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지각한다는 것 1928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움베르또 마뚜라나는 1948년부터 칠레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1954년부터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하여 생물학을 연구했다. 1958년 하버드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근무했다. 1960년 산티아고의 칠레대학으로 돌아온 마뚜라나는 두 개의 과업을 맡게 되었다. 하나는 의대생들에게 일반 생물학을 강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경생리학과 신경해부학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의대생들에게 지구상의 살아있는 체계들의 특징과 기원을 강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구리의 형태 시각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새의 형태와 색지각 연구에 적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고 마뚜라나는 『자기생성과 인지』의 서문에서 회고한다. 첫 번째 질문은 ‘살아있음의 조직은 무엇인가?’이며, 두 번째 질문은 ‘지각현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다. 살아있음의 조직이란 무엇인가? 강의 시간에 의대생들로부터 ‘살아있음의 조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마뚜라나는 자신이 명쾌한 답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쓴다. 살아있는 체계의 특징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살아있는 체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학 교수로서 마뚜라나는 재생산, 유전, 성장, 진화, 적응 같은 살아있는 체계의 특징들을 나열하고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목록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끝을 알기 위해서라도 살아있는 체계가 갖는 불변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뚜라나는 ‘목적’이나 ‘기능’, ‘사용’처럼 외부적인 것에 준거하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살아있는 체계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적절히 기술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9년에 처음으로, “살아있는 체계란 자신의 구성요소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기본적인 순환성을 통해 단위체들로 정의되는 체계”라고 마뚜라나는 정식화했다. 지각현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마뚜라나는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의 인지과학자 제리 레트빈과 개구리 시각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함께 썼다. 이후 다른 연구자들과 색지각 연구를 이어갔고 점차 신경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경계 활동을 외부 세계가 아니라 신경계 그 자체에 의해서 결정된 것으로 다루는 그런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또 신경계의 작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경계를 닫힌 체계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지각을 외부 실재에 대한 파악이 아니라 외부 실재에 대한 ‘특정화[구체화]’(specification)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정보가 신경계에 입력되어 행동으로 출력되는 것으로 인지와 행동 과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마뚜라나는 “폐쇄적 신경망으로서의 신경계에는 입력과 출력이 없다”(292쪽)고 말한다. 입력과 출력은 오직 외부 관찰자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뚜라나에 따르면 “유기체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는가?”라는 질문은 “유기체는 스스로가 존재하는 매질(medium)에서 적절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지생물학」(1970)의 탄생 『자기생성과 인지』의 본문은 크게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은 「인지생물학」(1970)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69년 3월 시카고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마뚜라나가 발표한 글을 확장한 것이다. 이때 마뚜라나는 살아있는 체계의 조직에 대한 탐구와 지각현상에 대한 탐구가 결국 동일한 현상에 대한 것임을 발견했다고 쓴다. 다시 말해서, “인지와 살아있는 체계의 작동은 같은 것이다.” 아직 ‘자기생성’ 개념을 발명하기 전이었던 마뚜라나는 이 글에서 ‘순환조직’, ‘자기준거체계’ 같은 개념들로 살아있는 체계를 설명한다. 마뚜라나는 「인지생물학」의 집필은 자신이 어떤 초월적 경험에 이르는 길이었다고 쓰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물질은 정신의 창조(담론 영역에서의 관찰자의 존재 양식)이며, 정신은 바로 그것이 창조하는 물질의 창조라는 발견에 이르는 길이었다. 이러한 점은 역설이 아니라, 인지영역에 있는 우리 존재의 표현이며 이 영역 안에서 인지의 내용은 인지 그 자체이다.”(29쪽) 말해진 모든 것은 어떤 관찰자가 말한 것이다 『자기생성과 인지』의 1편 「인지생물학」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과정으로서의 인지란 무엇인가? 2) 인지는 어떻게 수행되는가? 이 글에 따르면 인지는 반드시 생물학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지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는 곧 관찰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연결된다. “말해진 모든 것은 어떤 관찰자가 말한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은 우리가 인지를 하나의 생물학적 현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지를 규명하고 있는 관찰자와 관찰자의 역할까지 설명에 포함시켜야 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관찰자 또한 살아있는 체계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관찰자를 포함하여 살아있는 체계는 자기생성적 순환조직이고 이 순환조직이 상호작용 영역들을 구체화한다. 살아있는 체계가 인지적 상호작용에 진입할 때, 살아있는 체계의 내적 상태(가령, 동물의 신경계의 기능)는 스스로의 인지영역을 확장하면서 살아있는 조직을 유지하는 순환방식에 종속된다. 「자기생성 : 살아있음의 실현」(1973)의 탄생 『자기생성과 인지』 2편에 수록된 논문의 제목은 「자기생성 : 살아있음의 실현」(1973)으로,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함께 쓴 것이다. 살아있는 체계의 조직을 설명하는 용어로서 ‘순환조직’이라는 낱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낀 두 사람은 돈키호테에 관한 한 논문에서 착안하여 ‘자기생성’(autopoiesis)이라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여러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개념을 발명하였다. 자기생성 개념은 사회학, 인공지능 이론, 조직이론, 가족치료 같은 많은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마뚜라나에 따르면 「자기생성」은 「인지생물학」의 한 절인 ‘살아있는 체계’의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마뚜라나는 「자기생성」의 목표가 “자기생성이 살아있는 체계의 조직을 특성화하는 데 있어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점, 그리고 적절한 역사적 우연성들이 주어진다면 우리가 살아있는 체계를 물리적 공간 내의 자기생성체계로 특징짓는 과정에 의해서 모든 생물학적 현상학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30쪽)고 설명한다. 살아있는 체계들은 자기생성기계이고, 자기생성기계들은 자율적이다 『자기생성과 인지』의 2편 「자기생성」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살아있는 체계에 공통된 조직은 무엇인가? 2. 살아있는 체계들은 어떤 종류의 기계인가? 3. 재생산이나 진화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체계들의 현상학이 어떻게 자체의 단위체적 조직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마뚜라나에 따르면 환경과 유기체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분명하게 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명확하고 정밀한 관념과 정의가 필요하다. 2편「자기생성」은 1편 「인지생물학」에서 설명한 살아있는 조직의 재귀적 ‘순환성’이야말로 단위체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유기체가 이 순환성에 종속되어 변화하는 환경과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항상 변화를 허용하면서도 자신의 지속성을 확보해낸다고 설명한다. 마뚜라나와 바렐라에 따르면 살아있는 체계를 구별하는 것은 순환적이고 자기생성적인 조직의 형태이다. 자기생성 이론은 몸과 마음의 데카르트적 이분법을 극복한다 『자기생성과 인지』의 이론적 의의로 크게 두 가지가 언급되곤 한다. 하나는 인지과정을 생물학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