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말 7
1장 자기자신에 대한 설명 11
말걸기의 장면들 22
푸코의 주체들 42
포스트-헤겔적인 질문들 49
“너는 누구인가?” 56
2장 윤리적 폭력에 대항해서 74
판단의 한계들 79
정신분석 89
“나”와 “너” 116
3장 책임감 146
라플랑슈와 레비나스 : 타자의 우선성 148
아도르노가 말하는 인간적임 175
자기 자신에 대한 푸코의 비판적 설명 193
역자의 말 234
찾아보기 249
윤리적 폭력 비판
주디스 버틀러
251p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 여성이라는 기표를 둘러싼 젠더 정치의 문제보다는 “인간적인 것” 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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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역서는 2005년 포드햄 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버틀러의 Givingan Account of Oneself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감사의 말”에 언급되어 있듯이 미국에서 출간되기에 앞서 2003년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각각 영어와 독일어로 출간되었다. 본 역서는 네덜란드에서 출판되었을 때 사용된 『윤리적 폭력 비판 :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를 제목으로 갖고왔다.
2000년대 들어 버틀러는 여성이라는 기표를 둘러싼 젠더 정치의 문제보다는 “인간적인 것” - 버틀러는 초맥락적인 보편성을 담지한 인간Man을 대신해서 불확실하고 취약한 인간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공통분모로서 the human을 사용한다 - 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관습이나 믿음과 같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토대가 아닌,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내적)능력으로 “요청된” 이성을 통해 세계의 이해와 확장을 낙관했던 근대적 인식론은 인간과 남성이 겹쳐져 있는 Man의 형상을 통해 전개되었다. 객관적 인식을 확신하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에 의한 해방의 기획은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한 삶의 조건들 안에서 전면적인 부정 내지 수정의 위기를 맞게 된다.



윤준희
4.5
72~73p.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설명은 부분적이고, 거기에는 내가 어떤 명확한 이야기도 지어낼 수 없는 것이 따라다닌다. 나는 내가 왜 이런 식으로 출현했는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고, 서사적인 재구성을 향한 나의 노력은 항상 수정 중에 있다. 내가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그리고 나와 연관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적 의미에서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내가 행동하는가를 내가 설명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일까?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어떤 불투명성이 존속하고, 너에게 나 자신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는 윤리적 실패일까? 아니면 그것은 서사적 설명가능성이라는 이미 온전하고 만족스러운 개념의 자리에서 그 개념 대신에 또 다른 윤리적 배치를 발생시키는 그런 실패일까? 부분적인 투명성을 이렇게 확증함으로써, 이전에 내가 알았던 것 보다 더 단단하게 나를 언어와 너에게 묶어줄 관계성을 승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자아"를 조건짓고 무색하게 만드는 바로 이 관계성이 꼭 있어야 하는 윤리의 출처일 수는 없을까?" 160p. "나는 타자가 무엇을 하는가와 상관없이, 내가 무엇을 의욕할 것인가와 무관하게, 타자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부인할 수 없다. 책임감은 의지를 배양하는 문제가 아니다. 책임감은 타자에 반응하게 되기 위한 자원으로 무의지적 민감성을 사용하는 문제이다. 타자가 무엇을 했건, 타자는 여전히 나에게 윤리적 요구를 하고 있고, 내가 어쩔 수 없이 반응해야 하는 "얼굴"을 갖고 있다 - 이것은 말하자면 나는 내가 결코 선택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복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절절하고 명문이다. 버틀러의 이론들을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인간 이후의 문제에 충분히 활용하고 전유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버틀러는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인 동시에 그것과 포스트-휴머니즘 사이의 가교를 잇는 사상가일 수도 있겠다. 윤리와 도덕을 '너'에 대한 응답 능력response-ability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내가 좋아라하는 해러웨이와도 결이 유사하게 느껴졌으나, 형이상과 형이하를 종횡하며 이를 논하는 해러웨이와 달리 '나'를 구성하는 '너'에 대한 버틀러 식 논의는 지극히 언어적, 규범적 층위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낀다. 명저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올해(2025년)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 덧. 버틀러 진짜 무지 어렵다... 한 50프로 정도만 가까스로 이해한 것 같은데 다른 버틀러의 후기 이론들을 더 찾아 읽으며 상호텍스트적으로 이해도를 높여가야 할 듯... 푸코, 레비나스, 라캉...도 더 도전해봅시다......
오로라
5.0
윤동주의 팔복과 함께 . .
jude
5.0
"다른 사람에 의해 훼손된다는 것은 일차적 필연성, 고뇌일 것이 분명하지만, 어떤 기회, 즉 메시지를 전달받고, 요청을 받고, 나 아닌 것에 속박되고, 또 옮겨지고, 신속히 행동하게 되고, 어딘가에 말을 걸고, 따라서 일종의 소유물로서의 자족적인 "나"를 비울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설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무책임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분명 용서받을 것이다."(233쪽) 우리는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충만한 것보다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 결핍된 것을 응시할 때 비로소 용서받을 수 있다. 버틀러가 실패를 감내하면서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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