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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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두라킵은 독자를 음악가 앞에 데려다놓은 뒤 그 음악 너머를 내다보게끔 한다.” - 플리어디스 매거진 “이 책을 읽으면 음악과 그 음악을 둘러싼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줄 알게 된다. 그리되면 이제 당신은 되돌아갈 수 없다.” - 스테레오검 음악에서 삶을 듣는 작가의 독보적인 에세이 모음집 음악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순전히 창작자의 것이다. 그러다 어떤 노래가 세상에 나오면, 그 음악은 모든 이의 것이 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곡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음악이 남긴 희미한 메아리까지 듣는 일은 모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음악이 품은 의도를 넘어, 거기에서 인생을 듣는 일은 흔히 벌어지지 않는다. 하닙 압두라킵은 그 일을 해낸다. 그는 사람들이 음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듣는다. 곡이 가리키는 바가 아니라, 음악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듣는다. 또한 우리가 들었던 음악이 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우리가 듣는 음악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했으며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듣는다. 프린스의 슈퍼볼 콘서트 실황 무대를 다룬 에세이에서, 압두라킵은 불멸에 가까이 다가갔던 한 예술가의 초월적 순간을 묘사한다. 이젠 유튜브 영상으로만 남게 된 그 신비의 시간을, 마술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마법과 같은 문장으로 그려낸다. 한편 에미넴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 짧은 만담은 흑인성(blackness)에 대비되는 백인성(whiteness)의 일면을 역설적으로 백인 래퍼의 성공담을 통해 드러낸다. 이 같은 소외와 차별, 특권이라는 주제는 책에 수록된 여러 에세이를 통해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핵심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추천 서문을 쓴 사회학자 이브 L. 유잉은 다음과 같은 단언으로 책의 태도를 정확하게 정리한다. “압두라킵이 쓰는 글은, 다른 많은 평론들과는 달리, 이 곡에서 뭐가 어찌 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질문한다. 이 곡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압두라킵이 추구하는 ‘사랑의 행위’로서의 비평 “나는 시인이지만 동시에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혹은 그래서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도 비판적이 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거겠지요. 다만 누군가를 비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향한 사랑 또는 그에 대한 기대로부터 어긋난 실망에서 비롯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의 음악 비평은 부정적 입장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잦은 것 같습니다만, 그런 경우 비평가의 동기는 분노나 냉소, 질투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에 비평이라는 노력을 들일 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어요. 나에게 비평이란, 사랑의 행위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일 겁니다. 물론 나의 이러한 방식도 가끔은 실패로 귀결되곤 하지만요.” 하닙 압두라킵은 <더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사랑의 행위’로서의 비평이란 뭘까? 이 질문의 대답이 곧 이 책이다. 《죽이기 전까진 죽지 않아》에 수록된 39편의 에세이는 단순히 비판적 또는 호의적 자세를 견지한 비평문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랑에 기반을 둔, 사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사랑했으나 실패로 귀결된, 사랑했으나 실망이나 분노로 끝맺음한 이야기들이다. 압두라킵의 글은 논리적이고 정연한 태도와는 다소 거리를 둔다. 그의 비평적 글쓰기는 감정 없는 분석을 지향하지 않는다. 문화비평의 과업 중 하나가 우리 사회의 조각난 삶의 양태들을 비평가 스스로가 선택한 주제와 긴밀히 이어 붙이는 작업이라면,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 스포츠, 정치, 대중문화에 깃든 사연과 감정 들을 불러와 자신의 고유한 시적 언어로 재구성한다. 오로지 최고 수준의 에세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 “현존하는 작가 중에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하닙 압두라킵처럼 쓰는 이는 없다. 그래서 처음 하닙의 글을 읽었을 때는 그의 통렬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작품의 중간 부분에 의해 느낌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 깨닫지 못했다. 가운데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이 에세이집에서 하닙은 우리를 텍스트의 한가운데로, 음악의 한가운데로, 작은 도시의 한가운데로, 문화의 한가운데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일단 그 안에 들어서면, 우리는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상세히 보고 듣게 된다. 과장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억제되지도 않은 이 에세이들은 가장자리를 따라 실을 꿰듯 안팎으로 엮이는데, 이는 오로지 최고 수준의 에세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키에세 레이먼, 작가) 수록된 에세이들은 대부분 음악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오늘날 우리 삶과 문화에 얽힌 첨예한 이슈들을 거침없이 다룬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는 기억과 망각, 사랑과 폭력, 삶과 죽음 등이 음악과 함께 얽혀 있는 현실에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비통함과 연민에 젖어든 스스로를 맞닥뜨리고야 만다. 압두라킵은 매사를 인간적인 공감,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을 가장 잘하는 작가다. 그의 글은 독자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조차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역동적 투쟁이자 세공되지 않은 몸부림이 되기도 한다. 희망을 꿈꾸기조차 어려운 시대, 압두라킵은 암흑을 뚫고 나오는 눈부신 섬광을 약속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지만 관대한 정신을 품고서 우아하고 다정한 글을 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