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이탈리아어 완역본 출간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급변하는 근대의 문학적 선구자 보카치오
죽음의 재앙에 맞서 욕망과 쾌락, 현재적 삶을 긍정하는 유쾌한 '인곡(人曲)'
초서, 셰익스피어 등 세기의 문호들에게 영감을 준 이탈리아 대표 문학의 완역판
《가디언》 선정 100대 도서 | 노벨 연구소 선정 100대 세계문학 | 연세대 필독 도서 200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의 태동을 이끌어 낸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전 3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291, 292번으로 출간되었다. 보카치오는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 가는 과도기의 급격한 변화들을 온몸으로 겪어 냈으며, 당시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이를 통해 혼돈과 불안 속에서 절대적인 도덕과 신성함이 무너진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과 현세적 삶을 추구하는 근대적 세계관을 담은 걸작 『데카메론』을 탄생시켰다. 열 명의 젊은 남녀가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교외로 가서 자연을 벗 삼아 어울리며 다양한 주제 아래 열흘 동안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으로, 중세적 이상론이나 도덕적 교훈을 엄숙하게 내세우는 대신 유쾌한 속어로 기발한 재치와 거침없는 욕망, 생동하는 삶의 진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 준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성과 내용으로 당대 문인들에게는 냉대를 받았지만 민중들의 사랑 속에서 널리 구전되었으며,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비롯한 후대의 수많은 고전들이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데카메론』은 국내 이탈리아 문학 연구의 권위자인 박상진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고 풍부하게 주석을 단 이탈리아어 완역본이며, 여러 판본의 삽화 및 관련 있는 동시대 명화들도 함께 수록했다. 국내 독자들이 그간의 중역본이나 축약본에서 느끼지 못한 『데카메론』의 참맛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독보적인 이탈리아어 완역본,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풍부한 주석과 명화 수록
『데카메론』은 분량이 방대하고 거침없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전반적인 시대 상황이나 영향을 준 작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요구하는 까닭에 그간 국내에서 제대로 된 완역본을 만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흔히 ‘청소년 추천 도서’와 동일시되는 고전이 야하면 안 된다는 인식 아래, 성적인 표현 이면의 재치와 생명력은 간과한 채 ‘야한 책’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축약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마저도 중세 이탈리아 민중어의 의미나 보카치오가 임의로 비틀어 놓은 어휘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영문판에 의존해 중역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데카메론』은 평생 보카치오와 『데카메론』을 연구한 이탈리아 문헌학자 비토레 브란카가 감수한 1980년 에이나우디사(社) 판을 저본으로 삼아 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의 박상진 교수가 완역한 것이다. 박상진 교수는 이미 단테의 『신곡』을 필독서에서 애독서로, 오늘의 독자가 읽기 쉽게 완역한 것으로 잘 알려진 역자이다. 그는 『데카메론』의 가장 큰 특징인 구어체, 특히 각 화자의 성별이나 성향이 다른 구어체를 살려 번역하려 했으며, 민중어의 말맛과 그 안에 담긴 풍자와 위트, 아울러 고어체의 특징까지 살리려고 애썼다. 또한 역사적 배경이나 동시대 작품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 상세한 역주를 달아 독자가 이 작품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적 산물로서 이해하고 적절한 그림을 그려 볼 수 있게 했다. 더욱이 이탈리아어와 함께 비교문학을 강의하는 그는 보카치오와 단테, 『데카메론』과 『신곡』의 관계에 관한 주석을 풍부하게 제공해 ‘인곡’으로서의 『데카메론』에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또 민음사판 『데카메론』에는 보카치오가 자필 원고에 직접 그린 삽화를 비롯한 여러 판본의 삽화, 『데카메론』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이야기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동시대 화가 보티첼리, 조토, 페셀리노 등의 명화 등을 63점 선별해 수록했다. 비록 『데카메론』은 700여 년 전에 이탈리아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오늘날 페스트와 맞먹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독자들도 공감하며 읽을 만하다. 이제 우리 독자들이 물리적인 거리감 없이 『데카메론』의 참맛을 한국어로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 폐허 위에서 그리는 인간 세상의 생기발랄한 천태만상
