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 해설 엿보기
슬픔과 상처는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함의되어 있다. 하나는 그것이 다양한 감각을 통해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시에서는 슬픔이나 상처의 구체적 서사가 드러나거나 서정적 자아의 감정적 토로가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시각이나 청각을 비롯한 다양한 감각들로 때론 명징하게, 때론 이미지의 겹침을 통해 슬픔이나 상처의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까닭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라의 원적」이다.
덧입혀진 색이 기울어져 있다
빛이 닿을 때마다 몸을 바꾸는 그림자에 물이 고인다
그 무엇과 부딪쳐서 생긴 흔적이
문득문득 몸 언저리에 피어나서
몸 바깥으로 나 있는 그림자의 길이 검붉었다
몸을 바꿔서 모서리가 되기로 했다
둥근 것들이 내는 소리가 부드러운 것만이 아니고
모서리가 내는 각지고 찔리는 소리 모두 날카로운 것도
아니었다
가장 깊게 부딪친 곳에 중심을 두고 옅어지는 보라는
천천히 빠져나가고
어떤 상처는 눈물 번지듯 뼛속까지 들어가서
움직일 때마다 찌르레기 소리가 났다
더 깊게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어
손차양을 하고 아득하게 바라보며 가늠할 뿐
여러 날이 지나야 사라지는 보라의 지문은
몸 안쪽에 고여 있던 슬픔이 흘러나온 것
목까지 차오른 보라의 원적은 슬픔의 색이라고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그 누가 숨 깊은 두 귀를 내게 내어줄 수 있을까
― 「보라의 원적」 전문
위 시는 내면에서 외면에 이르는 슬픔의 흐름을 공감각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이채로운 작품이다. 이 시에서 ‘그림자’는 몸이 만드는 그늘일 뿐만 아니라 가시화된 내면의 이미지로도 의미화되고 있는데 그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 “그 무엇과 부딪쳐서 생긴 흔적”, 곧 ‘멍’이다. 이것은 “몸 안쪽에 고여 있던 슬픔이 흘러나온 것”이자 “몸 바깥으로 나 있는 그림자의 길”에 이르기까지 검붉은 모습을 띠고 있다. 멍과 그림자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마치 내면에 있는 슬픔이 몸 바깥으로까지 흘러나와 길에 현상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상 이 시에서 ‘멍’이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라’라는 시각적 효과로 제시하고 있을 뿐인데, 지시적 언어를 피하고 최대한 의미를 감각으로 전달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간취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장 깊게 부딪친 곳”은 상처의 중심이자 가장 짙은 색을 띠는 곳이다. 그 중심에서부터 바깥 부위로 갈수록 ‘보라’가 점점 옅어지다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색이 옅어지며 사라진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눈물 번지듯 뼛속까지 들어가서/움직일 때마다 찌르레기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찌르레기 소리”는 움직일 때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을 환기하는데, 상처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공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경우이다. 수평적인 번짐의 현상을 수직적으로 변환하는 시적 의장으로 상처의 깊이를 담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상처란 “더 깊게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며 타자는 그저 “아득하게 바라보며 가늠할 뿐”이다.
서정적 자아에게 ‘보라’의 이미지는 “몸 안쪽에 고여 있던 슬픔이 흘러나온 것”으로 “보라의 원적은 슬픔의 색”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슬픔의 주체만이 아는 사실일 뿐, ‘아득하게 바라보며 가늠’하는 타자에게는 가닿을 수 없는 것이다. 자아가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그 누가 숨 깊은 두 귀를 내게 내어줄 수 있을까”라는 소통에 대한 회의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김경성 시의 슬픔이나 상처에 함의되어 있는 두 번째 특징이다. 그의 시에서 슬픔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야기되는데 하나는 파편화된 존재로서의 고독으로 ‘이야기’하고 들어줄 유대적 관계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다른 하나는 “더 깊게 들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곧 슬픔의 본질에 도달할 수도 또 그것을 언어로 적확하게 지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없으며 한다고 해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