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이슈는 봄의 혁명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가장 최근의 대학살로 간주되는 2016~2017년 사례를 뛰어넘어 보다 길고 깊은 호흡으로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담아보려 했다. 제노사이드는 단시간의 이벤트가 아니다. 2017년 발생한 학살은 제노사이드 마지막 단계 즉, ‘대량 절멸’의 사건으로 진단되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단계로 보기도 한다.)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제노사이드 인프라’가 구축됐고, 진화했다. 로힝야들에게 가해진 박해의 무게는 수십 년 동안 로힝야들을 짓눌렀을 것이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나는 로힝야 제노사이드가 2017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2017년 이후의 상황을 모두 살펴보는 게 이 끔찍한 범죄 사례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편하고 거북한 주제인데다 다루는 시간의 길이가 짧지 않다 보니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챕터 별 흐름과 배경을 요약해 본다.
제 1부는 ‘증오의 시대’로 열었다. 여기서 ‘증오의 시대’란 우선 2010년대를 특정한다. 동시에 로힝야 제노사이드 전반의 세월을 은유하는 표현으로 봐도 무방하다. 2010년대는 미얀마가 소위 ‘민주화 이행기’를 지나며 “개혁”과 “개방” 두 단어가 ‘미얀마’라는 국가명의 수식어로 따라다니던 시기다. 군인 출신 테인세인 대통령의 ‘준 민간정부’(2011~2015)가 그 10년의 앞부분을 채웠고, 나머지 후반 5년은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정부(2016 ~ 2020)가 채웠다. 아웅산 수치 정부는 1962년 네윈의 군사 쿠테타 이후 들어선 최초의 민간정부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NLD 정부는 2008년 군정헌법에 따라 사실상 군과 권력을 분담해야만 했던 ‘하이브리드형 민간정부’였다는 점이다.
2010년대는 또한 ‘민주화’ 바람을 타고 스며든 ‘표현의 자유’가 매우 악랄하게 남용된 시대이기도 하다. 로힝야를 향한, 그리고 미얀마의 무슬림 커뮤니티를 향한 혐오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됐고 폭력적으로 분출됐다. ‘로힝야 제노사이드’ 프레임으로 보자면 그 시대는 증오의 시대였다. ‘민주화’ ‘개혁’이 지배 담론이었을 지는 몰라도 그 ‘민주화’는 군부가 ‘기획’한 것이었고 ‘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기획의 구체적 출발선은 2008 군정헌법이다. 이 책이 2008년 5월에서 출발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여, 제 1부 첫번째 장인 ‘사이클론, 쿠테타, 그리고 제노사이드’는 로힝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로힝야 대학살이 벌어진 2010년대가 어떤 예고편으로 등장했고 흘러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장이다. 또한 1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2008년 5월과 2023년 5월의 두 사이클론이 증오의 시대를 어떻게 이어주고 있는지도 담았다. 아울러,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제도적 상징성이 가장 큰 ‘시민권 박탈’ 이슈를 현장 취재발로 부분 다룬다.
제 2부에서는 로힝야 박해의 확장 버전으로 2013년 미얀마 중북부 소도시 멕띨라에서 벌어졌던 ‘멕띨라 학살’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멕띨라 학살’은 로힝야를 향한 혐오가 무슬림 커뮤니티 혐오로 이어지면서 이들을 향한 혐오 스피치와 폭력이 고조되는 시점에 발생한 중대한 사건이다. 이 모든 박해와 폭력을 끝없이 선동하는 극우 이데올로기이자 군부정치가들의 도구 ‘불교 극단주의’ 문제가 2부에서 집중 다뤄진다.
제 3부는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제도적, 상징적, 실질적 대표성을 지닌 이슈 바로 시민권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로힝야를 위조된 정체성이라 보고 “로힝야 = 벵갈리”라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서 로힝야의 토착성을 살펴봤다. ‘로힝야는 미얀마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장이다.
