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부 청년들, 무엇이 그들을 현실에서 내몰았을까
로맹 가리가 아들 디에고에게 바친 책
『게리 쿠퍼여 안녕』은 마음산책이 출간한 로맹 가리의 열 번째 책이다. 세상에 던져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청년들의 끓어오름을 로맹 가리 특유의 거친 독설과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은 1964년 미국에서 『스키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로맹 가리의 최고 성공작이 되었다. 그 후 68혁명 이듬해에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게리 쿠퍼여 안녕』으로 다시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로맹 가리가 보다 능통한 언어로 고쳐 쓴 『게리 쿠퍼여 안녕』을 토대로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63년에서 1968년까지이며, 젊음이 불타올랐던 ‘68년 5월 혁명’을 암시한다. 프랑스에서 지독한 냉소로 악명을 떨쳤던 잡지 <하라키리>가 창간된 해는 1960년, 체 게바라가 처형된 뒤 마을 교회당에서 주민들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전시된 해는 1963년, 미시마 유키오가 도쿄의 어느 연병장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을 자행한 해는 1970년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니는 20세기 사회 전반을 지배한 냉소주의의 정점에서 탄생해서 당시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젊은이들을 이해해야 해’라느니, ‘젊은이들을 믿어야 해’라고 떠들어대는 교활한 부성주의는 정말 웃기는 수작이라고. 지금 그들은 청춘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고 있어. 무슨 목적으로? 진짜 계급투쟁 속에 분열 요소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지. 청춘이라는 계급을 만들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화해시키려는 거지. 무력화 작전이랄까.
-108쪽
베트남전쟁 징용을 피해 스키를 지고 알프스로 간 미국인 청년 레니, 가난한 알코올중독자 외교관의 딸 제스, 자기 자신에게까지 알레르기가 있는 인간 혐오자 버그,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를 벗어나고자 미국을 떠난 흑인 청년 척……. 이 책은 세상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의 혁명 ‘직전’의 분노를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인물들을 통해 순수한 이미지, 영화배우 ‘게리 쿠퍼’로 상징되는 정의롭고 강경한 영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한다.
『게리 쿠퍼여 안녕』은 ‘사회’가 아닌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싸우며, ‘나’를 탓하는 데 익숙해진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유효하다.
과거에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확실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음을 인정해야 했다. 부모들 세대는 운이 좋았다. 그 세대에게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있었고 그들에게 모든 짐을 지워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히틀러도 스탈린도 아니요 세상 사람 모두가 문제였다.
-103쪽
가치 절하된 스무 살 청년들
개인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사람이 30억 명쯤 있는 모양이야. 너에게 겁을 주고 네가 개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려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어. 그게 진짜라면 말이야, 흑인이니 백인이니 하는 건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는 건 다만 30억뿐이지. 무게로 태어나는 거야. 버그 말이 옳아. 그는 이렇게 말했어. 나라는 존재는 인구 낙진일 뿐이라고. 인구 폭발이 있었고, 우린 일종의 방사능 낙진 같은 존재라는 얘기지.
-237쪽
주인공 레니와 제스 그리고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베트남전쟁이나 지금 눈앞의 사회에 저항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인구 폭발’에 저항했다. “인구란 화폐와 같다. 통화량이 많을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오늘날의 스무 살 청년은 가치가 완전히 절하된 존재다. 세상에 너무 많다. 인플레이션 상태다. 인구는 폭발하듯 불어나 당신을 짓밟아버린다”고 외치며 더 이상 인간이 ‘개인’이 아닌 ‘숫자’로 취급되는 상황에 저항한다. 인간관계가 이젠 단지 인구상의 마찰일 뿐이요, 모든 “진정한” 문제는 계급이나 인종, 국가를 바탕으로 수백만 단위로만 수치화되는 것이다. 이때 레니는 개인이 사라지고, 숫자로 취급되는 것을 냉소하며 “소외”를 택한다. 레니의 강박적인 고민거리는 바로 게리 쿠퍼와의 작별, 끝장난 개인주의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 딱 맞는 말이 있다. 바로 소외다. 이 기막힌 말의 뜻은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반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8쪽
인적 드문 알프스의 어딘가, 고도 2,500미터에는 그들의 공고한 요새가 있다. 사회를 버리고, ‘인구’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은 눈 덮인 산으로 숨어들었다. 겨울이면 인적 없는 눈 위에서 스키를 타며 모든 것을 잊고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질퍽한 진흙이 산을 덮는 여름이 오면 굶주림을 피해 도시로 내려간다. 사회의 공식에 자신을 끼워 넣으며 “망가진다”.
이제 완전한 개자식의 자아 외에 허용되는 다른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가? 허용된 유일한 ‘나’는 공중변소 같은, 공적 유용성이 있는 자아뿐이었다.
-212쪽
‘나’와 ‘세계’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이 세상 어디에도 ‘내 집’은 없다는 것을 청년들은 안다. 이제 자신의 삶이 “하나의 토큰”일 뿐이요, 자기 자신이 “자판기에 주입되는 하나의 토큰”일 뿐임도 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곳’, ‘다른 삶’을 믿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다른 곳’은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새 시대가 올 거라고 ‘믿는 척하기’를 그만두지 못할 뿐이다. ‘믿는 척’을 그만두지 못하기에, “이 세상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달”이라 불리던 청년들은 폭탄을 짊어지고 혁명을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온갖 이념적 출격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나’의 소왕국은 끄떡없이 버티며, 그 한계에서 벗어나 타자들 고통의 거대한 무無 속으로 망명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을 삼켜버릴 대재앙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나’만은 지긋지긋하게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세상이야 무너지든 말든 상관 않겠어.
-210쪽
사랑은 이 세계에 포섭되는 방식
세상에는 여전히 뭔가 기막힌 것이 있다
절망에 끝에 선 로맹 가리의 청년들은 무의미에 대항해서 여러 길을 택한다. 기존의 “개자식들을 새로운 개자식으로 바꿀 뿐”임을 알면서도 물리적인 혁명의 길로 나아가기도 하고, 주춤거리면서 “더러운 세상”에 포획되기도 한다. 그리고 레니와 제스처럼 인구라는 숫자로 조직된 사회에 ‘마음먹고’ 편입되는 것을 택하는 방법도 있다. 텅 빈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을 뻔히 예측하면서.
급기야 레니는 악몽까지 꿀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하트 모양 덧문이 달린 어느 예쁜 집에 정착해 있었다. 뒤에는 작은 텃밭 정원이 딸려 있고, 그가 사랑스런 두 아이와 노는 동안 트루디는 부엌에서 스위스 독일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 밖에 애정 어린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는 착한 스위스 독일산 강아지도 한 마리도 있었고, 바깥에는 번지수 위에 그의 이름이 적힌 우편함도 하나 있었다. 레니는 온 머리카락을 곤두세운 채 식은땀에 젖어 깨어났다. 주소와 신원, 그것은 만사 끝장을 의미했다. (…) 사랑이란 당신을 복귀시키려는 삶 같은 거다.
-62쪽
로맹 가리가 “즐겨 다루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던 『게리 쿠퍼여 안녕』의 또 하나의 주제는 사랑이다. 레니는 한 여자에게 고착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는 곧바로 도망친다. 그에게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멈추는 것이며, 이 세계에 포섭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그는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어째서 늘 증오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대단한 매력을 발휘하는지 문득 깨달았다. 증오가 용기를 주고, 비범한 힘을 주고, 당신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증오가 부족해진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사내다움이 필요할 것이다.
-249쪽
레니의 연인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