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는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하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현하는가를 설명하는 책
『성학십도』에서는 하늘을 태극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하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없는 곳 없는 때가 없다고 한다. 이 하늘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며 가장 가깝게 나의 주인이다. 모든 생명은 하늘을 동심원으로 하는 하늘 가족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유학자인 퇴계 이황은 유학적 진리관과 학문관의 정립에 평생의 삶을 바쳤다. 이는 과학과는 구별되는 도학적 진리관으로서 인문학적 진리관에 가까우므로, 인문학적 진리관의 정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퇴계의 학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성학십도』는 1568년, 68세의 노학자 퇴계가 17세의 소년왕 선조에게 바친 소책자이다. 16세로 등극한 어린 왕 선조는 즉위하자 곧 퇴계에게 관직을 내리고 수차례 독촉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다가 다음 해 7월 판중추부사로 임명되어 상경하게 되었다.
그해 8월, 퇴계는 자신의 정치사상의 중핵을 이루는 무진육조소를 올리고 이어 경연에서 여러 차례 시강을 하였다. 그러나 늙고 병약한 자신의 기력에 한계를 느끼고, 어린 왕의 이해력에도 한계를 느껴 국가와 정치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한 다음 물러나기로 결심하고 이 책을 지었다.
퇴계는 무진육조소 3조에서 '성학을 두터이 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우라'고 하여 성학이 정치의 근본임을 설파하고, 역대의 현인들이 쓴 글과 도표 가운데서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세우는 기초'가 될 만한 것을 정선하여 『성학십도』를 지어 올렸다.
퇴계는 이 책자를 올리며 '내가 나라에 보답한 것은 이 도뿐이다'라고 말하고, 선조와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도 '소신이 충성하기를 바라고 가르침을 드리고자 하는 정성에서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정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지어 바친 것이다. 작은 책자이지만 여기에는 퇴계의 평생의 삶과 학문이 응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