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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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이 집이 아마 경성서는 제일 조흘걸요” 와인빛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식탁과 파리가 날리는 좁고 낮은 식탁 사이, 경성의 번화가를 수놓은 외식 풍경과 그 위로 드리운 식민의 그늘을 쫓다 박완서 작가가 숙명여고보 합격 기념으로 오빠와 방문했던 추억의 레스토랑, 이상이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고달픈 오후 시간을 보냈던 카페는 어디였을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경성에도 맛집이 있었다. 인기 메뉴를 맛보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시설로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렸던 맛집들이. 하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경성’과 ‘맛집’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낯설게 느껴진다. 남아 있는 자료가 드물뿐더러, 관련된 연구 또한 깊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성 맛집 산책》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껏 소홀히 다루어진 근대의 흔적인 ‘경성의 맛집’과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외식 풍경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복원해 낸 결과이다. 박현수 교수는 대한민국 유일 ‘음식문학연구가’로서 소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식문화를 탐구했던 전작 《식민지의 식탁》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근현대 소설에 등장한 음식점들에 주목한다. 각 음식점의 메뉴와 가격, 주요 고객층, 개성 있는 내·외관, 독특한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들이 화려하게 탄생하고 스러지는 역사 또한 책 속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당시의 풍경을 재현한 지도 일러스트와 다수의 사진과 기사 자료, 소설 삽화와 인용을 활용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최초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들의 소일터였던 ‘낙랑파라’, 지금도 건재하게 영업 중인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이문식당’ 등 책에서 다룬 10곳의 음식점이 등장하고 번성한 시기는 식민지 시대였다. 따라서 이는 식민지 조선과 서양의 신문물이 만나고 충돌했던 첨병으로서 경성을 조망하는 일이자, 당대의 식문화에 드리웠던 식민의 그늘에 주목하고 이를 밝혀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경성 맛집 산책》을 통해 독자들은 경성 곳곳을 탐험하며 조선인들이 새롭게 등장한 풍경과 낯선 음식 앞에서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을, 그리고 그 뒤로 견뎌내야 했던 삶의 무게와 식민의 멍에 역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술잔 모양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고, 초콜릿향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소설을 따라 도착한 화려한 경성 거리의 한복판 이선희의 소설 〈여인명령〉의 주인공 숙채는 종로 네거리를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풍기는 초콜릿 향기를 맡는다. 이는 1937년 종로에 6층짜리 건물을 신축해 개장한 화신백화점에서 느껴지던 위압감과 세련됨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종로를 거닐던 조선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경성 맛집 산책》은 경성의 맛집과 당시의 식문화를 생생히 살펴보기 위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삼대》 등 한국 근현대 소설의 도움을 받는다. 소설은 그것이 쓰인 시기 대중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자료로, 당대의 문화를 미시적으로 그려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낯선 음식을 처음 맛본 사람들의 반응, 손님들이 식당에서 나눈 대화, 식당을 찾았던 주된 고객층 등 소설 자료가 아니었다면 그려내기 힘들었을 흥미롭고 구체적인 문화사가 눈앞에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염상섭의 대표작 《삼대》는 조선 최초의 서양요리점 ‘청목당’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세 여자의 긴장감 넘치는 술 대작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오렌지로 만든 술 ‘퀴라소’를 비롯해 청목당에서 판매했던 다양한 메뉴들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호텔과 그 식당을 배경으로 하는 《불사조》는 조선호텔에서 한 달을 생활하기 위해 지금 돈으로 4,500만 원이 필요했음을 언급하는데, 이를 통해 이곳을 방문했던 주된 고객층이 아주 부유한 소수의 조선인, 그리고 한국에 주재했던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 다른 소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의 소일터로 알려졌던 다방 ‘낙랑파라’가 등장한다. 구보 씨의 묘사를 통해 낙랑파라에 흐르던 독특한 분위기와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그동안 단편적인 자료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던 경성의 역사가 마침내 이야기를 통해 실감 나게 우리 앞에 재현된다. 이는 오랜 시간 문학을 통해 한국의 식문화를 탐구해 온 저자만의 독보적인 성취이다. “매당은 잔을 성큼 들어 쭉 마시엇다. 조선의 여걸도 브란듸, 휘스키는 알지마는 이런 기린 모가지 가튼 병의 술은 처음 보는 거라 호기심으로 마시기는 하엿스나 (…) 이것을 시초로 매당과 경애는 정종으로 달라부터서 주거니 받거니 두 술장수가 내기를 하는지 판을 차리고 먹엇다.” (44쪽, 《삼대》의 인용) “한 달에 900원이니 100원이 업는 1,000원이다. 제 아무리 조선서 몃째 안 가는 이른바 백만장자의 외아들인 계훈이라도 언제까지 이 비싼 호텔에서 양코배기들과 어깨를 겨루어 가며 생활을 계속할는지 의문이다.” (350쪽, 《불사조》의 인용) 소다수에 아이스크림을 풍덩, 메신저를 통해 전한 연애편지… 이상야릇한 음식들과 독특한 시스템을 엿보다 백화점 1층 자동판매기 앞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무언가 사달라고 조르고, 에스컬레이터는 쉴 새 없이 손님을 태워 나른다. 요즘 백화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앞의 묘사는 식민지 시대 ‘화신백화점’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시스템과 음식 중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들이 있다. 지금과 같이 백화점 식당 입구에 음식 샘플을 진열해 두고 메뉴를 고른 뒤 금액을 지불하고 입장하는 방식은 경성의 백화점뿐만 아니라, ‘가네보 프루츠팔러’ 등의 유명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서양요리점 ‘청목당’에서는 짐을 맡기는 클럭룸과 대기실을 운영했으며, 중화요리점 ‘아서원’에서는 나무 식함으로 짜장면을 배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성의 맛집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한국 외식 문화의 뿌리와 그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색다른 풍경도 있다.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은 ‘미쓰코시백화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이들은 아이스크림과 소다수를 함께 시켜 이 둘을 섞어 먹는데, 탄산음료에 아이스크림을 빠뜨려 먹는 ‘아이스크림 플로트’가 지금은 생소하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인 디저트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의 SNS 역할을 했던 ‘메신저’의 존재도 독특하다. 메신저는 일정한 돈을 받고 편지나 물품을 전달하던 직업으로, 유명한 맛집에는 늘 이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화상보》의 주인공 경아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네보 프루츠팔러’로 나와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이들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책 속에는 경성의 맛집을 중심으로 한, 익숙해 재미있거나 낯설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경애는 ‘소다-수’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휘휘 저어서 먹는다. 조 씨도 ‘소다-수’에다 아이스크림을 텀벙 너차 ‘소다-물’은 부그르르 흘러나와 테블크로스를 적셧다. (…) 정순이 한 모금 빠라드린 ‘소다-물’은 목으로 바로 넘어가지 안코 코구멍으로 조금 올라왓다. 그 때문에 정순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핑그르르 돌면서 재채기가 나오려 한다.” (81쪽, 《찔레꽃》의 인용) ““장 선생께서는 저의 마음을 몰라주십니다. 뵈옵고 자세한 말씀 드리려 하오니 미안하오나 이리로 좀 나와 주시옵소서. 가네보에서, 경아 올림.” 가게에서 종이와 봉투를 얻어 간단한 편지를 써 가지고 메신저를 불러 시영에게로 보냈다.” (165쪽, 《화상보》의 인용) 화려하고 향기로운 식탁 이면에 감춰진 식민지의 그늘, 삶의 무게가 아로새겨진 식탁을 주목하다 책에서 다룬 화려한 맛집들과 군침 도는 음식들. 실제로 이것을 경험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