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헤로도토스’ 카푸시친스키, 그가 남긴 마지막 르포르타주 에세이
카푸시친스키가 남긴 마지막 르포르타주 에세이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은 전 세계 1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모란테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가 무려 140여 권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토대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폴란드 출신의 기자이자 저널리스트, 르포작가이며 시인인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Ryszard Kapu?ci?ski, 1932-2007)는 평생 낯선 공간, 미지의 세계를 떠돌며 민족과 문화, 종교의 이질성으로 빚어진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데 자신의 생을 바친 인물이다. 세계 50여 개국에서 취재를 담당하면서 27번의 혁명과 쿠데타를 경험했고, 12회의 대규모 전쟁을 취재하는 동안, 여러 차례 최전방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사이 40번 넘게 체포와 구금을 당했고, 네 번이나 처형의 위기도 겪었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전갈에 물려 사경을 헤맸고, 탄자니아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취재여행 도중 밀림에서 코끼리에게 밟히거나 독사에 물린 적도 있었다.
투철한 취재근성과 전문적인 역사 지식,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감수성을 두루 겸비한 카푸시친스키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세상을 글로 재현해내는 과정에서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저널리스트로서는 최초로 2005년과 2006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지구촌 방방곡곡의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적인 감수성을 일깨우고, 풍요로운 문학적 체험을 제공하는 카푸시친스키의 작품은 결국 정보나 실상의 전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탐구와 고찰,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과 진정성이라는 점을 깨우쳐준다.
카푸시친스키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처음 만난 것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직후 해외로 첫 취재 여행을 떠날 무렵이었다.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기관지 <젊은이의 깃발> 편집장이 비행기에서 읽으라며 선물로 건넨 책이 바로 『역사』의 폴란드어 번역판이었던 것이다. 이후 카푸시친스키는 해외 특파원이 되어 2천 5백 년 전 헤로도토스가 그랬듯이 언어도, 지리도, 문화도 낯설기만 한, 세계 방방곡곡의 다양한 나라들을 누비게 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평생 홀로 타지를 떠돌던 카푸시친스키에게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에는 크게 두 명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하나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인용하면서 그 장면이 갖는 의미와 현대 사회와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분석자’로서의 카푸시친스키이다. 이 첫 번째 내레이터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해묵은 동서양의 대립과 반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집트 문화의 유구한 가치를 강조하면서 인류의 화해와 단합을 촉구하고자 했다. 또한 2천 5백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역사』가 가진 불변의 가치와 보편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두 번째 내레이터는 특정한 장소로 파견되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카푸시친스키이다. 이 책에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인도와 중국, 이집트와 이란, 아프리카 대륙과 그리스를 오가면서 카푸시친스키가 몸소 체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삶, 그 애환과 환희가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어 카푸시친스키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 두 번째 역할에서 카푸시친스키는 c의 저자인 헤로도토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카푸시친스키는 헤로도토스를 ‘저널리스트의 원조’이자 ‘인류 최초의 글로벌리스트’라고 칭한다. 자신이 속한 마을, 그 좁은 공간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며 살아가던 고대 사회에서 처음으로 다른 문화,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먼 곳까지 여행을 감행했고, 이를 통해 얻어낸 소중한 경험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카푸시친스키에게 있어 헤로도토스는 그 발자취를 따르고픈 멘토이자 저널리스트의 진정한 표상이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을 읽으며 2천 5백 년 전 헤로도토스의 여정을 함께 따라 가 보고, 20세기 카푸시친스키의 취재여행에 동행하게 된 독자들은 어느 틈엔가 헤로도토스의 페르소나인 카푸시친스키를 만나게 된다. 20세기의 기자가 체험한 다양한 스토리를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가 기술한 문화적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반대로 기원전 5세기에 발발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20세기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면밀하게 분석되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어느 틈엔가 헤로도토스가 카푸시친스키가 되고, 카푸시친스키가 헤로도토스가 되는 자연스런 접합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와 마찬가지로 카푸시친스키는 생의 대부분을 여행에 바쳤으며, 이를 통해 모든 종류의 ‘장벽’과 ‘경계선’을 뛰어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국경선, 다시 말해 공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으로 시작한 카푸시친스키의 길고도 고달픈 여행은 이후 언어의 경계선, 문화의 경계선, 그리고 시간의 경계선을 초월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 힘든, 새롭고 독창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르포르타주이면서 역사책이기도 하고, 기행문이면서 회고록이기도 하며, 철학적인 단상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중에게 구술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역사』가 단순한 산문이 아니라 서사시와 비극의 요소를 두루 갖춘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역사적·인류학적 가치를 넘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의 헤로도토스가 그러했듯이 20세기의 카푸시친스키 또한 특정 사건을 취재함에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주목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생각을 참조하고, 개별적인 견해를 면밀히 관찰했으며, 다각적인 반응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애썼다. 카푸시친스키의 저널리즘이 감동적인 울림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사건’이 아닌 ‘인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카푸시친스키는 모든 선입견을 일체 배제한 열린 시각으로 주류 문화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의 문화적 시야를 넓히고, 동시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미적 감수성과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카푸시친스키야 말로 ‘21세기의 헤로도토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최성은 -
* 헤로도토스는 누구인가?
헤로도토스 (Herodotus: 대략 기원전 489~425년)
‘역사’의 개념을 단순한 연대기의 기록에서 학문과 저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에서 태어났고, 시인이었던 삼촌, 파니아시스(Panyassis)로부터 문필가로서의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와 바빌론,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고 스키타이를 여행하면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해묵은 분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페르시아-그리스 전쟁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았다. 그의 여행 범위는 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방인 스키타이,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거쳐 바빌론까지, 남쪽으로는 오늘날의 이집트 아스완(Aswan) 지방인 엘레판티네(Elephantine),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키레네 산맥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헤로도토스는 사망하기 20여 년 전인 BC 445년 경 아테네로 돌아와 정착했다. 당시 아테네는 세계의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헤로도토스는 페리클레스나 소포클레스 와 같은 저명인사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 무렵 헤로도토스는 연회에 불려 다니며 이야기꾼의 역할을 하였으며, 청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