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당대 가장 중요한 미국 시인 가운데 하나!” ―마거릿 애트우드(맨부커상 수상 작가) “신은 앤 섹스턴을 사랑한다!” ―커트 보니것(『제5도살장』의 작가) ● ‘퓰리처상’을 받은 성공한 교수이자,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홀린 마녀” 20세기 미국 대표 시인 앤 섹스턴의 시선집 『밤엔 더 용감하지』가 ‘세계시인선’ 28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의 대표작 여섯 권 중에서 특히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예순여덟 편을 모았다. 미국 시문학사에서 앤 섹스턴은 실비아 플라스 등과 더불어 ‘고백시파(Confessional Poetry)’에 속하며, 에이드리언 리치 등과 더불어 여성의 이야기를 대범하게 그린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67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인기 시인으로서, 하버드대학교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파이베타카파클럽’의 최초 여성 명예회원이며, 보스턴대학교에서 정교수로 문학을 가르친 성공한 작가다. 그러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모델 경력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에 작가적 재능까지 갖추었지만, 평생 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앤 섹스턴의 시가 아직도 매력을 발산하는 힘은 이처럼 “고통과 고혹이 동시에 공존하는” 데에 있다. 안정과 소외, 자유와 불안, 갈망과 상실 사이에서 오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을 그 누구보다도 몸소 체험하고 과감하게 표현해 냈다. 이 점이 당대 작가로서 성공한 요인이면서, 동시에 지금 한국 독자에게도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유가 된다. 나는 홀린 마녀, 밖으로 싸돌아다녔지, 검은 대기에 출몰하고, 밤엔 더 용감하지. 악마를 꿈꾸며 나는 평범한 집들 너머로 휙휙 불빛들을 타고 다니지. 외로운 존재, 손가락은 열두 개, 정신 나간, 그런 여자는 여자도 아니겠지, 분명. 나는 그런 여자 과야. 숲속에서 나는 따뜻한 동굴들을 발견했고 동굴을 프라이팬, 큰 포크들과 선반들, 벽장, 실크, 셀 수 없는 물건들로 채웠지. 벌레와 요정들에게 저녁을 차려 주고, 훌쩍이며, 어질러진 걸 다시 정리했지. 그런 여자는 이해받지 못해. 나는 그런 여자 과야. ―앤 섹스턴, 「그런 여자 과(科)」, 『밤엔 더 용감하지』에서 시인은 자유롭기 때문에 이해받지 못하지만 평범한 삶에서 일탈해도 사회가 요구하는 옷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하는 죄책감과 자괴감 사이에서 분열을 겪는 자아를 ‘홀린 마녀’로 표현한다. 정은귀 영문학자는 시인의 ‘마녀’ 상징에 대하여, “마녀는 미국 역사의 가장 심란한 부채의식을 자극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 ‘시’는 시대의 감옥을 깨부수는 무기다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유럽 사회는 개성이 빛을 발하는 모더니즘이 꽃을 피웠고, 미국도 20세기 초에는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참전이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자, 1950년대 미국에서는 정치적으로는 매카시즘 열풍이,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주도권을 휘두르며 획일적인 가치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백인 남녀가 결혼해서 교외의 번듯한 집에서 아이 둘을 기르는 가정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러한 중산층 신화는 여성에게 보수적인 어머니상을 강요했고, 그래서 획일적인 가치관에 순응하지 못하는 여성은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떤 여자들은 집과 결혼한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피부다. 그것은 심장, 입, 간, 그리고 똥을 갖고 있다. 벽은 영구적이며 분홍빛. 보아라, 그녀가 종일 무릎을 꿇고 앉아 어찌나 성실히 자신을 씻어 내리는지. 