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직 악을 통해서만 지상의 인간들이 자신의 현존을 긍정하듯,
오로지 범죄를 통해서만 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또 다른 에르도사인, 진짜 에르도사인이 돼서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게 될 수천수만의 이름 없는 에르도사인들 위로 나타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배고픔, 욕망, 그리고 돈, 이 세 가지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아르헨티나 현대문학의 선구자 로베르토 아를트의 대표작 국내 첫 완역 출간
‘이제 아를트는 아르헨티나 모더니즘에 독창적인 영향력을 미친 작가로 인정받는다. <7인의 미치광이>는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을 공식적인 사실과 정신적인 허구가 뒤엉킨 디스토피아로 유혹할 것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기존 라틴 문학의 전통과는 다른 방향에서 ‘실존’이라는 주제를 파고드는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가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출간되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 거장들의 문학 세계와는 달리 아를트의 문학 세계는 주제와 형식, 표현 면에서 유럽 문학, 특히 니체와 도스토옙스키에 닮아 있다. 이 때문에 그의 낯선 작품들은 당시 아르헨티나 비평계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무시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를트는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보르헤스나 카사레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허구를 현실에 침투시킨 리얼리즘 작가로서, 아르헨티나 현대문학의 선구자로서 주목을 받으며 젊은 아르헨티나 작가들을 사로잡았다. 아를트의 작품으로는 국내에 처음으로 완역되어 출간되는 <7인의 미치광이>는 제3회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을 수상한 아를트의 대표작이다.
▣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찾아가는 실존의 의미와 존재의 조건
로베르토 아를트는 <7인의 미치광이>를 통해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던 1900년대 초반의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아르헨티나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그려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약속의 땅이 되어 유럽으로부터 이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와 함께 도시를 중심으로 폭력과 매춘을 비롯한 각종 범죄들이 난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를트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 기이한 분위기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탐험하며 길거리의 속어와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공간을 작품 전반에 배치한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주인공의 고뇌를 한층 선명하게 만든다.
자신을 짓누르던 악몽과도 같은 세계를 그는 ‘고뇌의 흔적’이라고 불렀다. (중략) ‘고뇌의 흔적’은 사람들이 겪은 무수한 고통과 괴로움의 산물이었다. 마치 독가스 구름처럼, 무겁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고뇌의 흔적’은 벽을 뚫고 빌딩 숲을 가로지르면서도 수평으로 납작하게 퍼진 원래의 모습을 한시도 잃지 않았다. 그 평면의 고뇌는 날카로운 기요틴으로 변해 우리의 목을 베어버린다. - p. 11
<7인의 미치광이>는 주인공 에르도사인이 자살하기 전 사흘 동안 이 소설의 화자이자 해설자인 ‘나’에게 전한 이야기이다. 에르도사인은 고통과 좌절에 찌들어 삶의 의미를 잃은 채 허덕인다. 조금씩 빼돌린 회사 공금은 어느새 엄청나게 불어나 그를 짓누르고, 그는 그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릴 만한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사회혁명을 계획하고 있는 ‘점성술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의 계획에 동참하면서 에르도사인은 조금씩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한 기둥서방’에게 돈을 빌려 횡령한 공금도 갚고 점성술사가 추진하는 비밀 조직의 산업 조직 위원장을 맡아 평소 꿈꾸던 과학자로서의 삶을 실현할 기회도 갖는다. 그러던 중 아내 엘사가 대위와 함께 집을 나가 버리고, 여전히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헤매던 에르도사인은 범죄를 통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공금횡령 사실을 고발하고 늘 자신을 못살게 괴롭히던 엘사의 사촌 바르수트를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한편, 바르수트의 돈을 뺏어 비밀 조직을 위한 자금으로 쓰자고 점성술사를 설득하여 납치 계획에 끌어들인다.
아를트의 주인공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항상 어떠한 형태로든 ‘돈’이라는 현실 논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렇게 아를트는 현실적인 요소와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기묘하게 병치하여 그 틈으로부터 나오는 실존의 의미와 존재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에르도사인은 잘 알고 있었다. 영혼을 더럽히면서까지 스스로를 능욕하고 짓밟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일부러 자신을 더럽고 추잡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악몽과도 같은 나락으로 떨어져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평생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얼마 뒤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던 생각들이 다 사라지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싶은 욕망’만이 의식 속에 남았다. - pp. 14~15
아, 맙소사! 엘사는 떠나고 없었다……. 게다가 회사에 600페소 7센타보를 갚아야 했다……. 아니, 수표가 있으니 그 문제는 해결된 거고…….
아, 이놈의 현실. 넌덜머리 나는 이 현실! - p. 99
그래, 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이야. 하지만 말이야, 내가 내일 시내에 폭탄 하나를 터뜨리거나 바르수트를 죽이면, 졸지에 난 매우 중요한 인물, 정말로 존재하는 인간이 될 거라고. (중략) 그렇게 되면 모두들 내게서 가난과 고통에 짓눌린 불행한 인간이 아니라 반사회적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그러면 난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하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마는 거지. 아무래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걸! 그러나 오직 악을 통해서만 지상의 인간들이 자신의 현존을 긍정하듯, 오로지 범죄를 통해서만 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 pp. 120~121.
▣ 고전의 불멸성: 현대 사회의 본질에 대한 아를트의 통찰과 예견
현실의 고통에 몸서리치면서도 반복적으로 환상에 빠져드는 에르도사인이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이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짓말, 즉 ‘형이상학적 가상’이 지배하는 ‘가상의 왕국’을 부르짖는 점성술사와 만나는 순간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뇌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차원을 확장한다.
수많은 대중들을 이끌어나가고 그들에게 과학에 기초한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그런 훌륭하고 멋지고 강철 같은 의지력을 갖춘 사람을 창조해 내는 것.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까? 사회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겁니다. (중략)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댕길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오히려 에디슨이나 포드 같은 인물일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혁명가죠. 앞으로 군사독재 시대가 되리라고 봅니까? 천만의 말씀! 산업자본가들에 비하면 군인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껏해야 기업가들 앞잡이 노릇밖에 못해요. 밀, 석유, 철강 산업의 황제들이 분명 미래의 독재자가 될 겁니다. - p. 58
현대 사회의 본질에 대한 아를트의 통찰은 점성술사의 열변에서 정점에 이른다.
내 생각엔 그렇소. 포드나 록펠러, 모건 같은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달 하나쯤은 쉽게 부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정도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고전 시대의, 아니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작가들조차 전혀 깨닫지 못했소.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번 볼까. 그런 힘은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나 갖고 있지 사람은 어림도 없어. (중략) 드디어 ‘초인의 시대’가 막을 연 거지. 그래서 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됐소. 모건이나 록펠러, 포드 같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