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우리 집에 옮겨다 놨으면 좋겠어.”
전시된 아름다움, ‘쇼룸’을 향한 프랜차이즈형 욕망
소비와 주거, 그리고 삶을 잇는 조립식 상상
2014년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장편소설 『청춘 파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의경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등단작 『청춘 파산』을 통해 김의경은 관념이 아닌 실재로서의 신용불량자, 파산자를 그려내며 한국문학에 낯설고 새로운 서사를 선사했다. 그리고 4년 후, 첫 번째 소설집 『쇼룸』을 통해 물건으로 설명되는 인간의 삶,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발적이고 성실하게 소비의 노예가 되어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묘파한다. 계란절단기나 레몬즙짜개, 크노파르프 소파와 헬머 서랍장, 이케아와 다이소, 고시원과 전세 보증금으로 확인 가능한 얇고 슬픈 정체성. 소설집의 제목인 『쇼룸』은 빛나는 대상을 향해 소설 속 인물들이 지니는 투명한 욕망을 아우른다. 그러나 작가가 ‘쇼룸’이라고 발음할 때 그 목소리는 전시된 공간의 허황됨에 대해 계몽하지도, 쾌적하고 합리적인 공간에 대해 찬사를 보내지도 않는다. 다만 집중하는 것은 착시에서 발생하는 틈이다. 가지고 싶고,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가지지 못하는 상태. 김의경은 그 괴리에서 피어나는 불안과 비의를 묵묵히 담아낸다.
■이케아 가구도 마음껏 사지 못하는: 위축된 청춘
“이 정도 예산으로 빈티나지 않게 집을 꾸밀 수 있는 가구는 이케아밖에는 없었다.”
―「이케아 소파 바꾸기」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조립식 가구’의 대표적 브랜드 이케아는 김의경의 소설집 『쇼룸』에서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쇼룸』 속 등장인물들의 소비는 더 높은 가격대의 고급 가구 브랜드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케아 단계에 머무른다. 그러나 머무르는 이들의 양상이 전부 비슷한 것은 아니다. 김의경이 그리는 이십 대, 청춘은 이케아 피플 중에서도 위축되어 있다. 수록작 「이케아 룸」의 ‘소희’는 열여덟 살 연상의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또래 남자를 사귀는 친구들이 선물로 “목도리나 싸구려 목걸이”를 받을 때 자신은 “해외여행 혹은 오피스텔”을 받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오빠’와의 관계를 정당화하지만 그 관계에서 선물이 아닌 바로 자신이 “싸구려”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오빠가 마련해 준 공간이 있지만 그곳에서 소희는 오빠의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케아 소파 바꾸기」의 사라, 미진, 예주는 ‘가장 싼 것’을 찾아 이케아를 헤맨다. 그들은 199,000원짜리 소파를 사지 못하고 90,000원짜리를 산다. 14,900원짜리 스탠드를 내려놓고 5,000원짜리를 담는다. 자본은 없고 시간뿐이므로, 그들의 존재증명은 기다림과 최저가 상품으로만 가능하다. 작가에게 이케아는 청춘이 지닌 애매하고 불안한 공기까지 포착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생필품을 사는 순간에만 잠시 함께인: 파산한 부부
“더 이상 쇼핑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쯤 우리의 지난한 연애도 막을 내렸다.”
