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는 그 어떤 리얼리즘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문제적 작가 우엘벡이 파헤친 문제적 작가 러브크래프트 크툴루 신화를 창조한 호러소설의 거장 H. 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티언을 자처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미셸 우엘벡은 이 짧은 문학적 평전에서 친절한 신사이자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문제적 인간 러브크래프트를 파헤치며 공포와 혐오의 본질을 탐색한다. 우엘벡은 러브크래프트가 쓴 편지와 소설, 주변인의 증언을 통해 자신만의 렌즈로 인간 러브크래프트와 그의 작품 세계를 철저히 해부한다. 시골에서 따분하게 살던 청교도적 금욕주의자 러브크래프트가 어떻게 인종차별주의자, 나치지지자가 되며, 어떻게 “맹목적인 공포와 경탄이 소용돌이” 치는 크툴루 세계관을 창조하는지 그의 시간과 공간을 따라 짚어 나간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가 그린 공포가 왜 지금 우리 시대에야 완성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서문을 쓴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이 세상과 삶에 맞서고 있다는 우엘벡의 핵심적인 주장에 동의하며 절대로 입 밖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글로 담아냈다고 찬사를 보낸다. 우엘벡에게 소설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며, 러브크래프트가 우리의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와 거리를 둔 채 우리가 그의 혐오, 아니 우리 시대의 혐오를 마주하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러브크래프트가 쓴 소설만큼이나 섬뜩한 이유다. 자, 이제 페이지를 넘겨서 거울을 마주보도록 하자.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서, 악의 비열함을 찾는다.” _뉴욕타임스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 H. P. 러브크래프트와 프랑스 문학의 악동이 만나다 스티븐 킹과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감독 존 카펜터와 기예르모 델 토로, 화가 H. R. 기거,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까지. 유명한 러브크래프티언의 이름을 쭉 나열하면 한 페이지를 다 써야 할지도 모른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소립자》, 《복종》, 《세로토닌》 등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큰 파문을 일으킨 프랑스의 논쟁적 작가 미셸 우엘벡도 러브크래프티언 중 하나다. 냉소와 혐오가 가득한 문체로 서구 자유자본주의의 온갖 비뚤어진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그의 작품은 많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깊은 절망에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히 그려내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 고독에 허덕이는 러브크래프트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이 책에서도 우엘벡의 필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마니아층이 두터운 작가다. 그는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로서 수많은 예술계 거장들이 오마주하면서 애정을 바친 데 비해 국내에서 언급이 덜 된 편이었다. 최근에야 한국에도 장르문학 붐이 일면서 러브크래프트의 지명도가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작가로서의 러브크래프트를 다루는 책은 한 권도 없는 실정이다. 미셸 우엘벡이라는 대가의 필치로 그려낸 이 공포소설 거장에 대한 전기적 작품론은 러브크래프트의 팬들이 느꼈을 갈증을 채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엘벡의 진정한 첫 소설이자 프리퀄 이 책은 미셸 우엘벡이 쓴 첫 단행본이다. 그는 “인생의 첫 소설을 쓴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회상하면서, 이 짧은 문학적 평전을 “사실들로만 이루어진 소설”로 봐달라고 독자에게 요구한다. 그런 맥락에서 러브크래프트에 관한 이 전기적 소묘는 우엘벡이 앞으로 써 나갈 문학의 근원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엘벡은 왜 자신의 첫 책의 주인공으로 인종차별주의자로 알려진 공포소설가 러브크래프트를 선택했을까?