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고대~근대 편

마이크 레스닉님 외 10명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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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히틀러가 그림을 팔 수 있었다면 오늘날의 세계가 바뀌었을까? 만약 타이타닉 호에 쌍안경 열쇠가 있었더라면? 나폴레옹을 퇴위시켜버린 미셸 네의 착각은? 레닌이 오래 살았더라면 스탈린을 막을 수 있었을까? 200억 명의 신앙을 바꾼 헨리 8세의 이혼 이야기는? 콜럼버스가 1마일을 헷갈린 실수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선택은 어떻게 역사를 바꿨을까? 마라톤전투를 촉발한 사소한 오해는 무엇이었을까? 굴욕의 역사를 유머스러운 필치로 집대성한 흑역사의 바이블. 인간의 부끄러운 반쪽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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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흑역사 여행을 시작하며 흑역사 1: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에 오해가 불러온 참극 흑역사 2~3: 조국에 등을 돌린 알키비아데스와 니키아스의 우유부단함 흑역사 4: 왜 다리우스 황제는 25만의 군사를 두고 도망쳤을까? 흑역사 5: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알렉산드로스의 선택 흑역사 6: 원로원은 왜 독재관 카이사르를 한 달 만에 암살했을까? 흑역사 7: 로마제국 최대의 패배를 이끌어 낸 게르만 인 아르미니우스 흑역사 8: 작은 전투에 뛰어들어 죽음을 자초한 황제 율리아누스 흑역사 9: 고트 족을 적으로 만든 로마의 탐관오리들 흑역사 10: 앵글로색슨 왕조를 무너뜨린 해럴드 왕의 조급증 흑역사 11: 비잔틴제국의 운명을 결정한 하룻밤의 전투 흑역사 12: 리처드 왕이 적지에 요란을 떨면서 잠입한 대가 흑역사 13: 만약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복했다면? 흑역사 14; 콜럼버스가 1마일을 헷갈린 결과 흑역사 15: 스페인과의 전쟁 호기를 날려 버린 아즈텍의 황제 흑역사 16: 200억 명의 신앙을 바꾼 헨리 8세의 이혼 흑역사 17: 일본 바깥으로 눈을 돌린 히데요시의 패착 흑역사 18: 발트 해 정복에 실패한 광기왕 칼 12세 흑역사 19: 식민지 국민들의 감정에 불을 질러 버린 조지 3세 흑역사 20: 외교 사절단을 군대로 착각하고 궤멸한 조지 워싱턴 흑역사 21~22: 영국 해군의 무패 신화를 망쳐 버린 제독들 흑역사 23: 탈출의 순간에도 화려한 마차를 고집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흑역사 24: 의사들이 ‘과잉’ 치료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조지 워싱턴 흑역사 25: 러시아의 추운 바람에 스러진 유럽 통일의 야망 흑역사 26: 콰트레브라에서 전투에서 미셀 녜 장군이 저지른 두 가지 실수 흑역사 27: 나폴레옹을 퇴위시켜 버린 미셀 녜의 착각 흑역사 28: 남부 연합의 연방 탈퇴가 10년만 빨랐더라면… 흑역사 29: 쇠기름 때문에 인도를 잃다 흑역사 30: 세계 경제를 움직이지 못한 남부 연합의 목화 제한 정책 흑역사 31: 북군의 매클렐런, 위기에 처한 남군의 보비 리를 살려 보내다 흑역사 32: 느림보 미드 장군, 남부의 북버지니아군을 놓치다 흑역사 33: 끝내 흑인 병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남부 연합 흑역사 34: 남부를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존 부스의 링컨 암살 흑역사 35: 러시아, 황금의 땅 알래스카를 헐값에 팔아넘기다 흑역사 36: 유진 시펠린이 들여온 영국산 찌르레기가 북미 생태계를 망치다 흑역사 37: 베네딕투스의 실수가 안전유리를 만들어 내다 흑역사 37: 미국 대선의 훼방꾼들, 제3당 후보들의 역사 흑역사 39~40: 만약 타이타닉 호에 쌍안경 열쇠가 있었더라면 흑역사 41: 오지 않는 유령 군대를 기다린 독일군 흑역사 42: 61만 명의 사상자를 낸 솜 전투의 슬픈 영광 흑역사 43: 아일랜드인들을 순교자로 만든 존 맥스웰 장군의 대응 흑역사 44: 스탈린에게 철저하게 속아 넘어간 레닌 흑역사 45: 아무것도 얻지 못한 미국의 러시아 침공 흑역사 46: 마피아의 전성시대를 만든 금주법 흑역사 47: 레닌이 살아 있었다면 스탈린을 막을 수 있었을까? 흑역사 48: 젊은 히틀러가 그림을 팔지 못한 대가 흑역사 49: 스탈린, 군국주의 독일의 부활을 돕다 흑역사 50: 대통령을 위협하는 권력자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간은 기껏해야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굴욕의 역사를 유머스러운 필치로 집대성한 흑역사의 바이블! 젊은 히틀러가 그림을 팔 수 있었다면 오늘날의 세계가 바뀌었을까? 만약 타이타닉 호에 쌍안경 열쇠가 있었더라면? 나폴레옹을 퇴위시켜버린 미셸 네의 착각은? 레닌이 오래 살았더라면 스탈린을 막을 수 있었을까? 200억 명의 신앙을 바꾼 헨리 8세의 이혼 이야기는? 콜럼버스가 1마일을 헷갈린 실수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선택은 어떻게 역사를 바꿨을까? 마라톤전투를 촉발한 사소한 오해는 무엇이었을까? 굴욕의 역사를 유머스러운 필치로 집대성한 흑역사의 바이블. 