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신나는 일이잖아!
그 생각 하나로, 우리의 십대는 빛나기 시작했다
도쿄 외곽 변두리 마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고생 와라. 이혼한 부모님과 철없는 남동생, 진학 문제로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 사이에서 심란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어린 시절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병원 옥상에 올라갔다가 환자복 차림에 괴상한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소년 디노를 만난다.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와 함께 그가 남기고 간 것은, 옥상 난간에 리본 모양으로 묶여 바람에 휘날리는 새하얀 붕대. 며칠 후 단짝친구 시오가 남자친구에게서 실연당했단 이야기를 들은 와라는 디노의 행동을 떠올리며 둘이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공원의 그네에 붕대를 묶어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붕대 클럽’을 결성한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 마음의 상처가 남은 장소에 붕대를 감아주고 그 장면을 디카로 찍어 당사자에게 보내주는 작업을 시작한다.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모두 제각각이야. 그 상처를 받은 장소에 붕대를 감아주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형태로 소중한 것을 지키기로 한 결심과 작은 실천은 각박한 일상 속에서 상실감과 우울함에 시달리던 이들을 조금씩 변화시키지만, 이들의 행동이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항의가 날아들면서 ‘붕대 클럽’은 해체의 위기를 맞는데……
상처받은 네 마음, 우리가 치료해줄게!
도시 한복판의 청춘 치유 프로젝트 ‘붕대 클럽’
사랑에 상처받은 온 세상의 미녀들이 있는 곳으로, 진심 어린 흰색 붕대를 갖고 달려가는 거야! _세계평화를 꿈꾸는 열혈소년 ‘디노’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 거야. ‘상처’라고 말이야.
_외강내유 여고생 ‘와라’
자기한테 실망하면서도 살아간다는 건 수치를 모르는 거 같잖아. _발랄한 로맨티스트 ‘시오’
우린 이제 어린애가 아니잖아. 붕대가 다 뭐니? _시니컬한 모범생 ‘템포’
넌 이게 다 네가 노력한 결과인 줄 알고 살지? 예쁜 원피스를 자랑하던 중학교 때부터 그랬어. _다혈질 펑크 소녀 ‘리스키’
사실 남자를 좋아하긴 하지만, 진짜 호모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_소심한 순수소년 ‘기모’
‘붕대 클럽’의 멤버들은 ‘질풍노도의 시기’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들. 명문고에 진학해 대학 입시 준비에 전념하거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거나, 혹은 등교거부를 밥 먹듯이 하며 기묘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가지각색의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애매한 입장,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서 오는 소외감과 고민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지 몰라도 자신에겐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착과 그로 인한 상처가 늘 존재한다. 둔한 운동신경 때문에 체육시간에 놀림을 받은 철봉 앞, 남자선생님에게 성희롱을 당한 과학실, 자살골을 넣는 바람에 중요한 경기에서 져버린 쓰라린 기억을 안겨준 축구 골대. ‘상처받은 장소에 붕대를 감자’라는 조금 엉뚱하고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발상은 그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일어서려는 노력이며, 신뢰할 수 있는 ‘동료’인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은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절실함과 단순함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더없이 경쾌하게 보여준다. 좁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오해와 불신, 상대적 박탈감, 이유 없는 자괴감 등 마음속 한구석에 구겨진 채 방치되던 자질구레한 감정이 부드럽고 새하얀 붕대에 감겨지며 처음으로 ‘상처’라고 인정받는 순간, 아이들의 예민한 심장은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자정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생긴 거야, 시오. 우울했던 일, 납득이 안 갔던 일, 못 참을 일이라며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 그 감정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 거야. ‘상처’라고 말이야. 상처받으면 아프고 누구나 침울해지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봤자 상처일 뿐이니까, 치료하면 언젠간 분명히 낫는 거잖아.
_본문 중에서
『붕대 클럽』은 여러 번의 가필을 거쳐 수정된 작품인데, 그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 십 년여의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다. ‘붕대 클럽’으로 보내는 보고서 형식으로 구성된 이 부분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성공의 기준을 벗어나 확실히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한 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첫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던 와라와 디노의 러브라인 전개는 영화의 엔딩크레딧 보너스 영상처럼 쏠쏠한 재미를 던져준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생긴 상처를 모르는 척하지 않는 것
히어로가 등장해 악인을 무찔러 평화와 행복을 되찾는 스토리. 혹은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는 스토리. 작은 이야기 안에서도 그런 것들이 마치 인생의 승리인 양 그려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실은 동시에 또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히어로와 히로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 ‘싸우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_텐도 아라타 인터뷰 중에서
전작들에서 아동학대와 가정 폭력 등의 소재를 통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겪는 상처와 고독을 꾸준히 작품의 테마로 삼아왔던 텐도 아라타는, 언론을 통해 최근 사회의 움직임과 젊은이들의 심리상태를 접하고 ‘지금은 이 작품을 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의 상처에 무관심하고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풍조, 나아가 자신의 상처마저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상처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즉 『붕대 클럽』은 10대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거쳐온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보편적인 치유의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