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독자들이 기다려 온 환상의 명저
에드거상 특별상, 평생공로상에 빛나는 추리 소설 역사의 결정판이자 금자탑!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었다. ‘X는 흥미로운 작가인데도 무시되어 온 반면, Y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부풀려졌으니 Y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본문 419페이지)
내 책은 추리 소설에도 부분적으로 문학적 특질이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 평을 한 최초의 책이다. 내가 아는 한, 아직까지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420페이지)
1. 책 소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사를 다룬 결정판(the definitive history)으로 불리는 명저, 줄리언 시먼스의 『블러디 머더 -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가 김명남 씨의 번역으로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줄리언 시먼스가 최종판임을 공언한 1993년의 제3판을 번역한 것이다. 3세기에 걸친 추리 소설 장르의 생성과 변화, 그 빛나는 성취와 한심한 나락들, 수없이 명멸해 간 작가들의 명암을 저자 특유의 신랄한 문체로 펼쳐 보이고 있다.
『블러디 머더』는 1972년에 처음 출간된 뒤, 추리 작가와 비평가들의 논의에 준거점 노릇을 해온 책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의 역사 속에 등장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해 어떤 작품은 걸작이고 어떤 작품은 과대평가되었을 뿐이라고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이런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던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의 출현은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도를 쥐어 준 것과 같았다. (평가에 불만을 품은 작가들은 그를 추리 작가 협회에서 축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세부적인 평가에서 설혹 반론들이 제기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오히려 저자가 의도한 바였다. 어떤 소설에 대한 시먼스의 비평이 가혹하다면, 그 소설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찾아내어 반론해야 했다. 사람들은 추리 소설에 대한 담론이 베스트셀러 순위와 인기 투표, 명탐정들에 대한 가십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옛날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블러디 머더』가 지금도 추리 소설의 역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을 바라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블러디 머더』는 미국 추리 작가 협회가 수여하는 에드거상 특별상을 받았다. 시먼스는 만년에 영국과 미국의 추리 작가 협회 양쪽으로부터 평생 공로상도 받았다.
시먼스는 이 장르가 가끔은 형식의 제약을 초월하는 뛰어난 소설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고, 이 예외적인 작품들을 선명하게 옹호하는 것만이 추리 소설의 지위를 높이는 길임을 알았다. 좋은 것은 좋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그 결과 『블러디 머더』는 착실하게 고증된 본격적인 역사책이면서도, 저자 특유의 블랙 유머와 아이러니, 편애와 냉소가 가득한 극히 개성적인 책이 되었다.
단지 몇 페이지만 넘겨보아도 『블러디 머더』는 저자의 말대로 “읽고, 참조하고, 논쟁하고, 이유 있는 반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쓴 책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추리 독자의 쾌락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포와 코넌 도일, 크리스티와 반 다인, 해밋과 챈들러, 하이스미스와 심농, 90년대 작가들의 경향에 이르기까지 좋다 나쁘다를 숨김 없이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는 시먼스와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먼스가 안내하는 추리 소설 역사의 흥미진진한 개관을 마치고 나면, 부록에 있는 자료들과 목록들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이것은 원래 원저에 없는 것이지만, 추리 소설 관련 참고 도서가 드문 우리의 실정을 감안하여 옮긴이가 선정하여 수록한 것으로 추리 소설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줄리언 시먼스부터, 도로시 세이어스, 일본의 에도가와 란포 등이 뽑은 명작 목록들도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역자의 말’은 본문의 내용을 성실하게 되짚어 본 뒤, 책에서 다루지 않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추리 소설의 새로운 경향에 대한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참고 도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인명 표기와 작품 제목의 번역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2천여 항목에 이르는 ‘찾아보기’는 이 책을 추리 백과사전으로 활용하는 데 손색이 없다. ‘번역 및 표기 일람’은 원어 제목이나 자주 틀리곤 하는 인명들을 이 책에선 어떻게 번역·표기했나 알파벳순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다. 외래어 표기법이 정착되지 않은 시절의 부정확한 표기가 굳어져 지금까지 통용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틀리지 않았던 표기가 최근에 개악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이 그런 오류들을 조금씩 바로잡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블러디 머더』의 옮긴이 김명남 인터뷰 (2012.6.18)
(최종 교열을 마친 뒤 옮긴이와 함께, 이 책의 내용과 의의, 번역 과정에서의 소회, 독자에게 줄 수 있는 팁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을유문화사(이하 ‘을유’): 선생님께서는 자연과학 분야의 번역자로 유명하십니다만 이번에 번역하신 책 『블러디 머더』는 추리 소설에 대한 것입니다. 어? 하고 놀라시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전혀 놀라지 않는 분들도 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웃음) 추리 소설에 대한 선생님의 개인적인 인연, ‘추리 소설을 향한 나의 길’을 먼저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김명남: ‘가장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남겨야 인생이 행복하다’는 금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할까요. 추리 소설은 초등학생일 때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읽고 충격과 감동을 받은 뒤 계속 읽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일본과 북유럽 추리 소설을 많이 읽습니다. 셜록이냐 뤼팽이냐 물으신다면 셜록, 탐정물이냐 경찰물이냐 물으신다면 경찰물, 시대물이냐 현대물이냐 물으신다면 현대물입니다.(웃음) 추리 소설 팬이 된 것에 별다른 이유가 있다고는 할 수 없겠죠. 다만 저는 사고력이 부족해서 범인을 맞힌 적이 한 번도 없고 기억력마저 형편없어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범인을 모릅니다. 그러니 매번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많은 분이 반론을 제기할 것을 알지만, 누가 뭐래도 저는 추리 소설은 머리를 비우고 적당한 호기심을 유지하며 읽을 수 있는 최고의 오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 본업인 자연과학 책보다 권수로는 훨씬 많이 읽는 사태가…
을유: 부록에 실려 있는 오든의 글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정치인이라든가 지식인들이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점입니다. 그건 좋은데, 좋아하는 이유를 그저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골치 아픈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이 책은 당돌하게도, 잠깐 읽고는 잊어 버리면 그만인 추리 소설을 무려 역사적으로 훑어 보고 있습니다. 추리 독자가 추리 소설의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다시 말해 골치 안 아픈 것을 굳이 골치 아프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김명남: 추리 독자가 꼭 추리 소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 황금기의 여제였다는 사실, 그녀 자신이 괴이한 실종 사건을 겪었다는 사실, 그녀의 경쟁자나 후계자 중에도 여성이 많았고 알고 보면 추리는 여성들이 꽤 휘어잡은 무대였다는 사실, 이런 것을 전혀 몰라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손에서 뗄 수 없이 흥미진진하게 읽힙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사실들을 알면 더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50년 추리 소설의 역사에서 미처 몰랐던 흥미로운 작품과 작가를 잔뜩 발굴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이유가 있을까요?
을유: 자 이제 책으로 들어가 보겠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