인간의 부끄러운 반쪽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알렉산드로스의 선택 정복왕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를 멸망시킨 후에 페르시아의 수도를 점령했고 새로운 제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한집 살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리스인들에게는 페르시아 문화를 받아들이고 페르시아 여인들과 결혼하도록 장려했고 옛 페르시아 제국에는 그리스의 가치들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 주력했다. 수도에서 현안들을 마무리한 후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북방 정벌에 나섰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그런 다음 인도를 향해 동진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번 정복 전쟁 중에 수많은 전투와 포위 작전을 진두지휘했고, 그 바람에 30번도 넘게 부상을 당했다. 잦은 부상에 장사 없듯 결국에는 위대한 정복자도 잦은 부상과 고열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 전쟁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중병을 얻은 뒤였다. 그때가 페르시아를 침략하고 고작 6년이 흐른 뒤였고, 그의 나이 36세였다. 알렉산드로스의 병세가 갈수록 깊어지자 장군들은 그가 없는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군들은 후계자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병석에 누운 황제를 수차례 알현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식이 아들 한 명뿐이었는데, 후궁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는 채 열 살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왕비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어떤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어린 왕자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또 어떤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제국을 통치하고 보존하겠다고 제안했다. 심지어 얼마 후 왕위를 계승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 장군도 일부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특정한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이어받아 제국을 통치할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자신이 깊은 병에 걸려 죽어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평소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보면, 자신조차 그 주장을 정말로 믿었고 스스로를 신이자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에도 한 명을 후계자로 선택해 달라는 장군들의 간청을 묵살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어딘가 미심쩍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알렉산드로스는 특정인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대신에 자신을 둘러싼 장군들을 훑어보면서 왕위를 “가장 강인한 자”에게 물려주겠노라 말했다고 한다. 이유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은 각자 자신이 적법한 후계자라고 생각했고, 결국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제국은 사분오열되어 12명 넘는 통치자들이 나눠 가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자칭 “후계자들” 사이에 끊임없는 내전으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세 개 후계국만 남았다. (그리스를 포함하는) 마케도니아, (아시아 대부분을 포함하는) 셀레우코스 제국, (이집트를 200년 이상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등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19대이자 마지막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의 누이가 바로 카이사르의 연인이자 안토니우스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다. 알렉산드로스가 한때 통일한 제국의 영토는 후계자를 둘러싼 참혹한 전쟁터로 전락했고, 그 전쟁은 수십 년이나 이어졌다. 사자왕 리처드가 요란을 떨면서 적지에 잠입한 대가 노르망디 공작이자 사자의 심장을 가졌다고 해서 사자왕으로 불리던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인 살라딘이 십자군 원정대를 맞아 강공을 펼쳤지만 그들을 완전히 궤멸하지는 못했다. 1192년 살라딘은 십자군을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 몰아냈고, 십자군은 기독교인들이 살던 다수의 성을 탈환했다. 