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존재의 순간들을 위한 봉헌 :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
버지니아 울프 연보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 소설
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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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와 비범한 지성과 창조력이 결합된 장편소설이다. 1923년 6월의 어느 하루 동안 여주인공인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가는 데서 시작하여 저녁의 파티에서 끝을 맺는 이야기이다. 클라리사의 파티 준비와 병행되는 또 하나의 줄거리인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라는 인물의 자살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전쟁의 광기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의사들의 횡포이다. 등장인물들은 30년 전의 옛 시절과 현재의 삶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 놓인 세월의 폭과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하지만 30년 전 찬란했던 청춘남녀의 모습은 어느덧 부르주아 산업가의 아내로, 사회적 낙오자로, 클라리사 자신은 '계단 위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완벽한 안주인'이 되어 있다. 문장이 단순 명쾌하지 않고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레이스처럼 정교한 그 구문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은 현학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이다. 1996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그레이트 북스'로, 2005년 타임지에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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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캣💜
2.5
"안락하게 생활하는 중산층의 한 명으로서 책임을 느꼈다" 아픈 시대가 남긴 아픈 이들을 위한 예의바른 공감
홍안
3.5
태양의 열기를 더는 두려워 말라. (p.242) -- 연관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집합이 생기는 지점에서 기분 좋은 전율이 생겼고, 뒤에 실린 해설도 몹시 유익했다.
안태준
5.0
댈러웨이 부인, 클라리사의 집에서 파티가 벌어지는 하루의 이야기.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클라리사가 아침에 꽃을 사러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꽃집의 창밖으로 영국 수상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맞닥뜨리며 같은 시간 보도에 서 있던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 전쟁 후 정신착란 증세를 겪는 남자의 시점으로 이어지고, 수상의 차가 도착한 궁정 위에서 펼쳐지는 비행기 활강 쇼를 비추며 거리의 사람들로 시점이 분산되었다가, 집에 들어와 비행기 소리를 듣는 클라리사의 시점으로 다시 모이고, 클라리사가 초록 드레스를 기우며 옛 시절을 추억하다 그 시절 그녀가 사랑했던 피터 월시가 그녀의 집에 나타나 재회하고, 피터가 거리로 나가며 시점이 바뀌고, 그가 공원 벤치에서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자 마침 그 공원을 거닐고 있던 워렌스미스 부부의 시점으로 다시 이어지는 등… 인물과 인물을 뜨개질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통을 이어받듯이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시선이 옮겨지며 런던의 풍경과 개개인의 서사, 생각이 레이어가 쌓이듯 겹쳐져 오늘을 각인시킨다. 인도로 떠나 살다가 오랜만에 영국으로 돌아와서 삶의 복판인 런던 거리를 쏘다니는 피터 월시와, 피터와 결혼하지 않고 리처드와 결혼해 안정된 가정에서 옷을 기우고 파티를 준비하며 부어턴에서의 추억(샐리 시튼, 패리 고모, 휴 휘트브레트 등)에 잠기는 클라리사(댈러웨이 부인)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저녁의 파티에 이르러선 온갖 화려하고 이름 난 사람들이 모여 영예를 꽃피우는 ‘삶’과 파티에 뒤늦게 온 의사 브래드쇼 경의 이야기-좀 전에 자신의 환자였던 남자, 인간 본성(사악하기 짝이 없는)으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믿으며, 세상은 사랑뿐이고 범죄는 없다는 발견을 해낸,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여기는 남자, 워렌스미스가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로 ‘죽음’이 만난다.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세상의 복판 그 가운데, 기준처럼 꼿꼿하게 서서 ‘선을 위한 선’을 실천하는 댈러웨이 부인은, 파티의 막바지에서 죽음에 도전한 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 소식을 듣고 동질감과 동경을 크게 느끼는 그 부인은, 부어턴에서의 어린 시절 그녀를 사랑했던 피터 월시, 그녀가 누구인지, 사교계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때론 속물적으로 비치기도 한다는 걸 오랫동안 봐왔던 친구, 삶에 저녁이 찾아오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파티 손님들이 다 갈 때까지 남아 있으려던 그의 앞에, 그리움과 두려움을 초월하는 ‘황홀한’ 존재감을 가진 여성으로 나타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며 모더니즘이라 일컫지만, 나는 외려 대부분의 소설이란 게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내용에 매몰되고 우유부단해서 삶에 언뜻언뜻 스쳐가는 생각들을, 들여다보면 유의미하고 삶을 다른 테마로 이동시키거나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킬지도 모를 생각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은 게 아닐까, 그 생각의 무한한 소용돌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게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는 삶에서 베어져 나오는 생각들을 충실히 받아쓰려는 ‘딕테’의 의지와 넘실대는 의지를 파도처럼 타고 항해하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생각은 난데없이,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시간을 유예시키고 삶 자체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향신료다. 시간의 선에 놓인 하나의 점, 인간은 주변을 돌아보고 과거와 미래로 생각을 뻗어나갈 때에 입체적인 형상이 되며 그가 놓인 차원 또한 선에서 면으로 뒤바뀐다. 문학은 그러기 위한 더 많은 생의 배움일텐데, <댈러웨이 부인>은 더 많은 생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당일치기 여정이었던 것 같다. + <등대로>와 마찬가지로 문장들이 황홀하다. <등대로>는 자연친화적이었다면 <댈러웨이 부인>은 도시적이다. 피터가 꾸는 꿈과 길에서 구걸하는 여인, 환각을 보는 셉티머스의 묘사는 마치 태초의 풍경처럼, 신들린 것 같이 느껴진다.
Bae
5.0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도 가까이 계시고 그분께 이르는 길은 평탄하기만 했다.
나비🦋
3.0
평행선을 달리던 인물들의 삶이 사실은 같은 곳을 지시한다는 점을 알게 되어, 책을 덮고 곱씹어야 입체감이 발아한다. 그리고 그 모서리에 버지니아 울프의 삶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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