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1월 이상훈 선수의 트레이드와 6월 느닷없는 은퇴는 국내야구계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마운드를 떠난 이상훈은 록밴드 WHAT!의 리더로 변신해 무대에서 또 다른 열정을 쏟아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상훈은 국내 스포츠 선수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깊이 오해 받고 있는 존재다. 고집 세면서 자유분방하다는 평은 그라운드에서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길게 기른 갈기 머리 때문에 생겨난 추측이다. 그는 누구보다 야구에 진지했고, 유니폼에 자긍심이 컸고, 최고를 위해 철저하게 자기를 단련했다. 야구장을 떠난 이상훈은 여자야구팀 ‘떳다볼’의 감독을 아무 조건 없이 맡아 헌신적으로 코칭에 임해 팀에 우승을 안겨줬다. 또 프로야구에 진입 못한 선수들의 마지막 패자부활전이 펼쳐지던 고양원더스팀의 투수코치로, 선수들을 다독여 야구에 다시 전념할 수 있게 했다. 기술의 야구가 아니라 삶의 야구를 가르쳤다. 어떤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냉혹한 프로야구판에 새롭고 인간적인 리더십을 몸소 실천했다. 이상훈은 유니폼 입은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좀 거칠고 투박해도 부딪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더라도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한국의 야구문화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구단에 대한 선수들의 발언권도 신장됐고, 미디어와도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차츰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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