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밑바닥, 빈곤의 도시 쪽방촌
그 한가운데로 들어간 청년 연구자의 치열한 기록
긴 시간 빈곤을 연구하고 다수의 논문들을 쓰며『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를 발표한 빈곤 연구자 탁장한은 박사과정을 마칠 시기에 이른 2022년에 오랜 시간 다짐해 왔던 일을 드디어 실행합니다. 꾸준하게 관련 연구들을 분석하고 당사자들을 만나며 자료를 수집한 동자동 쪽방촌에서 집을 얻어 살기를 결심한 것입니다. 자신이 파악한 내용들의 실제 현장을 체험하고 이론과 현실을 일치시키려는 이 선택은 곧 빈곤 연구 10년 차가 될 연구자로서 필연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게 된 그곳에서의 삶은 예상을 뛰어넘는 극한의 체험이었습니다.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부적합한 환경과 언제 어떻게 갑자기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없이 사는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인정과 인정을 부정하게 만드는 관계들, 무조건적인 지원과 선의가 품을 수 있는 악의까지. 그러한 극단적이고 혼돈스러운 경험들의 와중에서도 그는 연구와 분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하나로 담은 것이 이 책 『서울의 심연』입니다. 그래서 그는 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빈곤층의 생활 반경에 거주하러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 쪽방을 얻고 함께 살며 간극을 좁히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면서도 이방인이라는 낯선 감정을 좀체 지울 수 없는 것, 출구가 없다는 생각으로 살면서 눈앞에 보이는 빈곤의 참상을 견디는 것, 그동안 쓴 연구들과 현실 간의 괴리에서 크나큰 혼란을 겪는 것. 쪽방촌에 거주하면서 겪었던 고충과 딜레마는 숱하게 많았다.
(…)
쪽방촌에 거주하면서, 지속되는 고통에 적응하기 위해 도시 빈곤층이 수행하는 다양한 행동 양식을 접하고 학습했지만 여전히 빈자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들이 주체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부득이하게 발현시키는 의존적 태도도, 자주 저지르는 부정도, 이웃 간 협력과 혐오도 모두 좋다. 나였어도 극한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살았을 것이며, 실제로 쪽방에서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하는 고통은 어떤 이유로든 좋아질 수 없었다. 내가 만났던 200여 명의 쪽방 거주자들 중 그 누구도 그곳이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되기를 바란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쪽방촌을 회고할 때면 항상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묘한 양가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 책은 그 복잡한 모든 것들을 담으며 쓰여졌다.
-『서울의 심연』 9~10p
200여 명과 진행한 구술 인터뷰
직접 살면서 겪은 쪽방촌 현장의 삶과 실체
우리 시대의 빈곤을 면밀하게 추적한 르포르타주의 탄생
저자는 『서울의 심연』을 만들면서 빈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빈곤의 도시를 구축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까지 최대한 파악하여 본질과 실체를 드러내 보일 수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빈곤의 세계로 들어가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200여 명에 달하는 거주자들을 만나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쪽방촌을 지원하는 세 개의 핵심 기관들인 쪽방상담소, 사랑방 등의 지원 기관들과 종교 단체를 접촉하여 빈곤의 도시를 만들고 유지하는 힘, 그리고 빈곤을 탈출하려는 힘과 현실적 문제의 관계를 면밀하게 추적했습니다.
이 쪽방촌 사람들 모두는 빈곤의 도시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면서 빈곤의 도시에 의해 고통을 받고, 탈출하려고 하면서도 필요충분의 관계망으로 인해 좌절하게 되는 복잡다단하고 모순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생태계의 일원들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쪽방촌 사람들, 쪽방상담소 사람들, 사랑방 사람들, 개신교 교회 사람들의 생생한 실제 삶들을 포착하여 제시하고 그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그들이 서로에게 맺고 있는 관계의 형태를 재구성합니다. 『서울의 심연』은 그 모든 사안들을 붓으로 삼아 그려낸 빈곤의 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해부도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빈곤
빈곤의 형성과 유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제시
『서울의 심연』은 체험으로 얻은 생생한 기록들로 각자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다른 빈곤 현장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는 몰랐던 빈곤'의 실체에 대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 노력입니다.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는 빈곤 현상의 실체는 그 사라지지 않는 영속성으로 인해 파편적인 부분들이 아닌 전체 숲을 봐야 알 수 있는 내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심연』은 빈곤이라는 숲을 이루는 총체성에 대한 추적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숲을 짚어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던 빈곤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들을 부수는 작업이기도 하며, 그를 위해 저자는 현장의 자료들을 이 책에서 충분히 준비하였습니다. 저자 자신도 그간 배워 왔던 것들을 깨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이 지독한 체험의 과정은 함께할 독자에게 빈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대안을 숙고하게 만들 수 있는 집약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