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의 앎에는 어떤 정치와 윤리가 깃들어 있는가?
부정의에 저항하는 인식적 실천은 가능한가?
사회적 권력과 정체성, 앎의 얽힘을 탐구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
불신에 둘러싸여 증언을 묵살당하는 흑인
성폭력에 대한 비판적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는 여성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가 없는 성소수자
인식적 능력을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차단당하는 모든 이들
“시간이 흐른 후 미래 세대가 21세기를 돌아보며 철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들을 꼽는다면, 《인식적 부정의》 역시 단연 그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비판적 언어의 부재로 고통받는 여성,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성소수자, 인식적 능력을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인, 불신에 둘러싸여 증언을 묵살당하는 흑인…… 이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사례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이 겪는 부당한 피해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언어를 오랫동안 갖추지 못해왔다. ‘편견’, ‘고정관념’, ‘무시’, ‘차별’과 같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언어는 이들이 겪는 인식적 층위에서의 부정의injustice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보인다. 말하자면, 대화나 발화, 증언 등을 포함해 무언가를 알고 전달하는 인식적 활동에서 이들이 어떻게 배제되는지, 어떤 부정의를 겪는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부재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겪은 당사자들은 그 부당한 경험을 스스로 선명히 이해하고 언어화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도덕철학과 사회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 미란다 프리커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이와 같은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유하게 인식적인 유형의 부정의”를 포착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에게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인식적 능력(무언가를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능력) 혹은 누군가가 지닌 지식의 주체로서의 능력에 범해지는 잘못을 ‘인식적 부정의epistemic injustice’로 개념화한다. 이 개념은 철학, 인식론, 사회학, 문학비평, 페미니즘 등의 분야를 비롯해 여러 사회운동에도 강력한 언어와 사유를 안겨주었고, 그 덕택에 비로소 우리는 그 부정의에 뚜렷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프리커가 제시하는 ‘인식적 부정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말과 증언을 통해 자신이 가진 앎/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사람이 부당하게 낮은 신뢰성을 부여받을 때 발생하는 증언적 부정의testimonial injustice와,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집단적 자원의 결여로 발생하는 해석학적 부정의hermeneutical injustice가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일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인식적 실천, 즉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앎을 전달하는 행위’와 ‘우리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이해하는 행위’에 깃든 윤리와 정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이해를 확립할 때, 인식적 부정의에 저항하는 앎의 윤리 또한 모색할 수 있다.
정체성 권력: 사회적 정체성을 둘러싼 상상적 공조
프리커는 인식적 부정의의 첫 번째 유형으로 ‘증언적 부정의’를 다룬다. 증언적 부정의란 말 그대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증언 및 담화에서 발생하는 부정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청자가 화자의 말에 낮은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화자가 부당함을 겪는 상황을 포괄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화자가 당하게 되는 불신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왜 발생하는가? 어떠한 이유/맥락에서 청자는 화자의 발화에 낮은 신뢰성이나 불신을 보내게 되는가? 또한 어떤 이들이 이런 부정의를 주로 겪는가?
이 일련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프리커의 권력론부터 살펴보아야 하는데, 위와 같은 증언적 부정의의 상황에서 작동하는 것은 결국 모종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프리커는 권력을 기본적으로 ‘사회적 권력’으로 이해하고 정의한다. 사회적 권력이란 하나의 능력으로,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사회적 행위자로서 사회 세계 전반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것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렇듯 능력으로서의 사회적 권력은 적극적으로도, 소극적으로도 작동할 수 있으며(주차단속원이 가진 주차 위반에 대한 벌금 부여 권력이 실제로 누군가를 적발해 벌금을 부여할 때도 작동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운전자들의 주차 행위에 상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행위를 통해 실현되지 않을 때도 존재한다(누군가 단속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차 규정을 어겨 권력이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그 권력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프리커는 이 권력이 특정 사회적 행위자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도 있지만(행위자적 권력), 행위자/주체 없이 순수하게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특정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의 행위를 통제하는 경우든, 사람들의 행위가 순수하게 구조적으로 통제되는 경우든 모든 사회적 권력은 사회적 통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즉 “누군가의 객관적 이익의 좌절”을 포함한다는 것이 사회적 권력의 고유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해 프리커는 사회적 권력을 다음과 같이 개념화한다. “타인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실천적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위치지어진 능력.”
다른 한편으로 프리커는 특정 행위자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에서도 권력은 이미 구조적 현상임을 명백히 한다. 이는 권력이 언제나 다른 사회적 행위자와의 실천적 공조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사회의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이뤄지기 위한 권력이 작동하려면 사회적 타자의 실천적 공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표를 현금화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은 은행과 같은 다른 여러 행위자와의 실천적 공조에 달려 있다.)
그러나 프리커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런 유의 실천적 사회 공조라기보다는 상상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회 공조이다. 상상적 사회 공조를 요하는 사회적 권력의 한 유형이 바로 정체성 권력이다. 따라서 이 권력은 어떤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공유된 상상적 개념화 방식에 의존하여 작동한다. 여성 혹은 남성이 된다는 것, 동성애자 혹은 이성애자가 된다는 것 등과 같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집단적인 상상적 개념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젠더 역시 정체성 권력의 한 영역이다. 예컨대 젠더 정체성 권력은 남성이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따르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사용할 때 적극적으로 행사된다.
증언적 부정의와 정체성 편견: 누군가의 말은 왜 불신되는가?
마지, 여자의 직감도 좋지만 팩트라는 게 있어.
―영화 <리플리> 중 허버트 그린리프의 대사
그렇다면 정체성 권력은 화자가 청자에게 일련의 지식을 전달하는 증언적·담화적 교환에 어떻게 관여할까? 프리커는 사회 구성원들이 상상적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그 개념화가 다름 아닌 어떤 사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증언 교환의 상황에서 청자는 상대인 화자의 신뢰도를 자동적으로 평가하게 되는데, 이때 청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 고정관념인 것이다. 즉 고정관념은 청자로 하여금 화자에 대한 신뢰도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휴리스틱heuristic(복잡한 문제를 빠르고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접근법 혹은 규칙)이다. 정체성 권력은 이런 식으로 증언 교환의 메커니즘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러나 고정관념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적절하며 신빙성 있는 종류가 아닌 그릇된 고정관념, 특히 화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내재화하고 있는 고정관념이 문제가 된다. 이런 유의 고정관념이 작용할 경우, 청자는 화자의 신뢰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