남자들은 웅크린 요나처럼 완력으로 그들의 풍만한 어머니들 속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여자의 어머니이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앤 섹스턴, 「가정주부」, 『밤엔 더 용감하지』에서 앤 섹스턴에게 시는 바로 이러한 시대가 만든 감옥에 저항하는 무기였다. 재능 있고 예민한 영혼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아와 시대와 불화하는 자아 사이에서 여러 얼굴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와 엄마와 딸로서 헌신하려는 책임감과 사회적으로나 여성으로서나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신의 한계에 좌절하기도 한다. 앤 섹스턴의 목소리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괴리 속에서 방황하는 시적 자아이지만, 이는 끊임없이 욕망과 한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헤매는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시대와 장소는 바뀌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사회적 한계와 개인의 꿈 사이에서 열병을 앓고 있다. 그러면 숲은 하얗게 되었고 내 밤의 마음은 그런 이상한 사건들, 아무도 듣지 못한 비현실적인 일들을 보았지요. 그리고 두 눈을 뜨면, 나는 그 사회가 경멸하는 내 안의 표정을 응시하는 게 두렵기만 해서, 지금도 나는 이 숲속에서 찾고 있지요. 하지만 포도와 가시 사이에 꼭 박혀 버린 나 자신보다 더 끔찍한 건 여태 만나지 못했어요. ―앤 섹스턴, 「친절님: 이 숲들은요」, 『밤엔 더 용감하지』에서 ● ‘시’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글쓰기다 앤 섹스턴이 이러한 미국 부르주아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대표적 희생자이지만, 글쓰기로 저항함으로써 창조적인 삶을 모색했다. 시인은 “모조 테이블, 평평한 지붕, 커다란 현관문이 딸린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런 삶은 “영혼의 위증죄”이고 “노골적인 거짓말”임을 고백한다. 그러한 자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속되는 그 삶을 극복하기 위해 시인은 “작은 독약을 매일 향유처럼” 바르고, 동시에 “내 타지기는 글을” 쓴다. 뭐가 현실이지? 나는 석고 인형.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에게나, 씩 웃는 사람에게나 상륙도, 일몰도 없이 절개된 눈으로 포즈를 취하지, 뜨고, 또 감는 푸른색 철제 눈으로. 나는 얼추 나인가, 메그닌백화점이 이식된 건가? 나는 머리카락, 검은 천사, 빗질할 검은-천사-뭐 그런 거, 나일론 다리, 빛 발하는 팔, 광고에 나온 옷가지를 가지고 있지. (…) 이 인조 인형에게 뭐가 현실일까, 웃어야 하고 옷을 바꿔 입어야 하고, 건전한 무질서 속에서 문들을 확 열어젖혀도 파멸이나 두려운 티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인형에게 말이지? 하지만 내가 만약 우는 법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내게 만약 눈물이 있다면, 한때 내 어머니였던 그 벽에 붙박여서 나는 울어 버릴 텐데. ―앤 섹스턴, 「1958년의 자신」, 『밤엔 더 용감하지』에서 동료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먼저 죽음을 택했을 때는 “내가 그리 절실하게 오래도록 소원한/ 죽음 속으로 너 혼자서 기어들어 간” 것에 대한 한탄을 시로 표현한다. 앤 섹스턴이 삶을 이어갈 수 힘은 시에서 나온다. “말을 다루는 일이 나를 깨어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밤새도록 “긴 상자에 시들을” 눕힌다. 그래서 정은귀 영문학자는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는 건, 시인의 용감함과 그 용감함 뒤에 드리운 불안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나의 일은 단어들. 단어들은 상표 같아요, 아님, 동전 같기도, 더 쳐주자면, 벌 떼 같기도 해요. 고백하자면 오직 사물의 원천만이 나를 깨부술 수 있어요. 마치 단어들이 노란 눈과 말라 버린 날개에서 해방되어 다락에서 죽어간 벌처럼 헤아려지듯. 나는 늘 잊어야만 하지요, 어떻게 하나의 단어가 다른 단어를 고를 수 있는지, 하여 마침내<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