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도 패자도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사는 21세기 남성학
지젝·아감벤·샌델·마크 피셔·하루키·체호프의 사상과 문학을 통한 시대비평, 문화비평의 결정판!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 『쇳밥일지』 천현우 강력 추천!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김영하 작가의 지적처럼,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비정규 삶’을 사는 남성들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정규의 삶’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중산층 회사원이나 부유한 전문직 남성들조차 전통적인 가정을 이루거나 유지하지 못하고, 친구와 불륜을 저지른 아내, 갑자기 떠나버린 애인에게 상처 입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 ‘섬뜩한 미소지니(misogyny, 여성 공포, 여성혐오)’를 내면에 품는다. 여자 없는 남자들, 가장이 될 수 없는 남성들, 주류 남성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남성들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어떻게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구할 수 있을까?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운 소수자의 정체성 정치에서 노동자계급 이성애자 남성들은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를 요구하는 소수자의 대척점에 놓이게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남성들에게 기존 정치세력이 응답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울분을 자양분으로 삼은 포퓰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PC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나이와 성별만으로 뭉뚱그린 ‘이대남’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정체성 정치가 나타났다. 고립된 남성들의 폭력과 테러도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저자 스기타 슌스케는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 빙하기 ‘잃어버린 세대’를 대변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오타쿠로서의 관심사와 노동·정치·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합한 비평을 전개해 왔다. 최근에는 자신도 여성을 혐오하는 인셀(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 비자발적 싱글)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어둠을 자각하고, 프리터 시절 경제적·사회적 불안정보다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소수자도 주류도 아닌 평범한 ‘약자 남성’을 키워드로 남성성을 분석하고 관련 저서를 연달아 펴냈다.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지만, 차별받는 소수자로서 연대할 수도 없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는 스마트한 리버럴이 될 만한 특별한 계기가 없는, 각자 고립되어 고통받는 ‘약자 남성들’은 내면의 불행, 고뇌 그리고 약함에서 비롯된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티’나 ‘인셀’의 어둠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지적한다. “‘안티’와 ‘인셀’이 주는 강렬하고 일시적인 감정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인터넷 전장에서 ‘적’과 싸우면 고양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티를 넘어 약자 남성론을 다시 발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어쩌면 지위와 권력이 있고 특권에 대한 자각이 없는 남성들보다 약자 남성들이 아직은 더 ‘해방’에 가깝지 않을까?” 그는 ‘남성다움’을 위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사회에서 비용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는, 현 체제에서 소외된 ‘약자 남성들’이 오히려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피력한다. 약자 남성들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남성해방운동을 제안한다.
스기타 슌스케의 작품을 수업 교재로 쓰고 한국을 방문한 그를 인터뷰하는 등, 그의 작품세계를 국내에 소개해 온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 부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통계에서도 사회통념에서도 여성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는 남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괴로운가, 라는 물음을 정직하고도 과감하게 던진다. 이 질문에 반발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이 책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고 감상을 밝혔다.
고학력 수도권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던 청년 담론들 사이에서 지방 도시 용접공 출신으로 『쇳밥일지: 청년공, 펜을 들다』를 출간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천현우 작가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무기력했던 초식남들은 어쩌다 과격한 인셀이 되었을까? 이 책은 남성다움을 강요받아왔던 약자 남성들 마음속 구멍을 파고든다. 내 또래 남성들도 정체성 정치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이 책을 강력 추천했다.
남자가 괴롭다! 약자 남성은 어떤 사람들인가?
약자 남성은 주로 독신·빈곤·장애 등 약자의 요소를 지닌 남성들을 가리킨다. 과거 ‘징그럽고 돈 없는 아저씨(キモくて金のないオッサン)’의 줄임말인 ‘KKO’를 자칭하는 남성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약자 남성’이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약자 남성이나 인셀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겠지만, 능력주의 무한경쟁 속에서 뒤처진 다수가 느끼는 ‘굴욕’,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확산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짐승’이 되어버린 글로벌 자본주의의 폭주와 관련이 깊다.
저자는 ‘약자 남성’을 설명하기 위해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잔여’, ‘잔여물’ 개념을 주로 인용한다. “우리는 지금 이민, 난민, 성소수자뿐 아니라 80퍼센트의 뒤처진 사람들, 즉 신과 시장이 방치한 ‘남겨진’ 사람들 속에서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어떤 보편성을 보아야 한다(지젝).” 그는 “정체성 정치는 종종 저마다의 속성이 가진 특수성에 갇히고 마는데 이때 중요한 건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이라는 지젝의 말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잔여물’, 뒤처진 자들, 남겨진 자들은 서로 연대해 그들의 분노를 정치적인 에너지로 결집하지 못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를 능력주의 사회의 ‘굴욕의 정치’로 해석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부정의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능력, 학력을 둘러싼 격차는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 자기책임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결국 개개인의 내면에 감정적 왜곡(굴욕)이 쌓이게 된다. 트럼프는 굴욕의 정치에서 학력이 어떻게 쓰이는지 직관적으로 잘 이해했다고 샌델은 분석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오언 존스는 『차브 Chavs』에서 부유한 중도좌파 엘리트가 ‘차브’라 불리는 하층 노동자계급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을 목격한다. 성소수자나 유색인종을 조롱했다면 당장 쫓겨났을 텐데, 게으름과 천박함의 상징이 되어 버린 ‘차브’에 대한 조롱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자계급은 사회변혁의 주체에서 존재감 없는 ‘잔여물’, ‘찌꺼기’의 처지로 전락했고, 그들의 반발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열풍으로 나타났다.
약자 남성이 급증한 현상의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각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약자 남성들 스스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누가 누가 더 불행한지, 사회의 소수자들과 ‘약자 올림픽’을 하자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각자의 고통을 비교하지 말고, 나를 괴롭게 만든 ‘적’을 찾아 나서지 말고, 괴로움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내면에서부터 풀어나가자고 제안한다.
여성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유리 천장’이라고 한다. 이 표현을 응용해서 남성은 약자가 되면 유리 바닥이 깨져 지하실로 추락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유리 지하실’ 개념이 있다. 지하실로 굴러떨어졌지만, 유리 바닥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구분되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저자는 워런 패럴이 『남성 권력의 신화 The Myth of Male Power』에서 미국 남성의 상황을 표현한 ‘유리 지하실’ 개념을 인용하며 “지금 우리는 약자 남성들이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빛을 비추는 말과 다양한 실천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남성 특권‘이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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