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생명체도 절대적 현실에 갇힌 채로 살아간다면
광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공포의 저택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광기가 낳는 충격적 결말.
어머니의 죽음 후 난생처음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힐 하우스로 온 엘리너. 그녀는 이곳이 자신의 지긋지긋한 삶을 바꿔 줄 환상적인 장소라고 믿는다. 하지만 힐 하우스에서의 생활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점점 달라지고, 힐 하우스의 광기는 엘리너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고딕 미스터리의 대가 셜리 잭슨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고딕 호러 소설이다. 앞서 출간된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에 이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의 열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자의식 과잉과 습관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자아가 힐 하우스의 초자연 현상 속에서 끝내 파괴되는 과정을 그려 냈으며,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집’에 대한 관념을 배반하는 수작이다.
스티븐 킹은 『힐 하우스의 유령』을 지난 백 년간 등장한 초자연적 소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았으며,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샤이닝』이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악의를 가진 집
『힐 하우스의 유령』은 기괴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하는 고딕 호러 소설이다. 배경으로 쓰인 폐쇄적인 공간이 ‘살아 있다’는 점 때문에 평범한 공포 소설과 다른 인상을 심어 준다. 지어질 때부터 집 스스로 어둠과 음울함을 추구했을 것이라는 서술을 비롯하여, 힐 하우스는 처음부터 ‘악한 의지를 고집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밝은 햇살이나 상쾌한 바람은 물론이고 집을 밝게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집 스스로 거부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사람들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힐 하우스의 정면은 마치 악마가 웃고 있는 얼굴처럼 보인다.
힐 하우스의 악한 의지는 거주자들도 피해 갈 수 없다. 이 오래된 저택은 일단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고 냉기를 흘려 보내고 방 전체를 뒤흔들면서 거주자들을 괴롭힌다. 힐 하우스가 일으키는 초자연 현상은 주인공이 어릴 적에 겪었던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힐 하우스의 악의가 이런 현상을 자아내는 것인지 자신의 불안감이 이런 현상을 자아내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힐 하우스의 공포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공포는 다른 공포 소설처럼 생명에 대한 위협 때문이 아니다. 신체가 훼손되는 것은 가장 노골적인 수준의 공포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제공하는 공포는 보다 심층적이다. 강력한 악의를 가진 힐 하우스는 인간의 불안을 자극하여 무너지게 만든다. 집이 흔들리는 현상을 자꾸 겪고, 벽에 피로 씐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 결국 주인공은 힐 하우스에 굴복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의 정신과 외부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일인칭과 삼인칭을 오가는 서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읽는 독자는 실제로 힐 하우스가 주인공을 습격한 것인지 힐 하우스의 습격을 주인공이 상상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점점 광기로 치닫는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자신의 불안마저 자극받는다. 힐 하우스에서 파멸을 맞은 주인공처럼,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아무도 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선사하는 궁극적인 공포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와 『힐 하우스의 유령』
『힐 하우스의 유령』은 셜리 잭슨의 다른 작품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성문영 옮김, 엘릭시르, 2014)와 비슷한 주인공을 가지고 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엘리너와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메리캣은 둘 다 여성이고, 자신만 사용하는 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병적으로 아끼는 등 섬세하면서도 비틀린 성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고풍스러운 저택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탈출을 거부하며, 자신의 상상 속 마법적인 장치들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굳게 지킨다. 무엇보다 두 작품의 배경은 셜리 잭슨이 평생 감내해야 했던 억압을 반영하고 있다. 잭슨은 엄격한 어머니의 그림자를 떨쳐내려 안간힘을 썼고, 남편의 대학 사회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배타적인 이웃과의 화해도 거절하며 평생 고독하게 분투했던 것이다.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하는 두 작품이지만 그 끝은 사뭇 다르다. 셜리 잭슨의 마지막 작품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결말에서 주인공 자매가 서로를 끌어안고 ‘우리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작가가 평생의 고립과 억압에 대처하는 방향을 마침내 찾아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그보다 육 년 전에 집필된 작품이다. 이 시기의 셜리 잭슨은 강압적인 어머니와 사회의 배척에 대처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녀가 통감했던 절망과 공포는 『힐 하우스의 유령』의 결말에 그대로 녹아들어 비극적인 끝을 보여 준다.
●셰익스피어와 셜리 잭슨
셜리 잭슨은 영문학의 아버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힐 하우스의 유령』에 삽입하여 훌륭한 메타포로 활용했다. 몬터규 박사는 아내의 부정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여름밤의 꿈〉에 빗대어 비난하고, 비극의 주인공 엘리너는 아름다운 사랑의 성취를 노래하는 ‘사랑하는 이여’(희곡〈십이야〉삽입곡)라는 곡을 내내 흥얼거린다. 특히 이 아이러니한 연출은 작품의 비극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의 가진 운명의 처절함을 극대화시킨다.
기존 작품의 컨텍스트적 활용은 작품에 깊이를 더할뿐더러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배로 선사한다. 특히 영문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진 시적 아름다움에 압도당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의 비극과 기괴함을 극대화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대범한 연출은 셜리 잭슨의 독특한 작풍에 힘을 실어 그녀를 20세기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