1348년 페스트가 만연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팜피네아, 피암메타, 필로메나, 에밀리아, 라우레타, 네이필레, 엘리사 등 지체 높은 젊은 부인 일곱 명과 디오네오, 필로스트라토, 판필로 등 귀족 청년 세 명이 피에솔레 언덕의 아름다운 별장으로 피신한다. 그들은 매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왕이 되어 이야기의 주제를 정한다. 그리고 수난일을 제외한 열흘 동안 고난 끝에 행복을 얻는 이야기, 역경을 이겨 낸 연인의 이야기,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 기발하게 상대를 조롱하는 이야기 등 각 날의 주제에 맞는 이야기 100편을 주고받는다. 이야기가 끝나면 춤과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보름째 되는 날 그들은 각자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보카치오는 유럽 전역에 퍼진 페스트로 부모와 친구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 이듬해부터 사 년 동안 『데카메론』을 집필했다. 그런데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그러한 재앙을 경험한 후에 쓴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대체로 쾌활하고 낙천적이며 성적인 태도나 언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거침이 없다. 죽음의 공포와 혼란 속에 신 중심의 중세적 가치들과 엄숙주의가 무너지는 상황이 오히려 보카치오로 하여금 무력한 이상이나 종교에서 눈을 돌려 생동하는 인간의 삶과 욕망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고매한 이상과 도덕으로 독자를 교화하려 들지 않는다. 중세의 절대적 가치를 상징하는 수도사가 꾀를 써서 부녀자와 정분을 통하고, 하인이 주인을, 아내가 남편을 재기발랄하게 놀려 먹으며 악인이 성자로 둔갑하기도 하지만, 이를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하거나 옮고 그름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화자들의 입을 빌려 이런 이야기들을 전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웃고 즐긴다. 실제로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하기 힘들 만큼 뒤얽혀 있고 보상과 처벌도 공정하게만 이루어지지는 않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 『데카메론』에서는 도덕적·종교적 원칙을 고수하는 인물이 고리타분하게 그려지며 원칙보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모험을 택하는 인물에게 골탕을 먹는 경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성 축일을 지킨다는 구실로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하는 남편을 모른 체하고 자신을 납치한 해적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아내도 있다. 이는 육체적인 부분을 도외시하고 영혼의 구원만을 강조하던 중세적 가치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며, 계급과 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예견하는 것이다.
『데카메론』의 성취는 이전 시대와의 확고한 단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데카메론』의 인물들은 죽고 나서 다가올 저세상을 준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 ‘지금 여기’의 현세에서 맞닥뜨린 난관을 극복하고 성취감과 즐거움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데 골몰한다. 『데카메론』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우리 삶의 풍경을 돌아보게 만든다. (중략) 『데카메론』은 우리에게 결코 궁극의 이상과 전형적 이념을 제시하지 않는다. 『데카메론』에서 우리가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궁극의 이상과 전형적 이념이 부재하는 상태가 우리를 둘러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깨달음이다.(「작품 해설」 중에서)
『데카메론』 속 이야기들은 대부분 가볍고 밝고 재미있다. 속된 말로 화끈하다 할 만큼 무람없고 야한 이야기도 있지만, 민망하거나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고상한 독서 중에는 대개 억누르게 되는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욕망을 유쾌한 웃음으로 분출하게 한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상론을 펼치는 대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의 진면목
최일섭
4.0
르네상스의 정점 중 하나. 페스트가 창궐할 때, 이야기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금기를 넘었다. <신곡>의 뒷면인 <인곡>은 속어로 세속을 묘사하여 신화를 인화로 만들었고, 이로써 근대소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구본철
3.5
