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의 어려움 속에서도 세상을 바꾸고자 애쓰는 숨을 일꾼들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는 NGO 활동가들의 삶과 마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소외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NGO 활동가들이 있다. 짐작하다시피 이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퇴근시간이나 주말도 없을 정도로 일이 많고 바쁘다 보니 개인 시간이 없고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활동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저자 문세경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 18명을 만나 그들의 진심을 들어보았다. 많이 알려진 사람은 피하고 작은 단체에서 일하는 숨은 일꾼들을 만났다.
“나는 장애인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일을 하면서 지쳐갔다. 사회는 금세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활동가들의 뼈와 살을 갉아 먹고서야 조금씩 변했다.”
저자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충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활동가들은 편하게 속사정을 내보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해온 활동가들의 삶과 마음이 처음으로 오롯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굳이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이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은 인생은 이들에게 진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약속한다. 그 빚을 갚는 일에 많은 이들이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30년간 장애인운동을 해온 사람이 말하는 희망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박옥순은 30여 년 전 장애인단체 취재를 하러 갔다가 장애인운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해야만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활동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특수교육진흥법을 만들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을 했으며, 장애인별금지법을 만드는 일을 했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면서 오랜 시간 꾸준히 장애인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을까? 이에 대해 박옥순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묵직하게 들린다.
“좋아서 하는 일일 뿐, 저를 너무 미화하지 마세요”
박승민은 서울역 근처 쪽방촌 밀집지역에 있는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삶은’ 뉴스에서 본 게 다였다. 처음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단체의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반상근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점심시간도, 퇴근시간도 없다. 주민들이 찾아오면 상담도 하고, 몸이 아픈 주민과 병원에도 같이 가고, 도시락 80개를 만들어 배달도 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활동가는 박승민 한 사람뿐이다. 혼자라 외롭냐고? 외로울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단다.
게다가 주민들은 스트레스가 많은 탓인지 이유도 없이 폭언을 할 때가 있다. 주민들에게 사랑방과 박승민은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 이처럼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박승민은 배우는 게 많고 보람도 크다고 말한다.
“여기서 일한 지 만 4년 됐어요.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지나갔어요. 이 일이 저하고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배우는 게 많으니까 고맙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주민들은 작은 일 하나만 도와드려도 고마워하세요. 별것도 아닌 사소한 거라도 도와달라고 말할 곳이 없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너무 짠해요. 이 일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누군가 저를 치켜세우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저를 너무 미화하지 마세요(웃음).”
활동가로 사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이란주는 25년 동안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면서 이주민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산재를 당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일하다가 다쳐서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을 돕고자 동분서주하는 이란주의 가슴은 “타들어 가는 것을 넘어 숯덩이가 된 지 오래다.”
이원영은 대학을 졸업하고 오십 줄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급기야 얼마 전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늘 시간에 쫓기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다 보니 이제 좀 쉬고 싶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김민석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라도 존엄한 마무리를 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서 홀로 이승을 떠나는 이의 마지막을 기꺼이 지킨다.
저자는 18명 활동가의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마치 활동가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들이 여러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새로 생긴 스트레스가 그전 스트레스를 밀어내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단한 상황에서도 활동가의 삶을 지속하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 활동가들이 들려주는 열여덟 편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