―「물건들」에서
김의경의 ‘두 사람’들은 로맨틱하기보다 이코노믹하다. 소비의 규모와 경제적 가능성이 그들의 관계를 좌우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한다. 「물건들」의 연인은 결혼식과 혼인 신고를 생략하고 동거를 한다. 「세븐 어 클락」의 부부는 파산 이후 집 안에 오래 놓고 쓸 가구를 일절 들이지 않는다. 작가 부부가 등장하는 「쇼케이스」에서 남편인 태환은 아내인 희영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자신은 글쓰기를 미루고 정육점에서 일하며, 그들은 결혼식과 출산을 무기한 연기한다. 결혼식, 출산, 내 집 마련 등 구매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멀어지게 하고, 아주 작지만 가능한 소비는 그들을 가까워지게 한다. 「쇼케이스」와 「세븐 어 클락」의 부부는 몇 년 만에 필요한 가구를 사기 위해 이케아에 간다. 함께 가구를 고르는 순간만큼은 서로를 부부라고 인식한다. 삶에 대해, 옆에 선 타인에 대해 증오과 권태와 연민이 뒤섞인 채로 그들은 헤어지지 않고 살아간다. 그들이 함께 본 반짝이는 쇼룸은 삶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착시이고 삶의 고단함을 잊게 만드는 마취일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며 버텨내는 게 삶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안다. 이제 이 현실적인 작가가 사용한 판타지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전시된 쇼룸을 넘어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품 소개
▶물건들
‘나’는 습관적으로 다이소에 간다. 반려동물 용품부터 우드 버터나이프, 와인 잔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그곳에서 ‘영완’을 만나고 그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들은 월급날에는 꼭 다이소에 들러 쇼핑을 하면서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초대를 받아 간 영완의 친구 집에서 그들이 낳은 아기를 본 이후로 ‘나’는 다이소에서 산 물건들로 집을 꾸리는 일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 삶이 더 진짜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아이를 낳고 싶은 ‘나’와 현재로선 무리라는 영완의 갈등은 깊어진다.
▶세븐 어 클락
저녁 7시는 택배상하차 일을 하는 남편이 출근하는 시간,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가 퇴근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기점으로 둘은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나’와 ‘남편’은 몇 년 전 사업이 망하고 채권자를 피해 도망 이사를 하며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이미 이혼을 결정했으나 돈이 없어 1년간만 한집에 살기로 한다. 별거보다 못한 동거를 하던 부부는 이케아가 개장하는 날, 이사 온 지 몇 달 만에 함께 소파베드를 사기 위해 함께 쇼핑을 하기로 하는데…….
▶이케아 소파 바꾸기
대학 동기인 사라, 미진, 예주는 하우스 셰어를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 셰어하우스를 채우기 위해 함께 이케아에 왔다. 미진은 대기업 인턴, 사라와 예주는 카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어 그들의 예산은 어떤 가구에든 ‘최저가’여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포기를 학습한 스물다섯은 중얼거린다. “서른 살이 정말 오려나.” 미로 같기도 하고,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개미지옥 같기도 한 이케아에 머물며 셋은 애매하고 지겹게 유예된 각자의 청춘에 대해 생각한다.
▶쇼케이스
‘희영’과 ‘태환’은 작가 부부다. 함께 산 지 7년에 접어들었지만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희영이 결혼식 대신 원한 것은 ‘글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태환은 그 말을 들어 주기 위해 자신의 글쓰기를 미루고 정형 기술을 배우며 정육점에서 일한다. 그렇게 일하면 ‘5년 안에 집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이케아에 가구를 사러 간 날, 희영은 태환을 위한 깜짝 선물로 집 안 분위기를 바꿔 줄 조명을 사 와 달아 보지만 쇼룸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환한 조명은 집의 낡고 지저분한 모습을 부각시킬 뿐이다. 5년 후 그들은 샹들리에 조명이 잘 어울리는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이케아 룸
대학생인 ‘소희’는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회사의 부장인 열여덟 살 연상의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그는 소희에게 과제를 하고 학교를 편히 다닐, 그리고 밖에서 남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그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인 오피스텔 원룸을 선물한 참이다. 이케아 개점일에 둘은 그 공간을 채울 가구를 보러 이케아에 왔다. 완벽한 신혼집처럼 꾸며진 쇼룸의 침대에 눕고 식탁에 앉아 보는 등 오랜만에 연인다운 즐거움을 누리지만, 우연히 이케아에서 근무하는 ‘오빠’의 지인을 본 후로 다잡고 있던 소희의 마음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계약 동거
60대 중반의 ‘영순’은 남편과 사별하고 주민센터 영문학 교실에서 가까워진 ‘김 박사’에게 청혼을 받는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내내 어둡고 웅크린 듯하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끼지만, 재혼을 결정하기까지 걸리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