제 4부는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한 설명과 제노사이드 방지 협약의 내용과 배경 등 이론과 정보를 우선 담았다. 이어 로힝야들이 반세기동안 직면해온 박해 상황들을 시기별로 상세하였다. 제노사이드의 이론과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실제를 맞춰 보려는 시도다. 내용의 성격상 문헌 연구 방식에 크게 의존했다. 로힝야가 직면한 박해 상황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게 단순히 분노와 동정에서 비롯된 감정적 배설이 아니라는 점, 이미 명문화된 국제규약과 국제법에 기반하여 토론과 고민의 과정을 거친 ‘과학적’ 판단이자 역사적 근거가 차곡차곡 수반된 분석이라는 점을 공유하는 게 4부의 취지다.
제 5부에서는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 펼쳐진 로힝야 난민들의 삶을 담았다. 2017년 대학살 발생 훨씬 이전인 70년대 말부터 견뎌온 로힝야들의 삶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격하게 공유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난민살이 실상을 통해 로힝야 제노사이드 범죄가 공간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장성과 파급력을 지녔는가에 대해 이해하는 장이다. 아울러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송환 이슈를 70년대 상황부터 차근차근 짚었다.
마지막으로 6부 ‘국경의 위험한 신호’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하나는 로힝야 보트난민 스토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로힝야와 가장 가까운 이웃 라까인족 이야기다. ‘보트난민 스토리’는 미얀마, 방글라데시, 태국,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 국경을 넘나드는 보트난민들의 현실을 통해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공간을 찾아 끝없이 국경을 들락거리는’ 간절한 몸부림을 공유한다. 그들이 탈출하려는 공간은 비단 미얀마뿐만이 아니다. 1978년 1차 대축출 이후 거의 두 세대에 걸쳐 살아왔던 방글라데시 캠프 역시 그들이 벗어나려는 공간이다. 피난처가 되어야 마땅한 난민 캠프에도 울타리가 들어서고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는 현실은 로힝야들에게 ‘벗어나야 하는 또 다른 세계’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로힝야들이 방글라데시 당국에 체포, 구금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 캠프를 탈출하려는 로힝야들은 점점 늘고 있다. 로힝야 보트난민을 추적해 온 <아라칸 프로젝트>에 따르면 2023년 11월 말 기준 그해 3,572명의 로힝야들이 34개의 난민선에 올랐다. 65%가 방글라데시에서 출발한 이들이다. 전년도까지만 해도 미얀마 라까인주를 출발하는 보트난민 비율이 높았으나 그 추세가 뒤집혔다. 보트난민 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범죄가 한 커뮤니티에 가하는 고통의 무게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라까인 주 무장단체 이야기는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지탱하는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라까인주 분쟁과, 그 분쟁을 구성하는 ‘삼각구도’의 다이나믹을 다룬다. ‘라까인 변수’의 중대성이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나의 문제의식에 따라 담은 주제다. 그 중에서도 현재 독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장단체 ‘아라칸 군’Arakan Army(이하 “AA”)을 중심으로 다룬데는 이유가 있다. 대학살이 벌어진 2017년 이후의 라까인주 정세, 더 나아가 미얀마 정세까지 연동된 환경을 이해하려면 AA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포스트 – 2017’시대 여전히 조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국면과 정세에 놓여 더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그 정세에 주연급으로 부상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AA다. 라까인 정치와 AA에 대한 이해 없이는 로힝야 이슈를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로힝야 말살 정책을 펴 온 핵심 주체는 당연하게도 역대 미얀마 군부 지배자들이다. 그러나 로힝야들의 본향인 라까인 주의 주류종족인 라까인 커뮤니티도 이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해온 가해집단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두 커뮤니티 갈등은 흔히 1948년 버마가 독립하기 이전 영국 식민지 시대, 특히 2차 대전 말미에 해당하는 1940년대 영국과 일본이라는 두 제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