽인 처절한 비극을 다루고, 크노프의 「버려진 거리」에서는 여동생을 사랑한 화가가 그 금지된 사랑의 추억에 붙들려 스스로 파멸로 몰아간 개인사를 이야기한다. 교수대 옆에서 흥겨운 듯 춤을 추는 기이한 광경의 브뢰겔의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는 마녀재판과 밀고가 횡행하던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한다.
3 전율하게 하는 그림들
“보통의 사람이 그림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시대에 뛰어난 작품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을지 시각적인 자극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본문 중에서(168쪽)
미술사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인인 저자가 어깨에 힘을 빼고 다채로운 각도로 풀어가는 그림 이야기는 소위 ‘그림 읽기’에만 집착하지 않기에 더 신선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틴토레토의 「수태고지」에서는 종교적 도상에 대한 설명보다는 ‘마리아’라는 한 여성이 인간적으로 느꼈을 법한 감정에 대해 주목한다. 또 라 투르의 「사기꾼」에서는 저자가 오늘을 사는 누구라도 겪을 법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을 실감나게 풀어가지 않았다면 젊은 여인의 사악한 눈빛과 하녀의 의뭉스러운 표정이 그처럼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무서움’이라는 주제에 담아 낸 것은 실은 미술 작품에 오랫동안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눈이 무뎌져서 느끼지 못하는, 보는 이의 전율하게 하는 감정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절실하게 우리의 감정을 뒤흔드는 힘이 명화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무척이나 매혹적인 “그림에 담긴 무서운 이야기들은, 한껏 즐겨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