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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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어둠을 심판하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의 걸작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평범한 이들의 고귀한 친절과 강인한 희망 2차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 - 『뉴욕 타임스』 철저한 사실주의와 선구적인 도덕적 강렬함,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 업적 중 하나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전쟁의 혼란 속에 국가와 가족의 운명을 그려낸 서사적 걸작 - BBC Radio4 2차대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예리한 시선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전쟁과 이데올로기,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전3권)이 창비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2012년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세대를 넘나드는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들 다수를 펴내며 지평을 넓혀온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는 『삶과 운명』의 출간으로 100번을 맞이했다. 2차대전에서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장편 『삶과 운명』은 전쟁 당시의 소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체제와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긴 작품으로 이 작품이 국내에서 번역되길 오랫동안 기다렸던 많은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작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전쟁의 참극에서 전체주의 체제 자체와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독일과 소련 사회 내부의 모순과 비리를 냉정하게 포착하며 두 국가의 근본적 동질성을 발견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삶과 운명』은 1959년 완성되었으나, 작품이 가진 반스딸린주의적 면모로 인해 당대 여러 작품들처럼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작가가 스딸린 사후 해빙 무드에 걸었던 기대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출간 불허 판정을 받고 당국에 압수되었고, 친지가 작품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밀반출해 1980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래 지속적인 삭제와 수정을 거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이 출간된 이후 러시아에서는 뻬레스뜨로이까 이후 1989년에 출간될 수 있었다. 인간의 선함에 대한 치열한 논쟁 속에서 작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친절을 발견하고 긍정하는 과정은 전쟁의 비극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오늘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의 모든 것, 삶을 파괴하는 억압과 체제에 대한 치열한 보고 『삶과 운명』이 “2차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뉴욕 타임스』)이라 불리며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 작품이 지닌 총체성 덕분이다. 소설은 1942년 가을부터 1943년 봄까지 약 반년 동안을 배경으로 모스끄바에서 까잔으로 피난 온 물리학자 시뜨룸과 그 가족, 스딸린그라드 공방전,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를 세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여기서 전쟁은 하나가 아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전선의 전쟁이 있고, 극한의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는 후방의 전쟁, 절멸이 기정사실인 수용소의 전쟁, 그리고 숙청 속에 당파성을 증명해야 하는 충성 전쟁이 있다. 작가는 후방의 시민과 전선의 병사, 수용소의 수감자부터 장군들, 히틀러와 스딸린 같은 수뇌부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인물을 소환하고 이 겹겹의 전쟁 속에 일어날 만한 모든 문제를 다룬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과 현실을 칼로 도려낸 듯 예리한 사실주의는 이 총체성을 거대한 벽화로 완성한다. 2차대전을 다룬 다른 작품과 『삶과 운명』을 구별 짓는 점 역시 이 치열한 사실주의와 객관적 시선에서 나온다. 소설은 익히 알려진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소련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와 흑색선전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붉은군대 내에서 병사들은 유대인을 조롱하고,(1권 245면) 시뜨룸의 연구소 내 모스끄바 귀환자 명단에서는 유대인만 누락된다.(2권 64면) 스딸린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따따르인, 깔미끄인, 체첸인, 발까르인 등 타 민족에 대한 편견을 자신의 통치 전략에 이용한다. “인민의 스딸린그라드 승리 10주년 기념일에 스딸린은 히틀러의 손에서 낚아챈 말살의 칼을 그들의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3권 62면) 또한 병사를 숫자로 환원해 희생에 아랑곳없이 무모한 진격을 명령하는 장군이나 이에 지혜롭게 맞서 전차 공격을 성공시킨 지휘관 노비꼬프가 명령 불복종으로 재판에 소환되는 상황, 백전노장인 견결한 공산주의자 끄리모프가 스딸린 치하 군 숙청의 일환으로 조작된 혐의를 받고 투옥되거나, 시뜨룸의 엄청난 수학적 발견을 무시하고 자아비판을 요구하던 연구소 동료들이 스딸린의 전화 한통에 돌변해 시뜨룸을 영웅 취급하는 상황 등은 당시 권력층의 비리와 함께 스딸린 치하 전체주의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차가운 시대의 절망 속에서 인간 본성이 발견해낸 소중한 가치 『삶과 운명』에서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 묘사는 3권 전체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수용소 울타리에서 시작하는 1권이 44장에서 포로수용소 소련 포로들의 생활을 정밀하게 그린다면, 2권 29장은 나치 장교 리스의 시선으로 절멸수용소의 가스실 설계와 건설 과정을 보여준다. 이 독일인 장교는 더 효율적인 ‘특별 구조물’(가스실) 건설을 점검하기 위해 떠났던 출장에 대해 “즐거웠다. 여행이 기분을 많이 풀어주었다.”(2권 241면)고 말한다. 소설은 수감자들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관리자, 병사 들의 내면 또한 재현한다. 점검창으로 가스실을 감시하는 독일 병사 로제는 몸부림치는 유대인들을 보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명백한 이득과 은밀한 이득 모두를 잘” 알았고 “히틀러 정치의 유익한 효과를 느꼈다. 그 또한 작은 인간, 약한 인간이었고, 이제 그와 가족의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하고 좋아졌으므로.”(2권 333면) 이 천박한 무감함이 전대미문의 폭력을 낳았지만, 리스는 열혈 공산주의자 포로 모스똡스꼬이 앞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당과 국가에 충성하는 “우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소! (…)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두 일당주의 국가요.”(2권 132면) 나치 장교의 입으로 두 전체주의 국가의 동질성을 말하는 2권 15장 전체는 작가가 유대 지식인으로서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내며 얻어낸 진실의 표현이다. “삶은 곧 자유야. 삶의 기본 원칙은 자유야.” 체제를 수호하려 싸우는 이들과 함께 소설은 전쟁과 파시즘이 가하는 폭력 앞에 몸을 사리고, 친구를 배신하고, 작은 이익에 목매는 보통 사람들을 그린다. 이와 동시에, 같은 폭력과 고통 앞에서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선함을 보여준다. 군의관 소피야 오시뽀브나 레빈똔은 의사로서 이용가치가 있으니 살려주겠다는 나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수송열차에서 인연을 맺은 고아 다비드와 함께 가스실로 향한다. 학살을 앞두고 게토에 갇혀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침을 뱉는 상황에서도 애써 감자 한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1권 18장) 우끄라이나 노파는 우연히 자신의 집에 기어든 죽기 직전의 포로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살펴 살려낸다.(2권 51장) 다른 언어를 쓰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도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들의 가차 없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2권 370면) 압도적 악의와 공포 속에서도 본능처럼 흘러나오는 이 선의는 『삶과 운명』이 작품 전체에 걸쳐 탐색하는 주제의 하나다. 포로수용소의 기인(奇人) 수감자 이꼰니꼬프는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는 인물로, 2권 16장의 기록은 그의 사회적, 종교적 선이 아닌 인간의 선에 대한 생각을 집약한다. “이것, 이 바보 같은 선의야말로 인간 속에 있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 아직 인간 속의 인간적인 것이 말살되지 않았다면, 악은 이미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삶과 운명』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무명의 세입자 부부는 이 끝내 부서지지 않는 작은 선의들 속에서 살아남은 누군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