학교는 안나가지만 오히려 더 바쁜 요즘이다. 영어, 일본어 공부에 열심이라, 점차점차 실력이 느는것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다. 기분 좋다. 반대로 책과 영화에 쓸 시간이 적어져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이 들면서도 찜찜하다. 하필 읽고 있었던 이 책 ‘데카메론’이 꽤 분량이 있어 완독에 시간도 걸렸고... ‘캔터베리 이야기’가 많이 생각이 났다. 중세는 장편보다는 단편모음집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돈키호테도 하나의 중심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의 역량부족? 이라기보다는 중세라는 시대가 장편소설과 안맞아서 그런가싶다. 그리고 굉장히 천박한데, 불륜은 기본, 남색에 스와핑에 어우. 캔터베리는 ‘이렇게 살지 마라!’라고 썼다고 해도 데카메론은 그런 의도도 없어서 그런가 더 막나간다. 뭐 아무튼 재미는 있었다 ㅋㅋㅋㅋ
박경수
3.0
중딩시절 사회 시간에 르네상스 챕터를 배우면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을 처음 접했다. 당시 나는 지적허영심이 천장을 뚫었던 시절이라 이걸 외워서 아는척 하면 왠지 멋있겠다 싶어서 작가 이름과 책 이름을 달달 외웠었다. (17년동안 한번도 누군가에게 아는척 할 기회가 없었다는 슬픈 사실.) 웃긴건 책 이름, 배경만 알았지 어떤 구성인지 뭔 내용인지는 전혀 모른 상태로 17 년을 지냈는데 마침 코로나 기간이고 문득 내용이 궁금해져 읽게 됐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데카메론은 굉장히 어려운 철학 서적일것이다. 라는 추측만 했음) 총3편중 이제 막 1편을 다 읽었 는데 다행스럽게도(?) 철학 서적은 아니었고 그냥 남녀가 모여서 흑사병기간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서로가 들은 인생 썰을 각자가 호스트가 돼서 사람들에게 푸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튼 역시 모임은 남/녀 혼성 모임이 제일 재밌고 그 모임에서도 두루 앉아서 썰푸는게 제일이라는 걸 새삼 깨닿게 해줬다. 누군가는 야설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정도는 아닌것 같다. 물론 간간히 야한 썰을 푸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책 전체가 왜 야설로 치부될까? 싶다. (물론 1300년대를 감안 했을땐 야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좋았던 썰 보단 별로였던 썰이 많았던 1편.
소담
4.0
죽음의 문턱에서 한가하게도 가십거리나 주고 받는 귀족들의 아이러니. 욕망, 욕정, 인간.
르네상스형뮤지션
3.0
흑사병 시대를 지냈기에 더욱 도드라졌을 생에 대한 찬미와 종교 조롱, 성에 대한 관대함. 보카치오가 극찬했던 ‘신곡’에 빗대 데카메론을 사람人의 이야기인 ‘인곡’이라 칭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세계사 시간에도 외웠던 유명한 저자와 도서명이지만 의외로 통속적이고 심플하며 밍밍했다. 은유나 수사법은 재밌는데 큰 기둥인 이야기 서사가 뻔해서 아쉽. 반복되는 경향도 있어서 ‘네 번째 날’ 읽다가 포기. 스토리가 넘치는 현대와 달리 14세기에 이 책은 야하고 참기 힘들 정도로 재밌었겠지. 아쉬움을 달래거나, 혹은 반대로 감동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미장센이 훌륭한(연기 연출은 엉망이지만)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1971년 작 <데카메론>과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코리올라누스
4.0
근대적 사고의 개문이라고 한 데카메론의 사상은 여전히 현대적이고 그 뒤에도 다시 현대적일 것이다. 그 많은 이야기와 좋고 나쁘고 부당하고 정당한 말들을 보고, 현세는 근대는 될지언정 현대는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4.5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께 그 많은 불경을 저질렀는데 죽어 가는 마당에 또 다른 불경을 좀 더 저지른들 그다지 나쁘지도 않소. 데카메론 1 (55) 재산이 감게 한 눈을 가난이 뜨게 했지요. 데카메론 1 (156) 하지만 시장님께서도 아실 줄 믿습니다만, 무릇 남자와 여자는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합니다. 법은 법을 적용받는 사람들의 동의 위에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적용받는 이 법은 불쌍한 여자들, 남자들보다 자기 몸을 훨씬 더 자유롭게 허락할 줄 아는 여자들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법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 여자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의견을 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데카메론 2 (327) 다만 우정의 매듭은 혈연이나 친척 관계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지만 친척은 운명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카메론 3 (359) 교회가 다른 세계를 약속하고 이념이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하며 도덕은 그런 다른 세계와 미래로 등을 떠미는 패권적 권력을 낳는다면, 데카메론은 그들이 하나같이 추구하는 이상론의 너울을 벗어던지고 그들이 가린 주변부의 삶의 진실한 모습들을 들춰내 보여준다. 그래서 데카메론이 제시하는 다른 세계는 약속된 것이기보다는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삶의 우연한 것들이며, 데카메론이 제시하는 다른 미래는 다가온다고 약속만 하는 꿈의 대상이기보다는 우리가 돌아보면 보이는 현재의 이면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데카메론 3, 작품 해설 중 (447)
천유정
4.5
위대한 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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