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신문≫, ‘지난 천 년간의 일본 문학자’ 투표 1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강상중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현암사에서는 국내 최초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펴내고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3차분은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 ‘후기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춘분 지나고까지>와 두 번째 작품인 이다. 소세키가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했던 시기의 작품들, 소세키 문학의 깊이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3차분의 각 권 말미에는 국내 저자들의 ‘소세키 독후감’을 수록했다. 로쟈 이현우, 정혜윤 PD, 소설가 조경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 저자들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을 재해석했다.
소세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천 엔짜리 일본 지폐에 가장 오랫동안 초상이 실려 있었고, <마음>의 판매 부수가 1천7백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작가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2016년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아사히 신문≫에서는 그의 생존 당시 연재되었던 소설들을 당시 그대로의 지면으로 연재하고 있다. 21세기 이후로는 영어권의 주요 출판사에서 그의 작품들을 페이퍼백으로 펴내고, 60여 작품들이 아랍어, 슬로베니아어, 네덜란드어 등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불안하고 나약한 자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끈질긴 희망
메이지 유신 1년 전인 1867년에 태어난 작가의 소설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서 읽히는 이유는 뭘까. 그의 소설은 백 년 전의 소설인데도 촌스럽지 않다. 세상은 변하고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고, 인간 마음속 심연의 깊숙한 곳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고독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탐구로 생생한 보편성을 확보했다.
소세키가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썼고, 그의 생애가 작품처럼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었다는 사실도 세간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세키는 메이지 유신 1년 전인 1867년에 후처의 아들로 태어났다. 두 번이나 양자로 보내졌고, 양아버지의 바람으로 양부모가 이혼하자 다시 친가로 돌아왔다. 중학생 때는 어머니를 잃고, 큰형과 둘째형을 폐결핵으로 잃었다. 그가 사모했던 셋째 형의 아내가 입덧으로 요절한 것에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직장을 얻고 결혼을 했으나 아내는 유산의 충격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가 구출된다. 서른셋에는 문부성의 명으로 떠난 2년간의 런던 유학 생활 중에는 유학비 부족과 외로움으로 신경쇠약과 위궤양에 시달렸고, 자신에게 하이쿠를 가르쳐준 절친 마사오카 시키가 결핵으로 요절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그가 아끼던 제자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에 죽기로 했다며 “커다란 비관과 커다란 낙관은 서로 같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폭포에서 투신자살한다. 소세키는 신경쇠약이 악화되어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지경에 이르렀고, 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쓰게 된다. 동경제대 교수를 그만두고 신문사 전속 작가가 되었으나, 다량의 피를 토하며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고, 다음해에 어린 딸을 갑자기 잃었다. 그는 결국 위궤양으로 인한 내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그는 이러한 무수한 상실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작품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불행, 궁핍의 연속이고 반복임을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믿을 수 있기를, 불안하지 않기를 갈구했다. 성장 제일주의 사회, 군국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를 꿰뚫어보고 타인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자유롭고도 윤리적인 ‘개인’이 되고자 나쓰메 소세키. 그는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강상중) 길을 모색했고, 불안하고 나약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끈질긴 희망을 놓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인간을 연구했다.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최종 후보’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그동안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대표작에 치우쳐 중복 출간되어왔다. 이번에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은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집이다.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작품뿐 아니라 소세키의 연보에서도 가끔 빠져 있는 숨어 있던 소설까지 온전히 담았다.
“필요 없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며 소세키의 문체를 생생하게 우리말로 옮긴 송태욱의 꼼꼼한 번역에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완역한 노재명의 깊은 이해가 더해져, ‘우리 시대 소세키 번역’으로 거듭났다. 나쓰메 소세키의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부터 위궤양과 신경쇠약으로 고통받으며 마지막까지 써내려간 <명암>까지, 총 14권의 장편소설을 2016년까지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스스로가 만든 과거라는 어둡고 커다란 구렁텅이
<산시로>, <그 후>를 잇는,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전기 3부작과 후기 3부작을 잇는 중요한 고리와도 같은 작품. <산시로>가 평범한 대학생 ‘산시로’가 주인공인 청춘 방황 소설이었고 <그 후>가 그 이후에 대해 쓴 소설이라면 <문>(1911)은 친구를 배반한 후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자의 어두운 내면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소스케는 관청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며 아내 오요네와 조용하게 살아간다. 절벽 아래의 햇빛이 들지 않는 셋집에서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서로 껴안아 몸을 녹이는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을 가로챈 친척에게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삶을 살아가는 부부는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친척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들이었다. 소스케는 ‘그 일’ 때문에 완전히 변한, 활기가 없어진, ‘청죽을 불에 쬐어 기름을 짜낼 정도의 고통’받았던 사람이었다. 사랑을 택할 것인가, 도덕을 따를 것인가 번민에 번민을 거듭한 끝에 사랑을 택한 부부는 “스스로가 만든 과거라는 어둡고 커다란 구렁텅이 속에 빠져” 죄책감을 안고 고독을 나누며 살고 있다. 그들이 처음 만나 나눴던 대화가 인생을 얼마나 뒤바꿔놓았는지 알기에 평범한 사건을 중대하게 변화시키는 운명의 힘을 두려워했다.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라!
세월이라는 완화제의 힘으로 간신히 안정을 찾아갈 무렵, 조금씩 우연이라는 잔물결이 일기 시작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소스케는 ‘과거의 통한’을 다시 새롭게 느끼게 되고 운명이라는 것에 절망하게 된다. 지금의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소스케는 산문(山門)으로 향한다. “이 모험에 성공하면 불안하고 불안정한 지금의 나약한 자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희망”을 가지고. 소스케가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공안은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자기 모습이라면, 우연적인 자기가 아니라 절대적인 자기일 것이다. 그런 자기라면 인연의 사슬로 엮인 인간관계를 초과할 수 있을 테지만, 소스케에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구원’은 이후 소세키의 주요한 화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