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2014년 전 세계를 뒤흔든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의 멘토, 앤서니 앳킨슨의 불평등 연구 총결산
50년간 부의 분배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대학자의 정책·행동 제안
회의와 절망은 이미 넘친다.
이제 ‘덜 불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선택하고, 실행할 때!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다시 심화되기 시작한 부와 자본의 불평등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입증함으로써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그는 이 불평등 추세가 점차 심해지고 있으며, 이대로 놔두면 우리 사회가 19세기 귀족세습사회와 같은 수준의 불평등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앳킨슨은 부의 불평등의 영향, 변화 추이, 심각성에 대해 누구보다 오래, 깊이 연구해온 학자다. 그의 이야기는 피케티에 비하면 상당히 희망적으로 들린다. 경제성장의 압박과 세계화 속 경쟁 구도가 기승을 부리는 현 체제 속에서도, 불평등은 줄어들 수 있다. 앳킨슨은 이 책에서 평등이라는 이상이나 선험적 해법을 논하는 대신 역사적 자료와 경제모형 실험을 통해 가능한 변화들을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정책을 제안한다.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이 정책들은 상호보완적인 동시에 각 사회에 맞게 선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그저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으로 나아가려면 정치적 결단과 실천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하는 이 학자는, 사실 누구보다 준엄하게 ‘행동’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앤서니 앳킨슨은 현대의 소득과 부의 분배 관련 조사의 대부다. 사이먼 쿠즈네츠의 통계적 엄격함과 윌리엄 베버리지의 급진적 개혁주의를 결합한 그는 동시대 모든 학자의 롤모델이다.
-토마 피케티(파리 경제대학)
앳킨슨은 왜 불평등이 중요하며, 어떤 식으로 변해왔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공헌을 한 학자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라 할 만하다.
-니컬러스 스턴(런던정경대학)
불평등으로의 회귀
사회적으로 극심한 양극화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꼭 경제학자들이 국민소득에서 상위 1% 혹은 10%가 차지하는 몫을 들이대지 않아도, 담뱃값 2천 원 인상에 울고 연말정산 세금 공제를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들은 같은 사회 다른 편에서는 상상도 못 할 거금을 움직이면서 그의 월급 정도쯤은 하루 만에 펑펑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막대한 부는 그 자체로 ‘힘’을 만들어내고 행사하는 까닭에, 우리는 불평등이 증대된 까닭을 결국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힘의 균형이 바뀐 데서 찾을 수 있다.
저자 앳킨슨이 이 책 초반부에서 강조하듯 불평등과 가난은 개인의 삶에 긴밀하게 작용하는 권력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무력감과 절망의 문제다. 사람들은 불평등한 정치적 힘을 갖고, 법 앞에서 불평등하며, 불평등하게 먹고 자고 생활한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 가장 적나라했던 것 중 하나는 거대자본은 그것을 투기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지만, 소액 저축자들은 어떤 이자수익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분석이었다. 1980년대 이후 크게 떨어진 실질금리는 현재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막대한 수익률로 해마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몸집을 키우는 진짜 거대자본은 제쳐두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부의 메커니즘에 비슷한 구도가 성립하기는 마찬가지다. 집을 두 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한 채를 임대한다. 집을 살 자본을 갖지 못한 이는 노동소득의 상당 부분을 임대료로 지불한다. 반면 처음부터 집이 두 채였던 사람은 집이 없었다면 발생했을 임대료를 절약하면서 오히려 다른 이에게 추가로 임대료를 받는다. 시간이 지났을 때 이들의 자산 격차는 틀림없이 훨씬 큰 폭으로 벌어져 있을 것이다. 이상의 모든 상황은 분명 우리를 좌절시킨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좌절을 위로의 말로 어루만지는 대신 이 절망적 현실을 제대로 알 것, 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논의들을 걸러내고 사안을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공정한 경쟁과 성과라는 허구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많은 부는 훨씬 더 많은 부로, 상대적 가난은 더 극심한 가난으로 변한다. 가만히 놔두면 불평등은 심화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 개념으로 재분배의 근본적 필요성을 설명한다. 처음에 평평한 경기장(기회의 평등)에서 경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그 능력에 따라 이기고 지며, 시장경제의 규칙에 따라 서로 다른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보상 차이가 크고, 더 커지다가 고착화된다면 그다음 경기 때 경기장은 이미 평평하다고 할 수 없다. 결과의 불평등은 성과와 능력에 따른 것이며 이는 이긴 자가 정당하게 ‘얻어낸’ 것으로서 보장받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일정 수준의 기회 평등을 지속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이를 그대로 둔다면 불평등은 계속 커질 뿐이기 때문이다.
정당해 보이는 이윤 창출에도 제도가 개입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정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이전 경쟁의 성과 일부를 지속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 필수다. 평평한 경기장을 위해 주거와 식생활, 기초교육과 의료 등에서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갖춰야 한다면, 이 비용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들의 세금으로 보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 측면에서 수백 년간 규범적으로 인정되었던 바다. 하지만 이런 제안과 지금 우리 사회의 통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부유세를 더 물려 양극화를 줄이자고 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탈세한 초부유층에 대해 ‘저렇게 돈이 많으면 당연히 세금이 많을 테니 내기 싫겠지’ 하고 동조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부유한 자들의 공공연하게 권력을 행사하다보니 이들에게 불리한 제도는 실현 불가능하리라는 회의감도 깊이 배어 있다. 극심한 결과의 불평등보다는 능력주의와 성공신화를 부추기고, 부의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해 기회의 평등이나 재분배는 소홀히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 정도가 낮을 때 사회의 총효용과 사회 통합의 정도 및 거시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등의 연구 결과는 현재 극심하게 기울어진 경기장 위에서 거의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는 저자는 수십 년간 분배 문제를 등한시해온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는 여전히 이런저런 거시경제 이론 모델을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 시장의 특성을 설명하며 ‘분배’나 ‘불평등’은 거의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루커스와 같은 이는 불평등이 전문 경제학자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믿는데, 그 주된 근거는 분배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삶을 향상시킬 가능성은 경제성장을 통해 모두가 더 잘살게 될 무한한 가능성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20세기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양극화와 각종 불평등지수가 1980년대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관점이 아직도 지배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폭넓게 공유된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과 사회 정의, 경제학적 당위, 현실 정책 등을 엮어 학문적 논리, 역사적 근거, 동시대적 상식 모두에 부합하는 균형과 내공을 갖춘 주장을 펼친다.
새로운 분석 지점들
저자 앳킨슨은 이 책 전반부를 통해 우선 우리 사회가 최근 몇십 년간 정확히 얼마나 불평등해졌는지를 알기 쉽게 보여주며, 어떤 이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불평등이 어느 분야에서 존재해왔는지를 구분하여 고찰함으로써 복합적인 불평등에 관해 좀더 명료한 이해를 돕는다. 이어 저자는 불평등의 원인 고찰로 나아간다. 두 차례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분명히 ‘평등화의 힘’이라는 것이 폭넓게 작용했다. 이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