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지라도 우리 곁을 맴돌 궁극적 질문”
어두워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삶에 대한 통찰 10
“답이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
위대한 사상가 10인이 펼쳐낸 삶과 죽음의 의미
전 세계가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철저한 ‘고독’과 ‘격리’를 겪고 있는 요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눈앞에 닥친 삶과 죽음의 문제는 수학 공식처럼 하나의 정답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을 끌고 들어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혼자 머리를 감싸 쥘 필요는 없다. 이미 세계의 절망과 고통을 숙고해온 위대한 철학자와 문학가들이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는 이 같이 궁극적 질문을 품어온 사상가 10인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읽어나가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가장 적절한 ‘표현’을 제시한다.
“우리가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라”
쇼펜하우어부터 톨스토이까지
참혹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사상가들
지금도 삶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어찌됐든 이 세계는 자기 이익만 좇는다면 살아가기에 편리한 곳이고,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고 있으며, 효율과 합리를 따른다면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과학과 의학의 힘으로 곧 죽음까지 정복할 날을 앞두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보인다.
《왜 살아야 하는가》는 이 같은 이익주의나 합리주의 등의 세계관을 반성하며 삶의 의미를 모색한 사상가들의 깊은 사유를 소개한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라는 찰나의 만족보다 욕구와 충동 가운데서 허우적대며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생의지’를 중요시했다. 키르케고르는 우리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고 심미적인 즐거움을 좇기보다는 삶의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멜빌은 《모비딕》에서 흰 고래를 잡는 치열한 사투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워 보이는 자연과 세계 속에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 보이고 거기에 대응하는 개인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줬다.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것이 허용된’ 자유로운 세계가 자살과 살인 등 비참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순수하리만치 바보스런 성자를 통한 사랑과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톨스토이는 쾌락과 방종에서 윤리적 개혁가에 이르기까지 삶의 각종 측면을 경험했으면서도 ‘죽음’이라는 궁극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며 평범하고 단순한 삶에서 다시금 의미를 찾기를 갈구했다.
“그럼에도 삶이란 살아갈 만한 것이다”
니체부터 카뮈까지
모험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상가들
반대로 삶에 어떤 의미나 동력도 부여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존재한다. 더 이상 거대한 원리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무슨 삶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각기 다른 방식대로 태어나 살아간다. 철저하리만치 무심하고 또 서로에 대해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는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과제 또는 삶을 끊을 수 있다는 선택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는 이 같은 허무주의나 냉소주의 등의 태도와 마주하며 ‘그럼에도 삶을 살아갈 것’을 주창한 사상가들의 견해를 제시한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기독교적 ‘연민의 도덕’을 버리고 소멸과 생성의 순환 가운데 놓인 인간의 삶을 긍정하라는 급진적인 메시지에 가닿는다. 실용주의 철학자 제임스는 사유가 지니는 그 자체의 심각성보다 그것이 어떻게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주목하며 ‘의미 있는 삶’이란 결국 ‘삶이 제공하는 기쁨에 내어 맡기고 느끼는 것’이라 말한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장편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사랑이라는 속임수와 불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예술 창작에 몰두할 것을 제안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는 우리의 삶은 스스로 변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카뮈는 어떤 것에도 무심한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난을 줄이고 정의를 받드는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삶의 가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인생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철학자의 우아한 답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은 전쟁과 기아, 죽음이 일어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이에 대해 단순히 도덕적으로 재단하거나 멀리서 관망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들은 무미건조한 시대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며 직접 삶으로, 작품으로 분투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사상에 깊은 감화를 받은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한 이야기, 카뮈가 독일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방인》의 무심한 관찰자적 입장을 넘어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페스트》 안에 녹여낸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삶의 희극적 또는 비극적 차원을 논했던 사상가들의 생각이 때로는 교차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각각의 사상가들이 주목한 삶의 측면은 매우 다르지만 저자 미하엘 하우스켈러는 어떤 하나의 사상가를 치켜세우지도 매도하지도 않는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의미를 얻을 수 없고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맺음말을 넌지시 남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