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일본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기념비적인 작품
폐허가 된 러브호텔,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주변의 인간 군상을 그려냈는데 각 인물의 소소함, 허망함, 우스꽝스러움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호텔 로열』을 읽노라면 인간을 묘사하는 데 오래된 것, 새로운 것이란 없다, 근원을 그려내면 된다는 당연한 일을 새삼 깨닫게 된다. _하야시 마리코
찬찬히 읽어보면 등장인물들은 필사적으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원하고 있다. 거기에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어둡기만 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 특히 이 문장력,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묘사하면서 군데군데 눈이 휘둥그레지게 하는 선명한 표현이 보인다. 폐허가 된 호텔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그 호텔의 출발점을 그려내는 구성도 매우 재미있는 취향이지만, 각 이야기가 서로 미묘하게 얽혀 드는 구성 또한 재미있다. _아토다 다카시
구제되어야 할 사회의 구조적 결함으로서의 ‘빈곤’이 아니라, 수치화할 수도 없으나 많은 사람이 실감하고 결코 피하기만 하지는 않았던 ‘생활고’. 『호텔 로열』은 그것을 그려내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작품이다. _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미나토 가나에, 하라다 마하, 이토 준, 미야우치 유스케라는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2013년 제14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2013)이 양윤옥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사쿠라기 시노는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일본에서는 올요미모노신인상, 시마세연애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 마쓰모토세이초상, 오야부하루히코상, 나오키상 후보에도 오른, 평단과 독자로부터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다. 등단한 지 이제 12년, 열세 권의 단행본을 선보이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호텔 로열』은 나오키상 수상 이후 한 달 동안에만 무려 40만 부가 팔리는 등 그녀의 작품들은 침체된 일본 문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호텔 로열』은 홋카이도 동부 구시로 시의 습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러브호텔―‘호텔 로열’을 무대로 한 일곱 편의 연작소설집이다. 변두리의 러브호텔을 무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쿠라기 시노는 “현실에서 무대 뒤를 볼 수 있는 세계였기 때문에”라고 말하는데, 그녀 자신이 홋카이도 구시로 시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녀의 아버지가 구시로 시내에서 ‘호텔 로열’이란 러브호텔을 경영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주거를 해결했으므로 집에 항상 타인이 드나들어 다양한 인간을 마주할 수 있었던 한편으로, 열다섯 살 때부터 객실 청소 등의 일을 거들면서 “미스터리 소설을 결말부터 읽는 것처럼 느닷없이 남녀의 마지막 종착점을 목격해버렸”고, 그런 경험들이 오랜 세월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텔 로열』은 살아오면서 줄곧 마주하고 싶었던 것을 써 내려간, 그녀 자신의 표현대로 “스스로의 작가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된 특별한 작품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엇 하나 헛된 것이 없구나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나밖에 쓰지 못하는 한 문장이 있다고 믿고 써 내려갔기 때문에……”(나오키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남자든 여자든 몸을 이용해 놀아야만 할 때가 있다―”
성性이 아닌 생生의 금기를 담담히 건드리는 연작소설 일곱 편
어이없을 만큼 암울한 현실에 놀라고, 등장인물을 향해 분개했다. 이윽고 그것이 우리 곁의,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프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울뿐인 윤리관을 뒤엎고 진정한 올바름을 찾아내는 것은 삶의 신산고초를 지그시 버텨낸 이들이었다. 이런 이야기, 사쿠라기 시노, 정말 소설이란 얼마나 멋진 것인가. _옮긴이 양윤옥
『호텔 로열』의 독특한 점은 일곱 개의 이야기가 호텔 로열이 폐허로 변한 현재에서부터 개업하기 전인 40년도 더 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셔터 찬스」는 이미 폐업한 지 오래인 호텔 로열에 누드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온 남녀의 이야기로, 더 이상 좌절하고 싶지 않다는 남자와 그의 카메라 앞에 알몸으로 선 여자의 엇갈림을 그렸다. 「금일 개업」은 가난한 절을 살리기 위해 후원자들에게 봉사해오다가 쾌락에 눈뜨고 만 주지의 아내와 이를 알아차리게 되는 남자로서는 불능인 주지의 이야기로, 여기서는 이미 폐허인 호텔 로열의 사장이 세상을 떠나 아무도 수습해 가지 않는 유골이 된 모습이 그려진다. 「쎅꾼」은 호텔 로열이 폐업하는 날, 객실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일은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 여기며 청춘을 아버지의 꿈인 호텔 로열에 다 바친 여자와 시청 공무원이었다가 상사 아내와의 불륜에 빠져 결국 성인용품을 팔게 된 남자가 처음으로 손님으로서 호텔 로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거품 목욕」에서는 허무하게 꺼져버린 거품 경기로 인해 가계 불황에 허덕이는 중년 부부가 그려지는데, 그들은 우연찮게 생긴 5천 엔으로 호텔 로열에서 거품 같은 두 시간의 추억을 가지게 된다. 「쌤」은 잉꼬부부를 연기하던 부모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여고생과 아내의 외도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그 현장을 목격하고 만 고교 교사의 이야기로, 이들과 호텔 로열의 인연은 그 전의 단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별을 보고 있었어」는 남편이 다리를 다쳐 일을 하지 않아도, 아이 셋이 모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아도, 평생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몸을 움직여 쉴 새 없이 일해온 호텔 로열 청소부의 기막힌 이야기이다. 「선물」은 호텔 로열이 탄생할 무렵의 이야기이며, 꿈이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아내도 자식도 버린 채 임신한 첩과 호텔 로열을 개업할 꿈에 부푼 남자가 그려진다.
요컨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었더라면 평범했을 이야기가 호텔 로열이 폐허가 된 모습, 폐업할 즈음의 모습, 영업 당시의 모습, 개업하기 전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상실감과 무상함을 압도적으로 느끼게 한다. 앞의 단편들에서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스치듯 지나갔던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였구나 하는 연결 고리를 더듬어가는 한편으로, 한 장소에서 어떤 드라마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마지막 단편 「선물」에서 이제부터 행복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는 호텔 로열 사장을 마주했을 때 독자는 이미 그곳의 운명을 알고 있다. 지금은 쇠퇴하여 폐업하고 말았지만 개업 전에는 나름의 꿈이 있었던 호텔 로열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무대가 러브호텔이고 성性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로 인해 선뜻 읽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이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로서의 비애를 그렸을 뿐 전편에 흐르는 어조는 담담하다. 홋카이도라는 북극北國의 풍경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나, 홋카이도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도 그곳의 독특한 분위기가 전해지며, 차갑고 척박한 땅은 고스란히 등장인물들의 마음으로 옮아가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며 호텔 로열로 찾아드는 남녀의 폐색감, 공허함, 고독과 잘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