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주디스 헌은 40대에 접어든 독신 여성이다. 그녀는 마치 형벌을 받듯이 세상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냉정하고도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가난하고 나이가 많고 못생긴 그녀는 세상이 원하는 가치를 하나도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40대는 아직 희망을 다 버릴 수는 없는 나이이고, 어쩌면 그 희망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하숙집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반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오해가 있었고, 그 오해는 겨우 세상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던 그녀를 무너뜨리려 한다. 그녀는 ‘거의 무고한’ 인물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다가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충족할 기회를 날려 버렸을 만큼 소심하고 선한 사람이다. 명백한 운명의 희생자다. 그러나 브라이언 무어는 그녀를 쉽게 응원하거나 동정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공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미처 억누르지 못한 시기와 증오를 종종 터뜨리고,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 살아온 사정을 감안하면 큰 흠결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사람. 주디스는 미워하기보다는 모른 척하고 싶은 인물이다. 친해지기에는 불편하고 방치하기에는 미안한, 그래서 그냥 없는 셈 치고 싶은 사람. 설득력 있게 구축된 주디스의 캐릭터는 소설 속 인물들은 물론 독자까지 딜레마에 빠뜨린다. 무고하지만 불편한 자를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환대받을’ 자격은 누가 어떻게 부여하는가. 뛰어난 문학 작품이 늘 그렇듯, 20세기 중반에 탄생한 이 숨겨진 걸작은 지금 우리에게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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