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무상감을 느끼며, 회한과 자기혐오에 젖어서 “세상은 악한 것이며 내재적으로도, 그리고 본질부터도 악하다는 결론”을 내린 채 삶을 냉소하는 러브크래프트라는 인물은 우엘벡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의 원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적응자로서의 러브크래프트의 면모를 부각하며, 사랑 같은 삶의 내밀한 영역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우엘벡의 관점이 이 책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야말로 그의 첫 소설이며 그가 그 후로 쓴 소설들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라는 부제는 평생 어른으로 성장하지도 못한 채로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고 적대적인 타자로 인식하고 맞서야 했던 러브크래프트의 삶을 묘사하는 문구이다. 일찍이 청년기에 급성발작으로 10년을 은둔형 외톨이로 보내며 인생의 부질없음과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지루함에 시달린 그는 “모든 형태의 리얼리즘에 맞서 싸울 특효약”을 찾아야만 했다. “창조적인 상상력의 특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일상을 그대로 그리는 리얼리즘으로는 그가 느끼는 삶에 대한 혐오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페이지에 두 건의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크툴루 등 “기이한 공포”가 등장하는 세계가 러브크래프트에게는 오히려 진실된 리얼리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라는 시골에서 외롭게 산 청교도적 금욕주의자이며, “평생에 걸쳐 신중하고 점잖으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전형적인 신사”가 공포소설의 신화를 쓰기 위해서는 더 큰 시련이 필요했다. 그토록 친절했던 그가 인간혐오자로 어두워져 가는 과정은 우엘벡에 의해 마치 영화 〈조커〉(2019) 속 아서 플렉의 탄생기를 방불케 하는 명장면으로 그려진다. 물성을 얻는 순간 공포가 되는 혐오, 공포와 혐오의 본질을 탐색하다 30대 ‘모태 솔로’였던 러브크래프트는 연상의 연인 소니아 그린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짧게나마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다. 하지만 경제를 책임졌던 소니아의 실직으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구직활동에 나선 러브크래프트는 “약 백여 군데의 구인 공고에 연락”하고 “이전에 고용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가장 겸허한 마음으로 … 사회초년생이나 받는 적은 보수도 받을” 각오까지 하였지만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하고 처절하게 실패한다. 그는 그 탓을 세계 각지에서 1920년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유색인종에게 돌린다. “악취가 나고 특별하게 정해진 형태라고 할 것도 없는 잡종”들과의 경쟁에 밀려 잘 교육받은 앵글로색슨 백인 신사의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유색인종들에게서 보이는 생명력과, 콤플렉스나 금기사항 같은 것이라고는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이 러브크래프트에게는 굉장히 두렵고 역겹게 느껴졌다. 그들은 길에서 춤을 추고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큰 소리로 말하며 사람들 앞에서 웃기도 한다. 그들은 사는 게 재미있어 보인다. 자신에게는 삶이 고통인데도 말이다. 뉴욕에서 큰 좌절을 겪은 그는 고향인 프로비던스로 돌아오지만 작은 시골 도시의 길거리에서도 뉴욕에서 봤던 유색인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부터 그들은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의 눈앞에 앵글로색슨 문명의 패퇴하는 미래가 그려진다. “예민한 인간들”은 “기름이 자글자글한 침팬지들”에게 “게걸스럽게 잡아먹힐 것”이다. 우엘벡이 그랑 텍스트(grands textes)라고 칭한 러브크래프트의 걸작들은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뉴욕에서 느낀 공포와 혐오가 “해부도의 정확성을 지닌” 물성을 입고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역겨운 생명체”라는 핵심 이미지로 그의 소설에서 재탄생한 것이다. 스티븐 킹이 추천한 러브크래프트의 공포소설 설계도 러브크래프트는 위어드 픽션의 대가이자 코즈믹 호러의 미학을 완성한 작가로 불린다. 우주적 공포를 뜻하는 ‘코즈믹 호러’는 인간이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한 우주의 무언가를 급작스럽게 실물로 느낄 때의 공포를 다루는 장르다. 러브크래프트가 쓴 모든 소설은 이 미지의 무언가를 드러내려는 소설이다. 우엘벡은 《던위치 호러》와 《광기의 산맥》 등 러브크래프트의 그랑 텍스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