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문화인류학자가 그려낸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콩고의 판타지 10년 만에 다시 주목하는 세계문학의 천재, 매혹적인 일루셔니스트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에스파냐 문단의 대표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주인공 토머스 톰슨이 대필하는 살인 용의자 마커스 가비의 아프리카 콩고 여정을 담았다. 부를 향한 집념과 약자에 대한 지배욕 등 인간의 갖가지 욕망이 쏟아져 나오고 땅속 괴물까지 올라오는 콩고의 이야기와, 그 욕망이 전이되어 참을 수 없는 갈망에 시달리는 토머스 톰슨과 그 주변 세계 묘사를 통해 이 세상의 하부구조와 그 실체를 추적하고자 했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피뇰의 직업은 그의 서사를 몹시 매혹적이게 만든다.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촘촘하게 짜인 서사 위에 환상적인(illusional) 소재가 가미된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현실이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에는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야말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는 피뇰의 믿음이 담겨 있다. 이토록 환상적인 피뇰의 작품 세계는 러브크래프트, 쥘 베른, 웰스 등 고전 장르의 대가들에 비견되는 동시에, 독창적이고 고유한 자기만의 장르를 개척한 ‘전혀 다른’ 작가라는 평을 받게 했다. 2009년 국내 첫 출간 이후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선보이게 된 『콩고의 판도라(Pandora al Congo)』는 『차가운 피부(La Pell Freda)』의 뒤를 잇는 피뇰의 ‘괴물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15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했다. ‘오호 비평상(el Premio Ojo Critico)’ 문학 부문상을 수상하고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작 『차가운 피부』가 인간과 바다괴물의 사투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땅속 괴물’과의 사투다. 독자들을 능히 매혹시킬 마력을 지닌, 가장 환상적이면서도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인 콩고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 펼쳐진다. 욕망의 지하로 파고드는 여정,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콩고의 이야기 1914년 영국 런던, 가난한 대필 작가이자 작가 지망생 토머스 톰슨은 어느 날 변호사 노튼에게 이상한 일을 의뢰받는다. 바로 아프리카 콩고에서 귀족 두 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마커스 가비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것. 불우하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마커스는 장성하여 대영제국의 귀족 크레이버 가문의 하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크레이버 공작의 아들이자 악한의 전형(典型) 격인 윌리엄과 리처드를 만난다. 그리고 이내 상아, 고무, 다이아몬드 사업이 한창이던 콩고로 부를 찾아 떠나는 형제의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는데, 콩고는 온갖 비인간적인 만행이 자행되고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출몰하는 공간이다. 그렇게 땅속 괴물의 존재와 온갖 욕망이 맞물려 끓어오르는 마커스 가비의 콩고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려가며 토머스는 이야기가 내뿜는 기묘한 마력과 거부할 수 없는 욕망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하부구조를 파헤치는 지하 세계 모험담 피뇰은 『콩고의 판도라』 전반에 걸쳐 작품의 주제 의식을 짐작케 하는 몇 가지 설정들을 심어두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대가를 받고 창작력을 착취당하는 노예 작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흑인들의 인권, 전쟁의 참상, 이종(異種) 간에 벌어지는 상호 착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들은 전체 서사를 단순 수식하는 데 그치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서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의미를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피뇰은 착취당하는 토머스 톰슨의 일상과 콩고의 지하로 파고드는 마커스 가비의 여정 가운데 자행되는 모든 비인간적인 만행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실체, 그 하부구조를 낱낱이 파헤쳐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간의 갈망까지도. 다양한 장르가 쏟아져 나오는 문학의 판도라 『콩고의 판도라』의 서술 방식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다. 피뇰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콩고의 판도라』를 통해 자기 작품 세계의 지평을 확장했다. 『콩고의 판도라』는 먼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소설’이다. 또 마커스 가비의 콩고 모험담을 다룬다는 점에서 판타지 장르의 성격을 띠는 ‘모험 소설’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이 책은 후반부에 이르면 다시 드라마틱한 ‘법정 소설’로 바뀐다. 또한 액자식 구성을 갖추고, 그 이야기들이 상호 유기적이라는 점에서 『콩고의 판도라』는 ‘메타 소설’이라고도 총평할 수도 있다. 피뇰은 이토록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결코 난잡하지 않도록 흡인력 있고 매끄러운 서사를 보여주었으며, 풍자와 유머, 해학적 요소를 추가하여 독자들의 읽는 즐거움을 더하여 주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콩고의 판도라』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콩고의 판도라』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한 가지를 향하여 그리스·로마 신화의 판도라는 호기심에 신에게 선물 받은 상자를 열었다가 세상에 온갖 악과 질병, 고통 들을 쏟아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렇게 그녀의 상자 밑바닥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희망 하나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도 의문이 생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완벽한 솜씨로 엮어낸 『콩고의 판도라』라는 서사를 쏟아낸 밑바닥에 피뇰은 무엇을 남겨두고자 했을까? 또한 모든 욕망이 쏟아져 나오는 마커스 가비의 콩고 이야기를 들으며 헤어 나올 수 없는 욕망과 타는 듯한 갈망을 느꼈던 주인공 토머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를 갈구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나아가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콩고의 판도라』는 이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 밑바닥에 작가는 어떤 ‘희망’ 같은 장치를 남겨놓았을지 독자로 기대하며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