이제 양측 군대 모두 지친 상태인 데다 군자금도 바닥이었다. 그러자 양 통치자인 리처드와 살라딘은 서로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휴전 협정을 맺었다. 양측 모두가 각자 현 상황 그대로를 유지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리처드는 십자군 원정의 목표였던 예루살렘을 끝내 수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승자는 살라딘이었다. 그러나 리처드도 영 빈손은 아니었다. 기독교 순례자들이 예루살렘까지 자유롭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고 보장받은 것이다. 이로써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십자군 맹세를 이행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럴듯한 명분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사자 왕의 귀국길은 가시밭길이 예고됐다. 잉글랜드로 돌아가려면 유럽을 관통해야 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리처드는 고집이 세고 독선적이며 비판적인 데다 요구도 많은 아주 까칠한 인물이었다. 아랫사람들이라면 왕이 그런 성정을 가졌어도 눈감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일국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십자군 전쟁을 치르는 동안 리처드는 특유의 독불장군 같은 성격으로 유럽의 여러 왕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듯했다. 가령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와는 예전에 사이가 좋았지만 결국 우정이 틀어졌고,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공작을 공공연히 모욕해 원수지간이 되었다. 또한 게르만의 속주 대부분을 통치하던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와도 척을 졌는데, 하인리히에게 반기를 든 시칠리아의 왕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먼저 리처드는 왕비를 배편으로 로마의 교황에게 보냈다. 그런 다음 자신도 배를 타고 그리스를 향해 출발했고 아드리아 해 입구에 도달했다. 그곳에서부터는 새로 건조된 세 척의 갤리선을 이용해 이동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리스 서해안의 코르푸 섬에서 그 갤리선들을 얻었다고 한다(아마도 움직임을 더욱 효과적으로 숨기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에서도 사치를 부리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 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 크로아티아 북부 지역인 슬라보니아의 자라에 상륙했다. 이제 육로로 몇백 킬로미터 더 가면 그에게 우호적인 통치자인 사보이 공작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유럽 대륙에 잠입하고 싶은데 왕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야 아주 많지만, 분명 리처드의 방법은 특별나지 싶다. 사실 리처드의 잠입 시도가 실패한 이유 하나는 고급 요리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세상에 어떤 평범한 템플 기사단원이 고급 요리를 요구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당시에는 이국적인 요리였던 구운 닭고기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잠입이 실패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예컨대 몇 안 되던 수행원들이 그를 계속 ‘폐하’라고 부르는 통에 위장이 탄로 났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리처드에게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의 칼을 벼리던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공작의 부하들이 빈 인근에서 리처드를 붙잡았다. 심지어 붙잡힐 당시 그가 사창가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는 리처드를 신성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6세에게 팔아넘겼다. 이렇게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는 게르만 민족의 엄격한 감시를 받는 포로로 참담한 수모를 당했다. 게다가 그를 감금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마침내는 잉글랜드가 국왕을 석방시키기 위해 두 명의 수도원장을 파견해서 그의 몸값을 협상했다. 붉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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