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어판 정본 번역을 통해 우리말로 소개되는 현대 영화계의 경전!
‘영화감독들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기록한 영혼의 고백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과거와 현재, 대과거를 임의대로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회고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모든 작품들이 여기서 비롯되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힘을 합쳐 엮어 낸 한 사람의 생애가 이 회고록을 완성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와 관련한 많은 내용들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 베리만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카린’은 그의 예술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영화 「마술사」와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거듭 나타나는 ‘환등기’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는 소소한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다수의 아내와 다수의 애인, 그의 배우들, 동료들……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지닌 특유의 냉소와 번민, 정직한 욕망 등이 어떻게 그에게 작동되어 왔는지를 짐작하는 과정은 매우 짜릿하다. 책은 말미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와 현재를 잦게 넘나든다. 그것들이 실재하는 그의 기억인지, 꿈인지 모호한 구간도 있다. 그래서 독서를 마칠 즈음이면 마치 책 한 권이 스스로 태어나서 죽음에 다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베리만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들이 부드러워지면서 그리움과 아쉬움에 도달할 때는 눈물이 난다. 그러고 나면 그의 작품들을 다시 찾아볼 수밖에 없다. 한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지만 무한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세기의 위대한 거장, 잉마르 베리만. -이경미(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환등기』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폭로하였다.” -《뉴욕 타임스》
“『환등기』는 베리만의 영화처럼 그의 내밀한 통찰력으로 넘쳐 나는 작품이다.” -《뉴 리퍼블릭》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환등기』는 한 시대의 예술적 의식을 대변하는 심오한 고백이다.” -《르 몽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잉마르 베리만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예술가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은 늘 나에게 신비로운 경이와 영감을 선사한다.” -프랑수아 트뤼포
“잉마르 베리만은 인간의 무의식과 심연을 제대로 통찰할 줄 알았던 희귀한 영화감독이다.” -데이비드 린치
세계 주요 영화제를 석권하고,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히며, 스탠리 큐브릭, 장뤼크 고다르, 마틴 스코세이지, 데이비드 린치, 우디 앨런, 라스 폰 트리에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감독에게도 커다란 영감을 주고 현저한 영향을 끼친 ‘영화감독들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자서전, 『환등기』가 마침내 스웨덴어판 정본 번역을 통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잉마르 베리만은 「제7의 봉인」과 「산딸기」, 「페르소나」와 「화니와 알렉산더」에 이르기까지 이미 고전을 넘어 전설이 된 수많은 작품을 연출한 스웨덴의 영화감독이다. 심오하고 상징적이며 대담할 정도로 실험적인 그의 작품들은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관객은 물론, 전 세계 영화계 인사들에게도 경이와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렇다면 20세기의 영화 문법을 혁신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잉마르 베리만의 예술적 원천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고, 또 그의 삶과 작품 이면엔 과연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만년에 이른 잉마르 베리만은 한평생 쥐고 있던 메가폰을 내려놓고 은막에서 물러나,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스웨덴의 작은 섬, 포뢰에 정착한다. 비록 영화계를 떠났음에도 그의 창작욕은 여전히 이글거렸고, 이번에는 필름이 아닌 종이 위에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이기로 마음먹는다. 베리만은 친한 출판사 인사에게 이제 ‘자서전’을 쓰겠노라 선언하고, (한평생 글재주가 없다고 이야기해 왔음에도) 무려 900쪽을 넘어서는 방대한 분량의 ‘초고’를 완성해 낸다. 그리고 구구절절한 촬영물을 편집하듯 여러 부분을 잘라 내고 이어 붙인 끝에, 비로소 우리가 아는 『환등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영화계 거장의 ‘자서전’ 속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방법, 엄청난 찬사와 성공에 대한 기억, 훌륭한 영화감독이 갖춰야 할 미덕? 그러나 『환등기』엔 으레 ‘자서전’이라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열거되어 있을 법한 내용이 거의 없다. 물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자기 자랑이 아주 조금씩, 이곳저곳에 산재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생을 돌아보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변죽일 따름이다.
잉마르베리만재단의 대표, 얀 홀름베리의 「해설」에서 엿볼 수 있듯이, 『환등기』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시간의 흐름마저 무시한 채 과거와 현재를 소란스럽게 오가는, 인생이라는 주제의 한바탕 잔치다. 목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잉마르 베리만의 어린 삶은, 서슴없이 매질할 만큼 엄한 아버지와 (회피적인 성격을 지닌) 목사의 아내라는 과중한 지위에 짓눌려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죽이고 싶을 정도로 얄밉지만 그만큼 가엾은 형과 누이, 그를 성숙한 인격으로 이끌어 준 할머니, 짓궂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성년으로 나아간다. 뒤이어 베리만은 성적으로 각성한 계기와 스트린드베리에 대한 열렬한 숭배, 연극판에서 벌어진 온갖 푸닥거리를 들려주다가 돌연 자신의 외도, 결혼의 파탄, 경제적 곤궁, 심지어 (어린 시절에 교환 학생 자격으로 방문했을 뿐이지만) 과장스러울 만큼 고해적인 나치 독일에 매료되었던 사건 등을 거침없이 쏟아 낸다. 또한 극장 대표로서 겪은 고충과 탈세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잠자코 지내야 했던 울분의 나날들 역시 현장감 넘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현실적인 일화들이 불쑥 나타나는 와중에, 베리만의 기억은 영화 제작이라는 과업과 맞물리며 끊임없이 요동친다. 첫 사랑, 첫경험, 전쟁, 사랑의 도피, 아버지와 호숫가에서 미역을 감던 일, 어머니의 쓸쓸한 뒷모습, 바보 삼촌의 천진한 모습과 황망한 죽음, 여름휴가, 빛으로 일렁이던 파도. 그리하여 마침내 베리만은 예술가의 운명을 직감한 최초의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바로, 애당초 형이 선물받았지만 꾀를 부려 겨우 얻어 낸 ‘환등기’의 마술 같은 영상을 도화지 같은 벽면에 처음 비춰 보았던 그날의 기억, 기계의 온기, 장롱의 냄새 속으로 말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잉마르 베리만이 이 자서전을 통해 통찰하였듯, 꿈같은 이미지의 축제, 환등기처럼 아름답게 돌고 도는 영화인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흥미로운 일화들이 여럿 담겨 있다. 세계적인 스타, 잉그리드 버그만과 「가을소나타」를 촬영하던 도중에 따귀를 얻어맞은 일, 할리우드의 화려하지만 공허한 영화계에 질려 버린 일, 「페르소나」의 촬영 장소를 섭외할 적에 (적은 예산 탓에) 애먹은 일, 리브 울만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일, 카라얀의 놀라운 예술혼과 명배우 로런스 올리비에의 몽니,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미모, 지난 시대의 영화와 연극에 관한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평가, 그리고 자신의 오판과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실패들.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이렇듯 범상하지 않은 트리비아가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사실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진실로 엮어 낸 이 거대한 인물의 일생, 즉 『환등기』를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깨달음과, 그간 잊고 지내 온 추억의 부활을 선사해 줄 터다. 이 독서가 마법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 마법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